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웠던 그 맛, 다시 돌아왔네…반가운 ‘부활 맛집’ 3
수십년 자리를 지킨 오랜 맛집의 폐업 소식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행정안전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일반·휴게음식점 폐업률은 10%로 전년 대비 1.2%포인트 증가하면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정들었던 많은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도시의 삶 속에 사라진 노포, 문 닫은 단골집의 부활은 잃었던 친구를 다시 찾은 듯 반갑고 고맙다.
돌아온 ‘노가리 골목’ 터줏대감, 을지OB베어
을지OB베어의 대표 메뉴인 냉장숙성 생맥주와 노가리 안주. 구교진씨 제공 |
주말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금요일 오후 4시, 얼마 전 을지로3가에 문을 연 한 맥줏집은 벌써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사장님~ 여기 4명요!”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손님들이 익숙하게 자리를 잡는 이곳은 2022년 을지로를 떠났던 한국 최초의 프랜차이즈 생맥줏집 ‘을지OB베어’다. 건물주와의 명도소송과 강제 퇴거, 험난한 시간 끝에 문을 닫은 지 2년이 지났다. 그사이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로 자리를 옮겨 장사를 이어간 을지OB베어는 지난 2월 을지로에 다시 새 둥지를 틀었다. 40년 넘게 장사를 했던 본래 자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을지로3가역 10번 출구 인근 대로변이다. 아내 강호신 사장과 2대째 가게를 운영해온 최수영 사장은 2년 전 영업 종료 마지막 날 골목을 떠나며 했던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했다.
“을지로를 떠나고 나서도 틈만 나면 돌아올 자리를 찾았어요. 대부분 재개발 중이라 쉽지 않았죠. 그사이 을지로를 떠난 사장님들도 많았고요. 그러던 중 좋은 자리에 임대 딱지가 붙었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왔어요. 운이 좋게 이곳 건물주와 직원 중에 우리 집 단골분들이 있어서 얘기가 잘됐어요. 다음날 와이프와 아이들이 와서 다 같이 보고 결정했죠. 2년이라는 세월을 맘고생하며 가게를 찾았는데 일이 되는 건 순식간이더라고요.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도움 주신 고마운 분들이 많아요.”
을지로3가에 다시 켜진 을지OB베어 간판(왼쪽). 한층 넓어진 내부에는 노란 전구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구교진씨 제공 |
다시 문을 연 지 한 달 반. 혹시나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부부를 잠 못 이루게 했던 불안감은 임시개업 첫날부터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 사그라들었다. “왜 이제 왔냐.” “(OB베어) 없는 동안 소주만 마시고 있었다.” 오랜 단골들의 타박도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1980년 을지로 골목에 문을 연 을지OB베어는 노가리와 생맥주를 함께 파는 ‘노맥’가게로 유명해지며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시초가 된 곳이다. OB맥주 전신인 동양맥주가 모집한 프랜차이즈 2호점(1호점은 동양맥주가 본사 1층에 낸 직영점)으로, 창업주 고 강효근씨는 인쇄소와 공구상이 즐비했던 을지로 골목 한쪽에 1980년대 당시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생맥줏집을 열며 적잖이 고생했다.
“새벽마다 빗자루를 들고 주변 골목을 쓸면서 하루를 시작하셨대요. 골목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이었죠. 장인어른이 개업 후 2년 동안 가게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숙식을 해결하셨다는 것도 저는 나중에 알았어요.”
황해도 출신인 강씨는 고향에서 김장 양념에 동태를 넣어 먹던 기억을 떠올려 노가리를 안주로 선보였다. 아침마다 망치로 두들긴 노가리를 연탄불에 구워 직접 개발한 매콤한 고추장 소스를 곁들여 냈다. 당시 가격은 맥주 380원, 노가리 100원. 문 여는 시간은 맥줏집 치고 빠른 오전 10시였다. 밤샘 근무가 많았던 인쇄소 직원들과 인근 직장인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오전 교대하는 지하철 노동자들도 을지OB베어에서 아침 퇴근길에 생맥주를 즐겼다.
골목에 사람들이 모여들며 하나둘 각기 다른 안주에 노가리를 곁들여 파는 맥줏집들이 생겨났고 을지OB베어는 ‘노가리 골목’ 터줏대감으로 42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2013년 맏딸 호신씨 부부가 가게를 이어받은 이후 2015년 서울시가 노가리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2018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을지OB베어를 ‘백년가게’로 선정했다.
을지로를 떠나기 전 예전 을지OB베어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하지만 ‘100년 이상 보존할 가치가 있는 가게’라는 의미가 무색하게도 반세기 가까이 3대에 걸쳐 자리를 지킨 노포는 건물주와 갈등을 겪다 강제 퇴거로 골목을 떠나야 했다. 불 꺼진 가게 앞에서 주변 상가 세입자와 문화예술인들, 오랜 단골과 시민들이 함께 모여 ‘상생’을 외치는 문화제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 험난한 일을 겪고도 ‘왜 꼭 을지로여야 했나’라는 물음에 최 사장은 “을지로 그 자체가 의미”라는 대답을 내놨다. “단지 장사가 잘돼서, 예전 명성을 누리고 싶어서였다면 돌아올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돈이 없어도 그 집에 가면 언제나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믿는 손님들, 이곳에 청춘을 바친 장인어른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 그 뜻을 이어가고 싶어요.” 치솟는 고물가에도 1만원이 넘지 않는 저렴한 안주 가격, 냉각기를 사용하지 않고 고유의 노하우로 냉장 숙성한 생맥주의 맛 역시 지켜나갈 오랜 고집이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을지OB베어의 꿈은 소박하다. “가족과 함께 오시는 단골분들이 계세요. ‘아빠가 젊었을 때 이 근처에서 직장을 다녔어’ 하고 옛날얘기를 하면 아이들이 신기한 듯 귀 기울여 들어요. 그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첫 맥주는 우리 집에서 대접하고 싶어요. 오랫동안 대를 이어 찾아오고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전통이 있는 집이 되었으면 해요.”
