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바퀴와 비행수단이 연결될 ‘곧 다가올 현실’ [책과 삶]
[경향신문]
바퀴의 이동
존 로산트·스티븐 베이커 지음, 이진원 옮김
소소의 책 | 336쪽 | 1만8000원
1997년 개봉한 뤼크 베송 감독의 영화 <제5원소>에서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는 하늘의 택시 운전사다. 에어택시를 몰며 도시의 마천루들 사이로 아찔한 추격전을 벌인다.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뒤인 2259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공상’의 영역에 있던 이 공중택시는 이미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단 브루스 윌리스와 같은 운전기사는 없다.
지난해 11월 서울 상공에서 ‘드론택시’가 비행했다. 기내에는 조종간 대신 목적지를 설정하는 터치스크린 한 대만 달렸고, 사람 대신 사람 무게의 20㎏ 쌀 네 포대를 실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사람이 탈 수 있는 드론택시 시연 행사를 연 것으로 여의도 상공에서 7분간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쳤다. 이날 시험 비행한 드론은 국내 기술이 아닌 중국 이항사가 개발한 것이지만, 정부는 ‘2025년 드론택시 상용화’ 등 단계별 추진계획을 내놓으며 상용화 의지를 보였다. 당장 우버, 보잉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들이 이 공중택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도시는 자동차가 지배했다. 자동차가 발명되고 100년 넘게 흐르는 동안 도시의 지형은 자동차 수요에 맞춰 시내 아스팔트 도로와 외곽의 고속도로를 깔고, 대규모 주차장을 만들며 변화했다. 우리 삶의 시간표도 이에 맞춰 바뀌었다. 매일 이동하느라 도로에서 몇시간씩을 보내고,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은 대도시의 일상이다. 자동차가 뿜어내는 배기가스도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게 교통체증과 오염에 짜증을 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동차를 탄다. 앞으로의 100년은 어떨까. <바퀴의 이동>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빌리티 혁명’이 삶의 터전인 도시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내다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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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분야의 숨가쁜 변화
차를 소유하지 않고 구독하는 시대
기술이 바꿔놓을 도시·경제·일상
헬싱키·두바이 등 혁신 사례로
머지않은 미래를 가늠해본다
저자들은 자동차가 근시일 내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미 전성기를 지나고 있다고 말한다. 향후 10년 안에 우리 중 다수는 새로운 이동 방법을 찾겠지만, 과거와는 달리 하나의 상징적인 기술이 주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양한 선택지 중 공통점이 있다면 “다가오는 모빌리티 시대에는 사실상 모든 바퀴와 비행 수단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드론택시부터 자율주행차, 초고속 캡슐열차인 하이퍼루프, ‘공유’를 근간으로 한 모빌리티 네트워크 등이 이미 추진 중이거나 다가올 미래다. 책은 이런 신기술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모빌리티 기술이 도시와 경제, 그리고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에 대해 집중한다.
각각 도시 전문가와 저널리스트인 두 저자는 로스앤젤레스, 헬싱키, 두바이, 상하이 등 모빌리티 혁명의 ‘핫스폿’이라고 불리는 네 대륙 네 개 도시를 찾아 스타트업부터 대기업의 모빌리티 혁신 담당자, 이를 진두지휘하는 임원, 전문가, 시의 도시개발 담당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3D프린터로 자동차 부품을 찍어내거나 ㎝ 단위로 자율주행차를 안내하는 차세대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 완전한 자율주행으로 전환하기 전 ‘반자율주행’ 시장을 겨냥하는 스타트업부터 강력한 국가 주도로 드론 이동수단 구상을 내놓은 두바이까지 다양한 모빌리티 혁신 현장을 소개한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없이도 눈에 띄는 것은 헬싱키 사례다. 헬싱키는 넷플릭스처럼 매달 이용료를 지불하는 ‘모빌리티 구독 서비스’를 통해 도시교통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도 모빌리티 앱이 트램이나 지하철, 주차공간 제약이 없는 스쿠터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모든 교통수단을 활용해 이용자에게 최적화된 이동 방안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자동차 소유주만 이동의 자유를 만끽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는 건 불공평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다.
저자는 이런 사례들을 통해 자동차 ‘소유’의 시대는 점차 저물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다운로드해 ‘소유’했던 음악이 이젠 스트리밍 시대로 전환된 것처럼, 자동차 역시 소유에서 구독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란 얘기다. “2.2톤짜리 금속에 운전자 한 명씩만 탄 채 만들어낸 정체”는 이미 여러 도시들에서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는 상황을 불렀고, 이런 자가용의 시대는 숱한 환경파괴와 에너지, 시간, 돈의 낭비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모빌리티 분야의 변화는 숨이 가쁠 정도다.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국내외 업체들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하루가 멀다 하게 등장하고, 공유 자동차는 물론 공유 자전거와 킥보드 서비스도 어느 순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기술 진보는 숨가쁘지만, 이런 기술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이나 사생활 침해, 일자리 감소 등 복잡한 현실의 문제도 대비해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무엇을 타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곧 다가올 도시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책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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