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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은 마음을 타고, 동해 따라 달린다

ITX-마음 강릉~부산 기차 여행

새벽 5시28분. 강릉역을 떠난 ITX-마음 1250 열차가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5년 1월1일 개통한 동해선 열차는 한반도의 등줄기를 따라서 남쪽으로 향했다. 창밖은 어두웠지만, 객실 안은 환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자리 여행자가 “버스가 아닌 기차로 부산까지 갈 수 있다니! 운전도 안 해도 되고 말이야”라고 감탄하자, 옆자리 친구는 “그러게. 좋은 세상이야”라며 맞장구쳤다.

강릉·부산 잇는 ITX-마음 열차

5시간 동안 바다·산 풍경 즐겨

삼척·울진 구간, 15년 걸려 완공

산골마을서 떠나는 기쁨 선물

부산 도착 후엔 부전시장으로

쫄깃·고소한 꼼장어 맛보기

전포 카페거리도 놓칠 수 없어

경향신문

근덕역에서 삼척역으로 향하는 ITX-마음 열차. 지난 1월1일 개통한 동해선 열차는 하루 여덟 차례 강원도의 산과 바다를 훑고 달린다. 삼척 근덕역 주변과 울진 후포역 근처를 달릴 때도 창밖으로 바다가 멋지게 보인다.

강릉~부산, 하루 8차례 운행

동해선 열차는 단순한 철도 이상이다. 새로운 여행문화를 여는 문이자, 강원도와 경상도,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강릉에서 출발한 기차는 동해에서 멈췄다. 동해~삼척, 영덕~포항 구간은 그나마 철로라도 있었지만, 삼척에서 영덕 사이는 말 그대로 공백이었다. 지도에서 끊어진 부분을 볼 때마다 오작교라도 놓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제 그 안타까움이 사라졌다.


포항과 삼척을 잇는 166.3㎞ 노선 개통으로, 부산에서 강릉(363.8㎞)까지 기차로 한 번에 갈 수 있으니까. 십 년 묵은 체증이 단번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부산행 ITX-마음 열차는 하루 8차례 운행한다. 최고 시속은 150㎞, 강릉에서 부산까지 평균 5시간이 걸린다. “2시간30분이라더니, 생각보다 오래 가네”라며 실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2026년 KTX 이음 열차가 투입되면, 소요 시간도 줄 예정이다. 그리고 기차여행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조금 느리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천천히 가는 열차가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여유와 틈을 선물할 테니까. 스위스나 아프리카의 인기 관광열차는 대부분 시속 50㎞ 내외로 느리게 달린다.

삼척과 울진, 동해선이 펼칠 새로운 시대

빨간색 ITX-마음 열차가 삼척에 도착했을 때, 바깥은 여전히 어두웠다. 열차 출발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10여명의 승객이 객실로 들어왔다. 그중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한 분이 “내 생전 기차도 타 보네요”라며 할아버지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웃음은 마치 오래 기다린 꿈이 이루어진 순간 같았다. 미로면, 아니면 도계, 삼척의 어느 깊은 산골마을에서 왔을까. 이들에게 동해선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척에서 울진으로 향하는 동안 기차는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달렸다. 2009년 3월 착공해 무려 15년8개월 만에 완공된 구간으로, 전체 노선 중 가장 최근에 건설된 철로다. 투입된 사업비만 3조4000억원. 경제성 문제로 여러 차례 미뤄졌지만,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삼척역 다음으로 울진역에 열차가 멈췄다. 동해선 개통으로 ‘육지 속의 섬’이라는 울진의 별명은 사라질 예정이다. 울진은 삼척과 더불어 기차가 들어오길 간절하게 기다리던 지역이다. 역뿐만 아니라 공항, 고속도로마저 없던 울진. 이 지역에서 동해선은 새 시대를 여는 중요한 열쇠나 마찬가지다.


열차는 울진을 지나 영덕으로 향했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더니 장사역에 이를 즈음, 붉은 해가 산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창가에 앉은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일출을 담기에 바빴다. 빨간 해를 바라보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마치 새해의 여정이 해처럼 힘차게 풀릴 것만 같았다.