낙원동 시대 여는 을지면옥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오픈 예정인 을지면옥 건물. 노정연 기자 |
대표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도 부활을 앞두고 있다. 2022년 6월 을지로를 떠났던 을지면옥은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재오픈을 준비 중이다. 종로세무서 옆 5층짜리 건물이 을지면옥의 새 보금자리. 현재 건물 내부공사가 마무리되고 막바지 정리작업 중이니 노포의 이전 소식을 기다리던 이들은 올해 더위가 시작되기 전 ‘슴슴시원’한 을지면옥의 평양냉면을 다시 맛볼 수 있을 듯하다.
1985년 을지로3가, 서울 입정동 161번지에 문을 연 을지면옥은 37년간 한자리에서 평양냉면을 팔며 을지로를 대표하는 노포로 이름을 날렸다. 소와 돼지고기로 슴슴한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대파와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의정부계 평양냉면의 특징. 마실수록 감칠맛이 진해지는 냉면 육수와 차갑게 식혀 얇게 저민 편육 한 접시면 한겨울에도 찬 소주잔이 술술 비워졌다.
을지면옥의 평양냉면과 편육. 노정연 기자 |
2022년 6월26일. 영업 종료 다음날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을지면옥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
서울 한복판에서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던 을지면옥도 재개발의 파도는 피할 수 없었다. 2019년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에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며 철거용 파이프와 가림막이 일대를 뒤덮기 시작했다. 을지면옥은 서울시가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지정한 ‘생활문화유산’이었지만 재개발 앞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십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웃 노포들이 하나둘 을지로를 떠나는 상황에서도 ‘정상 영업합니다’라는 입간판을 세워두고 영업을 이어가던 을지면옥은 2022년 6월25일 문을 닫으며 을지로 시대의 막을 내렸다. 영업 종료 소식이 알려지자 문 닫기 전 ‘마지막 냉면’을 맛보려는 손님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2년 만에 돌아오는 을지면옥은 말끔한 새 옷을 입었다. 예전 가게의 푸른색 간판 손글씨체를 그대로 따온 새 ‘을지면옥’ 간판도 새 건물에 거니 어딘가 세련돼 보인다. 시곗바늘을 되돌린 듯 과거로의 여행을 안내하던 입구, 낮은 천장과 형광등 아래 냉면 한 그릇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때 그 공간은 이제 추억으로 남게 됐지만 더 바랄 게 있을까. 을지면옥의 오랜 단골이라며 간판이 새로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나던 길에 찾아왔다는 한 50대 행인은 “예전 가게의 아늑한 느낌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는 쫓겨나지 않고 오래 장사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다시 문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홍대 명물 빵집, 베이커리 봉교 ‘시즌2’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성산동으로 자리를 옮겨 2년 만에 문을 연 베이커리 봉교. 노정연 기자 |
홍익대학교 학생들과 상수동 주민들의 ‘최애빵집’ ‘인생빵집’으로 사랑받던 홍대 명물 빵집 ‘베이커리 봉교’도 지난해 다시 문을 열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간 영업했던 상수동을 떠나 새로 문을 연 곳은 망원역 인근 성미산로 25번지다.
2013년 상수역 2번 출구 근처에 문을 연 베이커리 봉교는 2021년 6월30일 건물 재건축으로 인해 영업을 종료할 때까지 홍대생들과 인근 직장인들의 아침을 책임지던 빵집이었다. 퇴거 소식과 함께 전해진 ‘이전 계획 없는 폐업’은 봉교빵을 주식으로 삼던 이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으니, 당시 마지막 봉교빵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던 단골들의 ‘눈물 젖은’ 기록은 지금도 인터넷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해 8월, 2년 만에 빵집이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반가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봉교 시즌 2’ 소식과 함께 개설된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안부 인사와 함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아 눈물 나게 반갑다” “재오픈 소식을 듣고 수원에서 달려왔다”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다시 문을 열어주어 감사하다” 등 그리움이 담긴 환영 인사가 이어졌다. “매일 아침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 많이 주문했던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단골손님은 학교 다니던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며 반가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다시 손님들을 만나게 된 안지은 봉교 베이커리 대표도 반가운 마음은 마찬가지.
“원래 가게가 있던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가게를 접게 됐어요. 2년 조금 넘게 쉬다가 집 근처에 다시 가게를 열게 됐죠. 예전 홍대 학생분들 중 졸업 후에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고 빵집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와주시는 단골분들도 있어요. 고맙고, 저도 많이 반가워요.”
베이커리 봉교의 인기 메뉴인 우유 크림빵과 까눌레. 노정연 기자 |
자리는 변했지만 맛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 오픈 당시 제빵사의 외할머니 이름을 따서 지은 ‘봉교’란 상호처럼 그리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맛은 그대로다. 부드러운 우유크림 사이로 바닐라빈이 콕콕 박힌 우유 크림빵은 여전히 마니아층 두꺼운 최고 인기빵. 꿀바게트, 까눌레, 우유식빵…,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도는 봉교의 시그니처 빵들도 예전 그 맛 그대로 돌아왔다. 다시 문을 연 지 이제 6개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안 대표는 “앞으로 자의로 빵집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봉교’의 재오픈이 ‘올해 최고의 희소식’이라며 반긴 어느 단골의 말처럼 ‘그때 그 맛’을 그리워하는 전국의 수많은 단골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전해지길 바란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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