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0.01% ‘매너온도 99도’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커버스토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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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온도 99도’ 이용자를 만나다
낯선 사람과의 ‘찰나의 거래’
정중하고 따뜻한 대화에 훈훈
무료 나눔으로 ‘온기’도 전해
A씨(30)는 지난달 집들이 선물로 받은 전기주전자를 팔았다. 모바일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을 이용했다. 전기주전자를 사겠다고 나선 이는 닉네임 ‘동그리’였다. 동그리는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해 A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 여성이었다. 물건을 받아든 동그리는 돈이 담긴 우체국 봉투와 함께 핫팩·수제 쿠키가 담긴 지퍼백을 내밀었다. “제가 만든 건데, 한 번 드셔보세요.” A씨는 얼떨결에 지퍼백을 받아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거래가 끝난 후 뒤로 돌아 몇 발자국 걸었을까. 동그리에게서 거래 후기가 도착했다. “좋은 물건 저한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만남을 A씨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1분? 짧은 순간의 그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서울에 이사온 지 6년째인데, 낯선 사람과 정중하고 따뜻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거든요.” 지난 1일 새해 인사라도 건넬까 하는 마음에 동그리와의 채팅을 다시 열어본 A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봤더니 그분 매너온도가 99도였어요. ‘따뜻한 배려 고맙다’는 후기가 가득하더라고요. ‘귀인을 만났네’ 싶었어요.”
지난해 당근마켓 월간 실이용자 수(MAU)가 1000만명을 넘어가면서 매너온도도 이야깃거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매너온도 99도 이용자와 거래한 경험담이 화제가 된다. ‘당근마켓 (매너온도) 99도인 사람과 거래를 했는데, 새 돈을 뽑아서 봉투에 담아왔더라’는 후기는 파생 기사까지 나왔다. 포털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근마켓 매너온도 99도를 만나봤습니다’ ‘당근마켓 매너온도 어떻게 올리나요’와 같이 관련 글도 꾸준히 올라온다.
A씨처럼 ‘매너온도 99도’ 이용자를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당근마켓 측에 매너온도 99도 이용자 비율을 묻자 “전체 가입자 중 0.016%”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렵게 매너온도 99도 이용자를 찾아도, 대부분이 “별것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설득 끝에 매너온도 99도 이용자 2명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90도를 달성한 이용자도 만났다. 매너온도 99도에 대한 기대감은 유니콘의 존재를 믿는 마음과 같다. 코로나19발(發) 비대면 시대, 작은 일에도 마음을 쓰는 따뜻한 사람의 존재는 상상만으로 위안이 된다. 별것 아닐지라도 스스로 온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겐 분명 ‘이야기’가 모인다.
매너온도
■“고생하는 아버지 드릴 분께”…사연을 얹은 나눔은 감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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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에 빠진 ‘보통 사람들’
매너온도 99도, 그들은 정말 다를까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진작가 임재철씨(45)는 이용기간 6개월이 되지 않아 매너온도 99도를 달성했다. 지난해 3월 초등학생 딸이 푹 빠져있는 포켓몬스터 인형을 구하기 위해 가입했다. 과거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100만원 상당의 택배거래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는 만큼 ‘직거래를 우선한다’는 안내문구가 마음을 끌었다고 한다.
약 10개월간 중고거래 앱을 통해 물건을 거래한 건수는 약 700건이다. 판매는 350여건이고, 그중 무료나눔이 지난 8일 기준 134건이다. 임씨는 “무료나눔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임씨는 주로 신체 사이즈가 변하면서 못 입게 된 의류나 가방 등 소품을 나눈다.