부전역에서 출발한 부산여행

호랑이의 척추를 훑으며 내려온 동해선 열차는 오전 10시16분, 부산 부전역에 도착했다. 5시간 이상 걸린 여정이었지만,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배낭을 고쳐 메고 부산여행을 준비했다. 수십 번 온 부산이지만 부전역은 처음이라, 첫 여행처럼 설렜다.


부전역 앞에는 부산 최대의 재래시장, 부전시장이 있었다. 문어와 오징어, 전복 등 해산물을 비롯해 시금치와 연근 등 채소류까지 온갖 식재료가 쌓여 있었고 평일 오전임에도 골목은 북적였다. ‘부산의 부엌’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부전역 근처에서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이 꼼장어(먹장어) 맛보기다. 역에서 오른쪽으로 100m 정도 걸으면 꼼장어 식당이 모여 있는 거리가 나왔다. 석쇠에 구운 꼼장어는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소금구이, 양념구이, 통구이 등 여러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데, 꼼장어를 먹은 후 볶음밥을 비비기 위해 양념구이를 선택했다.


꼼장어로 속을 채운 후 전포로 발길을 돌렸다. 전포 공구거리와 카페거리는 개성 넘치는 소품 가게와 멋스러운 카페로 가득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배경에서 이름을 가져온 동네책방 크레타, 레트로한 감성의 카레 전문점 구구식탁 등 매력적인 공간이 발길을 붙잡았다. 저녁에는 밀락루체페스타라는 빛 축제가 열리는 민락수변공원으로 향했다. 다채로운 조형물을 알록달록하게 꾸며,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빛 축제는 검은 바다, 화려한 조명의 광안대교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동해안 도시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기쁨

다음날 오전 8시57분, 강릉으로 돌아가는 ITX-마음 1233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올라가는 길에는 영덕과 울진에 멈춰 주변을 둘러봤다. 영덕역에서는 내리자마자 빨간 게 조형물이 반겼다. 해안선을 상징하는 영덕역 역사도 인상적이었다. 역 근처를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다 물회를 한 그릇 먹고 울진으로 향했다.


울진역에도 동해선 개통을 기념하는 포토존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은 후 택시를 타고 케이블카가 있는 왕피천 공원으로 향했다. 케이블카에 오르니 10분 만에 망양정에 도착했다. 망양정에 오르니 드넓은 동해가 한 품에 안겼다. 저녁노을이 분홍빛으로 물들 무렵, 열차는 다시 강릉을 향해 달렸다. 1박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마치 긴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어디서 내려볼까?

동해안 식도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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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역 앞 명물 꼼장어구이.

해산물이 풍성한 겨울, 동해선 열차는 미식 열차나 다름없다. 삼척역 바로 앞에는 싱싱한 생선과 오징어로 유명한 새벽시장이 있다. 영덕 강구항역이나 울진 죽변역, 후포역에 내리면 차로 5분 거리에 대게 전문점이 있어 겨울철 별미를 손쉽게 맛볼 수 있다. 동해 추암역은 러시아대게타운을 마주 보고 있다.



누리로 타고 소소한 마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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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역 인근 이현세만화거리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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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로를 타면 삼척과 울진의 작은 역에 내릴 수 있다. 삼척에는 옥원역, 임원역, 근덕역이 있고, 울진에는 후포역부터 평해역, 매화역, 죽변역, 흥부역이 있다. 죽변역에서는 대게 경매를, 매화역에서는 이현세 만화가의 만화 벽화를 볼 수 있다. 영덕에서도 바다를 보고 싶다면 영덕역보다는 고래불역이나 강구항역에 내리는 게 유리하다. 누리로는 동대구에서 강릉까지 하루 6번 운행한다.



바다가 잘 보이는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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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출발한 ITX-마음 열차는 평균 5시간이면 부전역에 닿는다.

바다 풍경이 압권인 곳은 강릉에서 동해 구간이다. 이 구간에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정동진역이 있다. 삼척 근덕역 주변과 울진 후포역 근처를 달릴 때도 창밖으로 바다가 멋지게 보인다. 정동진역은 물론이고, 묵호역, 추암역, 삼척해변역, 근덕역, 장사역, 월포역 등 걸어서 바다까지 갈 수 있는 역도 여럿이다. 추암역과 삼척해변역은 주말과 공휴일에만 정차한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바다를 가까이 보기 위해서는 당분간 D좌석을 예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강릉·부산 | 글·사진 채지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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