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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드라마는 망한다? ‘스토브리그’는 어떻게 편견을 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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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저는 할 겁니다. 팀에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전 잘라내겠습니다. 해왔던 것들을 하면서 안 했던 것들을 할 겁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인사처럼, 입소문을 탄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상승세가 무섭다. 씨름·아이스하키·핸드볼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험은 있으나 야구팀은 처음인 백승수가 세이버매트릭스(야구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를 통해 만년 꼴찌 야구 팀 ‘드림즈’를 혁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1회 5.5% 시청률로 출발해 6회 만에 최고 시청률 14.1%를 기록했다. ‘스포츠 드라마는 망한다’는 속설을 깨고 ‘야잘알(야구 잘 아는)’과 ‘야알못(야구 잘 모르는)’ 시청자를 모두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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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치밀한 사전조사에서 비롯된 사실적인 묘사가 까다로운 야구팬들을 사로잡았다. 선수 트레이드 과정, 신인 드래프트, 스카우트 비리, 병역 논란, 연봉협상 등 실제 야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작가가 야구팬”이란 말이 일찌감치 나왔다. <스토브리그>가 데뷔작인 이신화 작가는 SK와이번스를 비롯해 한화이글스 등 여러 팀의 자문을 받은 것은 물론 야구를 연구하는 한국야구학회에도 꾸준히 참석하는 등 오랜 취재를 거쳐 대본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방송이 끝난 후 공개된 대본 자문위원만 총 18명이었다. 자문 위원들 이름으로 이들이 어떤 팀 소속인지 추측하는 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만년 꼴찌팀이란 극 설정은 야구팬들 사이에선 ‘우리 구단 얘기 아니냐’는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LG 트윈스 팬인 시청자 홍모씨는 “최하위 팀이란 설정 때문에 드림즈가 롯데 자이언트와 한화 이글스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며 “신연봉제 관련한 에피소드는 2010년 말 신연봉제 도입을 선언했던 LG 트윈스를, 병역회피 여론이 있는 프로야구 선수 길창주의 경우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거로 활동한 전 야구선수 백차승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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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야알못’ 시청자들은 되려 야구 드라마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제작진 역시 공식 포스터에 “이것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라는 문구를 내걸었고, 스포츠 드라마보다는 ‘오피스 드라마’에 가깝다고 말했다. 시청자 이모씨는 “야구 용어가 좀 생소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파벌과 인맥으로 망해가는 조직이 비범한 리더를 만나 변해가는 성장 스토리로 보고 있다”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적만 우수할 뿐 팀에 해악을 끼치는 선수를 시원하게 트레이드하거나, 비리를 저지른 스카웃 팀장을 가차없이 해고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포츠 드라마의 원조는 1994년 MBC에서 방영된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꼽을 수 있다. <마지막 승부>는 4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격투기를 소재로 한 SBS <때려>(2003)와 KBS 2TV <이 죽일놈의 사랑>(2005), 국내 최초로 K리그를 다룬 MBC <맨땅에 헤딩>(2009), 골프선수들 성장기를 담은 tvN <버디버디>(2011) 등 여러 스포츠 장르를 다룬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포츠 드라마는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스포츠 종목에 대한 호불호 같은 높은 진입장벽과 스포츠 훈련을 요하는 까다로운 연기로 인한 연기력 논란 등으로 ‘스포츠 드라마는 매니아들 전유물’이란 말이 생겨났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토브리그>는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잘 엮어내면서 이야기에 힘이 있다”며 “거기에 프로야구 선수들을 조명한 게 아니라 구단을 운용하는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결국 시스템 문제를 지적한다. 이는 회사생활이나 조직 생활을 하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복길 대중문화칼럼니스트는 “극의 흐름이 빠른 것도 인기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웹툰과 같이 회차마다 끊어지는 주제가 있고,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남성 시청자 뿐만 아니라 여성 시청자들에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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