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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국민 여동생 잊고 어느덧 11년차···'시간의 바깥'에서 '지금'을 피워내다

가수 ‘아이유’


15세 데뷔 이후 온갖 번민 부딪혀

‘나이 어려 특혜’ 평가받기는 싫어

오랫동안 ‘어른의 시간’ 기다려와


‘여자연예인’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온 성장 서사 주목

경향신문

지난달 23·24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2019 아이유 투어 콘서트 러브, 포엠’ 공연에서 아이유는 솔로 여자가수 최초로 360도 콘서트를 선보였다. 카카오M 제공

지난달 29일 KBS <뮤직뱅크> 1위를 놓고 아이유와 아이유가 맞붙었다. 발매(18일) 직후부터 음원 차트 정상을 석권한 미니 5집 <러브 포엠(Love Poem)> 수록곡 ‘러브 포엠’과 ‘블루밍(Blueming)’의 격돌이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손꼽히는 ‘독보적 솔로 가수’로 성장한 아이유의 저력을 확인케 한 순간이다. 동시에 2008년 데뷔 이후 11년간 바쁘게 쌓아올린 성장 서사의 핵심 키워드 ‘아이유 대 아이유’의 갈등과 화해를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국민 여동생’으로 대표되는, 사회가 원하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자 연예인’ 아이유. 그리고 “치열하게 일하되 틈틈이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 아이유. 대상이며 주체인 두 ‘아이유’ 사이에서 그는 고민하며 매 순간 어려운 걸음을 내디뎌왔다. 한국에서 여자,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돌파해 온 셈이다. 아이유가 번민 속에서 피워낸 ‘지금’의 가치는 무엇일까. “세상이 이렇게 정나미가 떨어져도 사람끼리는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같은 길을 걸어온 두 친구 설리와 구하라가 남긴 짙은 슬픔 속에서, 여전히 ‘사랑’을 말하는 그의 오랜 분투를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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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박하면 어른이 될 거예요

“제가 ‘마시멜로’ 같은 음악만 할 줄 아는 아이는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특혜처럼 누리면서 평가받고 싶진 않아요. 언젠가 나도 성인이 될 테니까요.”


2010년 인터뷰에서 드러난 그는 “눈 깜박하면 어른이 될”(‘너랑 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아이유에게 시간은 늘 중요한 이슈였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가요계에 발디디고 ‘국민 여동생’이 됐던 그는 어른의 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 때문일까. 2012년 싱글 앨범 <스무 살의 봄>, 2015년 미니 4집 <챗셔(CHAT-SHIRE)>의 타이틀 곡 ‘스물셋’ 등에서 그는 20대의 시간을 촘촘히 기록해왔다.


아이유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이자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국민 여동생’ 칭호를 가져다 준 ‘좋은 날’(2010)의 해맑은 긍정 위로 그는 자작곡 ‘싫은 날’(2013)로 자신만의 슬픔과 고독을 덧대기 시작했다. 본인 말마따나 “가수라는 것보다 예쁘다는 이미지에 가까웠”던 ‘좋은 날’의 시절은 그렇게 떠나보냈다. 윤상·서태지·유희열 등 ‘뮤지션들의 뮤즈’로 떠오르던 그가 미니 4집 <챗셔>를 통해 자신과 음악과 이야기를 모두 책임지는 프로듀서로 거듭난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모두가 미워하는 그 여자

<챗셔>는 문제적 앨범이 됐다. <챗셔> 수록곡 ‘제제’를 비롯해 앨범 커버 아트, 뮤직비디오 등이 롤리타 콤플렉스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 주인공인 다섯 살 제제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것이다. 노랫말 속 제제는 ‘순진해 보이지만 교활한’ 인물로 표현됐다. 아이유는 “맹세코 다섯 살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하려는 의도로 가사를 쓰지 않았다”며 “가사 속 제제는 소설 내용의 모티브만을 차용한 제3의 인물”이라고 사과했다.


“(제제는) 한 여성이 오랜 시간 겪어온, 사회가 해석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반영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제제에게서 섹시함과 사악함을 읽어내려고 했던 것은 작가적 욕망이다.” 당시 논란에 대해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내놓은 분석이다. 2013년 아이유는 한 인터뷰에서 ‘너랑 나’의 인기 요인을 “귀여움이나 앙큼함이 극대화된 모습”이라 설명한 적 있다. 그는 대중이 좋아하는 ‘앙큼한 소녀’로서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고스란히 ‘제제’에 투영했다. ‘소녀이자 여자’를 바라는 대중의 기대 속에서 성장한 아이돌이 작가가 되는 길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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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의 어린 나이로 가요계에 발을 디뎌 '국민 여동생' 칭호를 얻은 아이유는 이제 '어른의 시간'을 지나 '시간의 바깥'을 향한다. 카카오M 제공

“난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요/ 아니 아니/ 물기 있는 여자가 될래요/ 아 정했어요/ 난 죽은 듯이 살래요/ 아냐 다 뒤집어 볼래.” 타이틀 곡 ‘스물셋’에는 ‘여자 연예인’으로서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 욕심,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뒤엉켜 있다. 혼란은 자연스레 ‘여자 연예인’ 이후 혹은 바깥에 대한 상상으로 나아간다.


“표정이 없는 그 여자, 모두가 미워하는 그 여자.” 설리의 자화상에서 영감을 받은 수록곡 ‘레드 퀸’의 한 대목이다. 아이유는 이 곡에 대해 “모두가 미워하는 그 여자의 예뻤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라며 “붉은 여왕이 진짜 나쁘다면 그렇게 만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사람 혼자서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다려왔던 ‘어른의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을 비롯한 여자 연예인을 향하는 사회적인 폭력을 읽어내고 있었다.

띄어쓰기없이보낼게사랑인것같애

최근 발매한 <러브 포엠>은 ‘시간’을 과감히 벗어난다. 수록곡 ‘시간의 바깥’은 ‘너랑 나’(2011)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미래를 기약해야 했던 어린 두 연인의 재회를 담아냈다. 다만 이 재회는 ‘미래’가 아니라 ‘시간의 테두리 바깥’에서 벌어진다. 곡 소개에서 아이유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었던 내가 이번엔 직접 작가가 되어 둘의 이야기를 완성 지어 주고 싶었다”며 “시간이라는 제약 속에 너무 오랫동안 묶어 둔 게 미안해 아예 시계의 바깥으로 둘을 꺼내어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제약’으로서의 시간을 벗어난 <러브 포엠>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블루밍’) “홀로 걷는 너의 뒤에/ 그치지 않을 이 노래”(‘러브 포엠’) 등 가사들은 폭력에 스러져 간 이들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힘을 역설하는 듯하다. “띄어쓰기없이보낼게사랑인것같애.” ‘블루밍’의 직설적인 고백에선 데뷔 초부터 “가면을 쓰는 게 싫다” “오늘 행복하면 그만” 등 당차게 얘기하던 아이유의 진솔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여자 연예인’이자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분투가 맺은 결실이다.


“최근 들어서 내가 되게 좋아졌어.” 아이유는 자신감 있게 나아간다. 그러나 낙관하지도 않는다.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의 색깔과 대중의 사랑을 모두 잡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타이밍’을 꼽았다. “이번 앨범으로 제가 하려 했던 말과 리스너분들이 제게 듣고 싶었던 말이 감사하게도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언제고 또 어려운 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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