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독살 다룬 영화 '암살자들'…감독 "두 여성 무죄 믿게 됐다"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 왓챠 제공 |
“두 여성이 무죄라는 걸 믿게 됐던 저의 경험을 선사하려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암살자들>은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김정남 암살사건’의 여성 용의자 두 명을 2년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100% 유죄 확신”에서 “두 여성은 무죄”라고 믿게 된 감독의 시선을 따라간다.
시티 아이샤(29·인도네시아)와 도안 티 흐엉(33·베트남)은 그해 2월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맹독성 화학물질을 김정남의 얼굴에 발라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두 사람은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에 체포돼 재판을 받았고, 2019년 3월과 5월 각각 석방돼 고국에서 살고 있다.
라이언 화이트 감독은 28일 한국 기자들과의 화상 기자회견에서 “영화 제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들이 유죄라고 생각했다”며 “(이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다큐멘터리로서 매력적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암살자들> 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
모든 정황이 유죄를 가리키는 듯했다. 공항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가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이 대담한 태도로 김정남의 얼굴에 독극물을 바르고,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다.
하지만 변호인들이 수집한 증거에 따르면 이들은 일반인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는다고 여겼다. 두 사람을 포섭한 북한 공작원들이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부모님에게 부칠 돈이 필요했던 아이샤의 사정, 배우로 데뷔하고 싶었던 흐엉의 욕망도 한몫했다. 두 여성과 북한 공작원들이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은 시종일관 ‘몰카 촬영’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암살 당일에 관해 흐엉은 “매우 중요한 영상이라고 해서 ‘LOL’이 적힌 옷을 입고 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화장도 했다”고 증언했다.
영화 <암살자들> 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
화이트 감독은 증거를 따라 사건의 전개를 훑었고, 2년간의 재판을 지켜보며 무죄의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휴대폰 메시지나 페이스북 내용 등 증거, 북한 사람들과 대화한 내용을 보며” 점차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법정 상황은 두 사람에게 불리했다. 화이트 감독은 말레이시아 사법체계상 “일단 판사가 사건을 다루기로 결심하고 변론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담당 판사는 두 여성에게 변론을 요구했다. 살인 혐의 유죄와 교수형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재판은 결국 화이트 감독의 믿음대로 흘러갔다. 검찰이 갑자기 아이샤에 대한 혐의를 철회했고, 이후 흐엉도 석방된다. 그는 “인생에서 영화 작업을 하며 가장 놀란 순간”이라며 아이샤·흐엉이 “(공작원들을) 북한 사람으로 인지했는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인 줄 알았는지 밝힐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는 자유인으로 돌아간 두 사람의 삶도 보여준다. 이들의 표정과 말투를 보노라면 관객의 의심도 감독의 결론으로 수렴해간다.
영화 <암살자들> 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
두 여성이 무죄라면 누가 죄를 지었을까. 화이트 감독은 답을 갖고 있는 듯했다. 다만 이 사건이 결국 ‘완전범죄’로 끝나버렸다는 데 대한 문제 제기를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사건에 가담한 북한 공작원들 일부가 문제없이 출국했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두 여성이 ‘희생양’이 될 뻔했으며, 말레이시아 당국은 그 결론에 맞춰 선택적 수사를 했다는 정황들을 보여준다. 화이트 감독은 “재판 과정의 많은 미스터리와 두 여성의 인생 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암살자들’의 라이언 화이트 감독이 28일 화상 기자회견을 통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경선 기자 |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느낀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화이트 감독은 “신체적 위협은 없었지만 노트북·휴대폰 보안을 많이 걱정했다”며 “(북한의) ‘소니 해킹사건’ 처리를 맡았던 미 연방수사국(FBI) 팀과 컨설팅을 했다”고 답했다. 김정남의 이복동생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암살을 대중에 공개하면서 전 세계에 공포나 위협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개봉은 8월12일.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