기념일이 있을 때마다 나눔은 일종의 이벤트처럼 진행됐다. 어린이날 하루 전, 임씨는 바이올린 나눔 글을 올렸다. “어린이에게 선물로 줄 사람에게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이 바이올린은 초등학생 딸을 둔 남성에게 전달됐다. 지난 3월과 4월엔 5차례에 걸쳐 정장세트와 와이셔츠를 취업준비생들에게 무료나눔했다. 임씨는 “원래는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처럼 물건을 나눔했는데, 학연·지연·혈연을 떠나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는 게 더 좋겠다 생각해서 이런 식의 나눔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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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나눔한 134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묻자 임씨는 지난 4월 나눔한 ‘남성용 양모 재킷’을 떠올렸다. 2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이 재킷은 원래 아버지에게 줄 선물이었다. “생전에 드렸어야 했는데,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못 드렸어요. 상을 치르고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처분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가격이나 가치를 떠나서 팔고 싶지는 않았고, 나눔을 하게 됐죠.” 그렇게 중고거래 앱에 무료나눔 글을 썼다.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드릴 분이 가져갔으면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글을 올리자마자 채팅이 쏟아졌다. “34명이 거의 동시에 연락을 주셨어요. 어떤 사연을 바라고 글을 올린 건 아니었는데, 다들 장문의 사연을 보내주셨어요. 결국 사이즈가 잘 맞고 가장 마음이 동했던 한 분에게 나눔 했죠. 연락하신 모든 분들에게 아쉬움이 남지 않게 일일이 설명해 드렸어요. 다들 ‘괜찮다’ ‘더 잘됐다’고 해주셔서 안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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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연은 당근마켓 ‘나눔의날’ 공지로 전 이용자에게 공개됐다. 재킷을 나눔받은 이용자가 본사에 사연을 보내면서다. “제주·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채팅이 왔어요. ‘사연 잘 봤다’면서요. 책임감 같은 게 확 생겼죠. 찰나의 거래라도 최대한 기분 나쁜 사람이 없도록 하자. 그래서 더 신경을 쓰게 됐어요.”
물건을 사고파는 방법도 남달랐다. 물건을 구매할 때는 계좌이체가 아닌 현금 거래를 고집했다. “주고받는 정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했다. 깨끗한 흰 봉투에 가급적 새 지폐를 담아 건넸다. 봉투에 짧은 감사 인사를 손으로 쓰기도 했다. 물건을 팔 때는 늘 ‘서비스’가 따라붙었다. 간식거리를 함께 전하기도 하고, 스튜디오 소품으로 쓰던 귀걸이나 목걸이를 덤으로 주기도 했다. 여건이 될 땐 학용품과 생필품을 담은 ‘럭키백’을 준비했다. 얼마 전부턴 직접 제작한 볼펜을 나눠주고 있다. 당근 모양 볼펜에는 자신의 닉네임과 ‘당신의 매너에 감사하다’는 문구를 영어로 새겼다.
중고거래로 연결된 ‘이웃’은 1000명이 넘는다. 중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은 물론 70대까지 “남녀노소를 아우른다”고 말했다. 연락처를 주고받을 만큼 친해진 사람도 있다. “60대 후반 어머니 한 분은 제가 ‘단골’이라고 부르거든요. ‘모아보기’ 기능으로 즐겨찾기하고 꾸준히 안부 인사를 주세요. 스튜디오 위치를 아니까 붕어빵을 사다 주시기도 하고요. 문화센터 친구분을 데려와서 한두 시간 수다 떨다 가시기도 해요. 거래하다 친해진 젊은 남자분은 결혼할 사람을 인사시켜주더라고요. ‘이 정도까지 마음을 주다니’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만큼 신뢰한다는 거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무료나눔은 서로에게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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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
그게 나눔을 하는 진짜 이유
받는 이도 주는 이도 ‘힐링 거래’
임씨는 “역설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중고거래 앱 사용과 무료나눔 횟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현재 14년째 운영하던 스튜디오를 정리 중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월 1000만원씩, 임대료로만 거의 1억원 가까운 손해를 봤어요. 홍대에서 시작해서 강남으로 넘어가 그래도 10년 넘게 잘 버텼는데, 그렇게 됐네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만 힘든가,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중고거래를 하면서 듣는 ‘고맙습니다’ 한마디가 위로됐어요. 전혀 예상 못했거든요. 여기서 위로받을 줄은. 작은 선물에도 좋아해주고, 따뜻한 후기 남겨주시는 분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어요.”
서울 도봉구에 사는 프리랜서 심리상담사 양모씨(52)도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을 중고거래로 이겨내고 있었다. 지난해 3월 당근마켓에 가입한 양씨는 7개월 만에 매너온도 99도가 됐다. 양씨 대신 인터뷰에 나선 딸 이주형씨(26)는 “엄마가 아동 심리상담사로 일하던 청소년센터가 코로나19로 폐쇄된 뒤 한동안 많이 우울해하셨다”며 “중고거래를 시작한 이후엔 많이 밝아지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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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양씨가 중고거래 앱을 즐겨 쓰게 된 데는 딸 이씨 도움이 컸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짧게라도 사람들 만나는 게 좋으니까요. 글 올리는 법부터 하나씩 알려줬더니 곧잘 하시더라고요. 한두 번 거래를 다녀오더니 그 뒤론 ‘당근 좋아’를 입에 달고 사세요.” 이씨가 설명한 양씨의 하루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당근마켓을 확인해요. 자는 사이 ‘키워드 알림(원하는 물건의 판매글이 올라왔는지 알려주는 기능)’이 떴는지 보시는 거죠. 집안일 하다가도 시간 나면 당근만 봐요. 아빠가 밤 10시쯤 잠들면 또 보시고요. 게시글도 올리고, 다음날 약속 잡고 새벽 한 시쯤 잠자리에 들어요.”
