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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 멈춰버린 원시 살결…들리니, 혼 빼는 자연의 숨결

비경성시⑤

제주 용천동굴

경향신문

바다와 연결된 깊고 푸른 호수를 품에 안은 용천동굴은 한동안 신라인들이 머무른 뒤 2005년 우연히 다시 발견되기까지 1000년 이상 침묵 속에 숨겨져 있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2005년 전신주 공사 도중 발견


석회암동굴 닮은 용암동굴 ‘희귀’


보존가치 높아 ‘일반인 출입 제한’


제주는 화산섬이다. 집집마다 두른 돌담의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도, 바닷가 파도치는 주상절리도 모두 용암이 지나간 자리를 보여준다. 제주 화산의 또 다른 흔적은 용암이 흐르면서 형성된 용암동굴이다. 현재까지 170여개의 용암동굴이 제주에서 발견됐다. 제주 용암동굴의 학술적·경관적 가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생물권보전지역 등 ‘유네스코 3관왕’을 차지하며 이미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그중에서도 용천동굴(천연기념물 466호)을 소개하기로 한 건 용암동굴이면서도 석회생성물이 대규모로 발견되는 등 석회암동굴의 특성을 함께 보여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동굴이기 때문이다. 길이가 3.4㎞에 이르는 용천동굴은 바다로 향한 끝부분 800여m 구간에 호수가 형성돼 있다. 호수에선 눈이 퇴화된 동굴성 희귀어류가 발견되기도 했다.


용천동굴은 2005년 전신주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됐다. 보존가치가 높아 발견 직후 천연기념물에 지정됐고 일반의 출입을 제한하는 비공개 동굴로 남았다. 현재까지 용천동굴에 출입한 사람은 학술조사를 위한 연구진과 제주세계유산본부 관계자 등 100여명에 불과하다. 금단의 동굴에 입장하기 위해 경향신문은 특별히 문화재청의 허가를 얻었다.



■ 지하에 펼쳐진 한여름 밤의 세상


만장굴 입구 교차로 삼거리 한쪽에 어른 무릎 높이에서 잘려나간 전신주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용천동굴 발견의 계기가 된 바로 그 전신주였다. 커다란 철제 뚜껑을 열고 자물쇠 두 개를 풀자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랜턴이 달린 헬멧을 쓰고 조심조심 사다리를 타고 7~8m쯤 내려가자 바닥에 닿았다. 후텁지근한 열기에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사방이 막힌 동굴은 사철 온도가 영상 15~16도로 유지되고 습도는 100%에 가깝다고 했다. 한겨울 대낮에서 갑자기 한여름 밤으로 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모니터링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이상 용천동굴에 드나든다는 제주세계유산본부 기진석 학예연구사가 앞장서 길을 안내했다. 주의사항을 묻자 “바닥에 하얗게 생성된 석회 물질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서 따라오라”고 했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신중히 발을 내디뎠다. 동굴 바닥엔 천장에서 떨어진 날카로운 돌덩이가 쌓여 있었다. 낮은 천장엔 상어 이빨처럼 생긴 용암종유(천장에서 녹은 용암이 굳어서 매달린 것)가 가득했다. 행여 발을 헛디딜까 어디에 머리를 부딪치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뒤를 따랐다. 2단으로 형성된 용암폭포를 기어가듯 오르내릴 땐 모험이 따로 없다 싶었다.

경향신문

도로가 입구에서 사다리를 타고 7~8m 내려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30분쯤 땀을 흘리며 걸었을까. 어둠에 익숙해지니 동굴 안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벽과 천장의 색이 계속 변했다. 바위를 덧씌운 은빛과 초콜릿색은 용암이 급히 식은 흔적이라고 했다. 박테리아가 표면을 덮은 벽은 노란색이 선명했다. 바닥에 용암이 흐른 방향을 보여주는 반원 형태의 ‘밧줄구조’와 벽에 달라붙은 테이블 모양의 ‘용암선반’ 등은 문외한의 눈으로도 뚜렷하게 용암의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비가 내리는 것처럼 동굴 천장부터 10m 이상 가늘게 뻗은 줄이 보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나무뿌리였다. 이쑤시개처럼 가늘었지만 잔털이 사방으로 뻗은 것이 분명 식물의 뿌리줄기였다. 질긴 생명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군데군데 바닥엔 어른 손바닥만 한 전복 껍데기와 조그만 숯도 눈에 띄었다. 사람이 살던 흔적이다. 그동안 몇 차례 조사를 통해 용천동굴에선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와 철기, 제의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멧돼지뼈 등이 발견된 바 있다. 어른 눈높이 벽에 ‘火川’(화천)이라는 한자를 새긴 것이 보였다. 그 옛날 사람들도 이 동굴이 불기둥이 흘러 형성된 것임을 알았던 걸까. 신라 사람들은 왜 제주의 동굴까지 와서 제를 올린 걸까. 어둠 속을 걸으며 궁금증은 더해갔다. 기 연구사는 “이렇게 큰 동굴이 2005년에야 발견된 것을 보면 제주에 아직 발견 못한 더 많은 화산동굴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신비와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셈이다.


