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백종수씨 가족, 남들과 다르면 어때 무해하게 산다
하루 일과를 마친 백종수씨 가족이 전북 완주군 고산면 들판길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
“행복이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밝게 잘 크는 모습 보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요.”
처서를 하루 앞둔 지난달 22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서 만난 백종수씨(36)가 한창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세 딸을 둔 종수씨 부부는 귀농 7년 차다. 귀농 전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아내 고은영씨(41)는 인천의 한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고은영씨가 집에서 둘째 연희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있다. |
연희(6)랑 이야기 하는 종수씨와 독서삼매경에 빠진 17개월 막내 은재, 첫째 연아(9)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은영씨. |
여느 직장인처럼 회사생활을 이어가던 종수씨에게 예고 없이 시련이 찾아왔다. “결혼하고 회사 일도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외근 중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치료를 해야 했는데 회사 분위기가 제 마음 같지 않더라고요. 그때 회의감이 들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졌어요.”
그런 그에게 귀농 이야기를 꺼낸 건 은영씨였다. 연상의 아내를 삶의 귀인으로 여기는 종수씨는 은영씨 제안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부부는 인생 계획에 없던 귀농을 준비했다. 박람회도 가고 상담도 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부부는 너무 외지지 않고 인근에 거점 병원이 있는지 등을 고민하다, 완주로 결정했다. 은영씨도 전북 도내 학교로 지역이동 신청을 했다.
종수씨가 물에 불린 양배추 씨앗을 모판에 파종하고 있다. |
완주로 내려온 종수씨는 당장 일자리부터 찾았다. 공장 아르바이트와 마을 기업, 완주군 귀농귀촌팀 등에서 일했다. “다행히 군내 일자리는 괜찮았어요. 그러다 안심농자재협동조합에서 모집 공고가 나왔어요. 친환경 농가들을 위한 천연 농약 등을 만드는 곳인데 1년짜리 사회적 농업 교육을 한다기에 얼른 지원했어요. 공동농장에서 농사를 배우고 나오는 수익은 나누고요.”
종수씨가 인큐비닐을 씌우지 않고 키운 애호박을 수확하고 있다. |
친환경에 관심이 많던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후 친환경 농사에 도전했다. 고추, 애호박, 수박, 양배추를 키웠다. 잡초, 벌레 등에 대한 대응과 친환경 인증 절차는 까다로웠다. 당분이 높은 수박은 개미와 진딧물로 쓰디쓴 실패를 맛봤다. 애호박은 비닐을 씌우지 않고 키웠다. 복합플라스틱 재질의 인큐비닐은 반환경적이기 때문이다. 종수씨네 애호박은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맛은 시중 애호박과 다를 게 없다. 현재 완주군 내 학교와 어린이집이 소속된 공공급식센터에서 친환경 식자재를 원해 작게나마 거래처도 생겼다.
농사일을 마친 종수씨가 아내와의 통화 중 맥주를 사간다며 웃고 있다. |
둘째 연희가 막내 연재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
은영씨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메뉴는 미트볼 스파게티. |
냉장고에 아이들의 편지와 낙서, 스티커가 빼곡하다. |
첫째 연아가 엄마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편지 내용은 ‘엄마 사랑해요’. |
종수씨와 둘째 연희가 지역에서 열린 귀농귀촌인들과 지역민이 함께하는 플리마켓 얼만큼장에서 애호박과 고춧가루를 팔고 있다. |
한 주민이 애호박을 사고 있다. 종수씨 가족에게 플리마켓은 소통의 장이다. |
“이렇게 하면 돈이 되겠느냐고 얘기를 하는 분도 있지만, 제 농사와 사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고 그런 분들과 교감해나가면 매출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귀농귀촌 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51만5000여 명, 37만7000여 가구로 통계조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현 완주군 귀농귀촌팀장은 “귀농귀촌은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인 만큼 지자체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원주민과의 네트워크 활동을 지원하고자 귀농귀촌인의 재능 나눔이나 인턴십 등 안정적 정착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종수씨가 막내 연재와 놀아주고 있다. |
귀농 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종수씨는 아이들과 놀며 하루 농사일의 고단함을 잊는다. 첫째 연아(9)와 둘째 연희(6)는 서로 이제 17개월 된 막내 연재와 놀아주며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한다. 집안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흔한 투정도 없이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이 거울 속으로 들어왔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