많게는 하루 10번씩 중고거래에 나선 엄마 덕에 집 안이 수시로 변했다. 크리스마스엔 1m가 훌쩍 넘는 트리가 생겼고, 5000원·1만원에 사온 4단과 6단 서랍장이 방마다 자리했다. 나눔하는 물건을 봉투에 담아 나르다 보니 집에 있던 봉투란 봉투는 다 소진됐다. 봉투가 없을 땐 이씨의 에코백이 타깃이 됐다. 자신의 에코백에 물건을 넣어 거래하는 현장을 목격한 뒤 엄마와 싸우기도 했다. 이씨가 자취를 하기 위해 사둔 밥솥과 탁상·의자 등 1인용 가구도 무료나눔으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양씨는 무슨 일을 하든 “당근!” 하고 알람이 울리면 즉시 답장을 했다.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하기 미안해서”라고 했다. 이씨는 “엄마랑 급한 대화를 해야 할 땐 카카오톡보다 당근 채팅으로 말을 거는 게 답장이 더 빠르다”며 웃었다. 가족들은 한 달 전부터 양씨를 “당근 농부”라 부르고 있다.
엄마에 대한 가벼운 성토가 이어졌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카페도 못 가고 맛집도 못 가잖아요. 저도 중고거래를 하니까 비슷한 시간대에 거래를 잡아놓고, 드라이브 겸 엄마 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요. 카페에서 커피를 사 와서 차 안에서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요. 엄마의 거래 후기도 실시간으로 들어요. 대화가 많이 늘었어요.”
이씨는 “엄마가 중고거래를 하며 옛날얘기를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사람들끼리 서로 필요하면 물건 나눠주기도 하고, 오가는 정이 있었는데 많이 삭막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볼 때도 옛날 풍경이 그립다고 종종 말했는데, 중고거래하면서 또래 주부들을 많이 만나니까 ‘살맛’이 나신대요. 작은 물건인데 감사하면서 가져가더라며 신혼부부를 칭찬하시기도 하고요. 운동기구 무료나눔이 올라와서, 받으러 갔더니 2005년 무렵 알고 지냈던 카페 사장님 집이었대요. 얼마 전엔 혼자 외국인한테 무료나눔을 하고 오셨더라고요. 21년을 살았는데, 동네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새롭게 보였어요.”
이씨는 엄마의 높은 매너온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엄마가 먼저 상대방 기분을 좋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 인사도 먼저 건네고, 후기도 꼭 남기세요. 그리고 엄마 별명이 ‘최수종’일 정도로 눈이 크고 쌍꺼풀이 진하거든요. 마스크를 쓰면 눈밖에 안 보이는데, 되게 잘 웃으세요. 후기를 보면 ‘미소가 아름답다’는 말이 많아요. 먼저 좋은 말 남기기, 잘 웃기. 두 가지가 엄마의 매너온도가 높은 이유 같아요.”