종유관·석순으로 밀림처럼 울창


정적 흐르는 호수 돌아보면 짜릿


동굴팝콘·동굴진주 자태에 탄성

경향신문

동굴 천장에 매달린 종유관.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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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빚은 예술, 그리고 완벽한 어둠


출발 지점에서 1㎞에 이르자 컴컴했던 동굴 안이 점차 우윳빛으로 변해갔다. 천장에 매달린 종유관, 바닥에서 위로 자라는 석순 등 하얀 석회생성물이 밀림의 나무처럼 울창했다. 내륙의 석회암동굴에서나 발견되는 것들이 용암동굴 안에 형성된 과정은 이렇다. 바닷가의 흰 모래가 바람에 날려와 동굴 상부에 쌓이고, 모래에 포함된 조개껍데기와 각종 동물뼈 등 석회 성분이 빗물에 녹아 동굴 내부로 유입되며 물은 증발하고 흰 결정만 남아 다양한 동굴생성물로 변한 것이다.


천장에 빽빽하게 매달린 빨대 크기의 종유관 끝에는 과연 전부 물방울이 달려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반짝이는 모양이 꼭 보석 같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쳐야 저 물방울이 단단한 종유관으로 변하는 걸까. “실수로라도 부딪쳐 부러지면 한 번에 수천 년 세월을 깎아먹는 것”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 뒤로 동굴 안에서의 몸가짐이 더욱 조심스러워졌음은 물론이다. 흰색 결정이 별사탕 모양으로 피어난 ‘동굴팝콘’과 석회 성분이 물을 만나 동글동글해진 ‘동굴진주’는 장인이 빚은 예술품 못지않았다.



출입구에서의 거리를 나타낸 바닥의 표지판 숫자가 1700m에 가까워졌을 때 드디어 호수가 등장했다. 손전등을 비추자 수심 10여m 아래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동굴 끝에서 바다와 연결돼 있어 수위가 변한다는 호수는 깊고 투명했다. 바닥에 가라앉은 길쭉한 토기 유물도 똑똑히 보였다. 고무보트를 타고 호수를 돌아보는데 작은 노가 물살을 천천히 가르는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 말고는 그야말로 정적이었다. 어둠 속을 헤치고 나가면서 한편으론 으스스하면서도 더없이 은밀하고 고요한 세상의 끝을 탐험하는 기분에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쾌감이 일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기 연구사의 안내대로 잠시 멈춰 서서 손전등을 껐다. 즉각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코앞의 손도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순도 100%의 암흑이었다. 모든 기관이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그 어둠 속에서 대부분 무의미했다. “이 상황에서 동굴을 빠져나갈 수 있겠어요? 그래서 동굴 탐사 땐 손전등이 생명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여분의 손전등도 반드시 챙겨야 하고요.” 보이진 않았지만 일행 모두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혼이 빠지도록 황홀한 경험을 연달아 한 탓인지 좁은 통로를 빠져나오며 머리를 천장에 쿵 하고 부딪쳤다. 헬멧이 아니었다면 날카로운 용암종유에 이마를 찍혀 병원 신세를 질 뻔했다.



■ ‘꼬마탐험대’의 모험정신


용천동굴은 인근의 거문오름에서 파생된 용암동굴계에 속한다. 이웃한 벵뒤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당처물동굴 등이 용천동굴의 형제동굴이다. 대부분 동굴은 천연기념물로 용천동굴과 마찬가지로 비공개지만, 만장굴만은 탐방로를 잘 꾸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만장굴(천연기념물 98호)은 최대 폭과 넓이가 18m, 23m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전형적인 용암동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지질학적 명소다.


만장굴 발견 과정은 영화가 따로 없다. 진주사범을 졸업하고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김녕초등학교에 부임한 교사 부종휴는 오늘로 치면 ‘방과후학교’ 수업을 자발적으로 진행했다. 60여명의 학생을 음악반, 과학반, 탐험반으로 나눠 가르쳤는데 30여명의 탐험반 학생들에겐 ‘꼬마탐험대’란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동굴 탐사를 했다. 제대로 된 탐험장비도 없던 시절 짚신 신고 횃불 들고 줄자가 없어 2m짜리 끈으로 거리를 재가며 2년에 걸쳐 만장굴을 끝에서 끝까지 살폈다. 그렇게 측정한 동굴 길이가 7100m로 실제 길이와 300여m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부종휴는 훗날 결혼식도 만장굴 앞에서 올렸다. 그는 여러 곳의 동굴 탐사 외에도 한라산을 누비며 330여종의 식물을 찾아내 분류하고 등반로를 개척하는 등 제주를 대표하는 자연과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만장굴 입구 근처엔 동굴을 발견하고 이름도 붙여준 부종휴와 학생들의 모습을 새긴 부조와 안내판이 서 있다.



만장굴은 길이 평탄해 어린이나 노인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과거엔 백열등 조명을 써 옆 사람 얼굴이 보일 정도로 훤했지만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뒤 LED 전구에 땅을 향한 간접조명으로 바꿨다. 다소 어두워져 불평하는 관광객도 있지만 너무 밝으면 빛과 열 때문에 식물이 자라는 등 동굴의 특성이 훼손된다. 3만마리 이상 서식하는 박쥐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장굴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30분 단위로 무료 해설을 진행한다. 땅만 보고 다니는 것보단 전문가의 생생한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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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천연기념물과 명승지를 찾아갑니다. 국가 지정 문화재인 천연기념물은 동물·식물·지질·보호구역 등 459건에 이릅니다. 경관이 뛰어난 명승도 111곳이나 됩니다(2018년 9월 기준). 이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특별한 매력이 있는 곳을 골라 소개하려 합니다.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해당 문화재에 담긴 역사와 문화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도 전할 계획입니다. 우리 자연유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도 적극 소개하며 든든한 국내 여행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코너 제목인 비경성시는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 혹은 남이 모르는 곳이란 뜻의 ‘비경(秘境)과 사람이 붐빈다는 뜻의 ‘성시(成市)’를 합친 말입니다.


제주 |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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