■“인사도 없이, 무작정 깎아달라”…그래도 오가는 정엔 ‘살맛’이 난다
인플루언서를 만드는 ‘거래 매너’
‘매너온도’가 평판 기능 담당…“먼저 정성 어린 후기 남기려 노력”
2030엔 ‘온도’ 높은 사람은 ‘인플루언서’…“좋은 사람이라 인식”
사고파는 물건·태도에 관심 갖고 거래 경험 ‘에피소드’로 공유
양모씨가 당근마켓에서 이웃과 주고 받은 채팅 중 일부. 딸 이주형씨는 엄마 양씨의 높은 매너온도에 대해 “엄마가 먼저 상대방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주형씨 제공 |
당신이 나를 불쾌하게 할지라도
당근마켓에 미담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크고 작은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거나 무작정 깎아달라고 조르는 사람을 일컫는 ‘당근 거지’란 신조어가 생겼다. 지난 10월엔 생후 36주 신생아를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타인의 사진을 무단도용하거나 성범죄에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매너가 좋지 않은 이용자도 늘어 온라인에선 ‘당근 진상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임씨도 일부 무례한 이용자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었다. “1000원이라도 받는 것보다 무료나눔할 때 오히려 매너가 나쁠 확률이 높았어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으로 물건만 받은 뒤 인사도 없이 가버린 사람도 있었어요. 사정이야 있겠지만, 상대방 마음을 생각해줬으면 하면 아쉬움이 있죠.” 나눔을 받으러 스튜디오에 온 또 다른 이용자는 ‘또 줄 것이 없냐’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물건 대신 돈으로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눔 할 만하니까 하는 거 아니냐면서요. 저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눔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데, 나누는 사람을 마치 다른 종족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양씨도 기본을 지키지 않는 거래 상대방 때문에 마음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통비가 아깝다며 지하철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무료나눔 물건을 건네받은 상대는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떴다. 경남 김해에 사는 김혜련씨(31·매너온도 90도)는 “출발했다”는 상대방의 말을 믿고 거래에 나섰지만, 길에서 1시간 넘게 기다린 적이 있었다. 의류 판매를 주로 했다는 김씨는 “옷을 받자마자 길에서 입어보고 ‘안 어울려서 못 사겠다’ 말하고 가버린 경우도 있었다”며 “사이즈나 색상, 사용 횟수는 물론 하자도 상세히 설명하고 안내했는데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럼에도 친절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입을 모은다. 2019년부터 당근마켓을 이용 중인 김씨는 “한 번은 반찬통 세트가 선물로 들어와서 무료나눔을 했다”며 “집 문 앞에 물건을 두고 찾아가라고 했는데, 받으러 온 분이 직접 끓인 장엇국을 두고 갔다”고 말했다. “여름이었는데, 아이스팩에 ‘쭈쭈바’까지 넣어서요. 감동이었어요. 한 번은 네일아트 재료를 무료나눔 받았는데, 나눔 하는 분이 빠른 등기로 사비를 들여 제가 있는 곳으로 물건을 보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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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도 “모든 거래는 ‘기브 앤드 테이크’ ”라고 했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유난은 아니었어요. 좋은 얘기를 듣고 긍정적인 기운을 받다보니 진화했다고 할까요. 악기를 무료로 나눠주며 공짜 레슨까지 해준 분도 계셨고요. 여기에 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도 하나의 동력이 됐어요. 무례한 사람이 더 많았다면 저도 이렇게 노력하며 배려하진 않았을 거예요.”
매너온도가 평판 기능을 담당하면서 상호 평가에서 부정적 인상을 남기지 않는 것도 하나의 ‘팁’이 됐다. 임씨는 “700건의 거래 중 비매너 평가를 남긴 건 단 한 건”이라고 말한다. “새 상품이 아닌 중고 물품을 사는 걸 불쌍하게 여기면서 저를 굉장히 하대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다른 분들은 이렇게 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상황 설명을 상세히 덧붙여서 비매너 후기를 남긴 적 있어요. 그 외엔 굳이 안 좋은 평을 남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김씨도 말했다. “웬만하면 제가 먼저 좋은 후기를 남기려 해요. 그래야 저도 정성 어린 후기를 받게 되더라고요.”
매너온도 99도, 또 하나의 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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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만난 매너온도 90도 이상 이용자들은 모두 다른 이용자들로부터 매너온도와 관련한 질문을 받거나 “친해지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MZ세대는 매너온도가 높은 이용자를 인플루언서(소비자에게 영향력이 큰 개인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영기 대학내일20대연구소 소장은 “매너온도가 높거나 좋은 사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역시 넓은 의미의 인플루언서로 본다”며 “호감을 가진 상대의 물건은 같은 물건이어도 스토리가 담긴 물건으로 여겨져 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매너온도가 높은 이용자와의 거래 경험을 ‘에피소드’로 공유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했다.
매너온도를 ‘공정함의 척도’로 인식한다는 분석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2030세대는 유능함이나 수완보다는 성실함·공정함과 같은 인간적 측면을 더 가치 있다고 본다”며 “매너온도가 높은 이용자는 타인에게 좀 더 베풀고, 합리적 가격에 물건을 팔아 좋은 평가를 받은 검증된 사람이란 인식이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사고파는 물건과 태도에 관심을 갖고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너온도가 높다고 무조건 좋은 사람 혹은 도덕적인 사람이라 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높은 매너온도를 유지하고 의식적으로 좋은 거래 경험을 타인에게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나눔에서 오는 성취감이나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일의 기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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