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박스로 시작한 ‘주말만 귀촌’
“쉬고 싶었어요.”
박성희, 안정희 부부가 귀촌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2년. 과수원을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박성희 씨는 마음 한구석에 늘 시골에 대한 향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내 안정희 씨도 김밥 장사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도시에서 벗어나 여유를 누리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결국 남편의 은퇴 후, 남편의 향수와 아내의 바람이 만나 ‘주말 귀촌’으로 귀촌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늘 귀촌을 꿈꾸기는 했지만, 당장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귀촌을 할 여유도 없었거니와 아무리 시골에서 자랐다고는 해도 하루아침에 시골에서 살 자신이 없었기에 일단 ‘주말만 귀촌’을 선택한 것. 게다가 ‘별장’처럼 집을 짓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처음에는 도시를 떠나 ‘잠깐 쉬고자’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일단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땅 중턱에 가져다놓고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귀촌생활을 시작했다. 준비없이 시작해서일까? 막상 귀촌을 시작해보니 현실적인 걸림돌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저는 운이 좋았죠. 부모님께서 주신 자그마한 땅이 있었기 때문에 땅을 알아볼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이 땅 주변에 저희 말고 거주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전기∙수도 시설이 열악했어요.”
하지만 그가 35년간 대학교에서 행정 업무를 하면서 홍천의 지인들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주기도 하고,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면 여러 장학금 제도를 소개하는 등 인연을 이어가던 터라 이곳에 왔을 때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양수기를 설치해 실개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었고, 구청에서 전봇대를 무료로 설치해준 것. 게다가 양수기로 농업용 물을 끌어다 쓰는 걸 증명하면 농업용 전기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도 얻은 덕에 주말에 아무리 전기를 써도 전기료가 1만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화장실 → 샤워장 → 지붕 → 찜질방, 하나씩 만들어가는 시골 생활
부부의 삶의 터전인 성남에서 주말 터전인 강원도 홍천까지는 차로 1시간 남짓. 주말마다 도시가 아닌 시골의 공기를 만끽하고자 설치해놓은 컨테이너였지만, 몇 번 놀러 오다 보니 화장실도 필요하고, 텃밭을 가꾸다 보니 수도시설이나 샤워장도 필요했다.
그렇게 컨테이너 박스 옆에 필요 시설을 하나씩 더해가던 중에 뜻밖의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컨테이너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던 것. 고민하던 중에 홍천 시내에 나갔다가 ‘이동식 미니 황토 찜질방’ 전문 업체를 발견했다. 원래 찜질방에서 몸의 피로를 푸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관계자의 말에 컨테이너 박스 옆에 설치하기로 했다. 가격은 기와로 된 지붕 설치까지 포함해서 1천 500만원.
덕분에 이후 컨테이너 박스가 아닌 미니 황토 찜질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다. 땔감으로 온도 조절이 가능해 찜질도 할 수 있고, 밤에는 따뜻하게 잠도 잘 수 있다. 찜질방의 백미인 맥반석 달걀과 군고구마도 만들어서 먹을 수 있어 주위에서 오고 싶어 난리라고. 지금은 부부가 제일 아끼는 보금자리로서 계절, 날씨에 상관없이 편안하게 머무는 공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크랙이 생기거나 겉칠이 벗겨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1년에 15만원이면 깔끔하게 유지 보수할 수 있다.
찜질방 옆 자그마한 텃밭에는 아로니아가 대롱대롱 달려 있다. 텃밭 작물의 시작은 해바라기였다. 산 중턱에 칙칙한 컨테이너 박스만 덩그러니 있으니 황량해 보이기도 했고 씨앗으로 기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고른 작물이다. 그러나 키워보니 잡초보다 못 자라는 경우도 많고, 기름을 짜려니까 해바라기 안에 작은 벌레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실패를 경험 삼아 다음으로 도전한 것이 바로 아로니아. 현직에 있을 때 인연이 된 식물원 종사자에 따르면, 아로니아는 블루베리와 비슷하지만 블루베리보다 덜 달아 새들이 꼬이지 않는 데다 생명력이 강해 처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작물이라는 것. 실제로 강한 생명력 덕분인지 150그루 되는 아로니아가 전부 결실을 맺고 있다.
텃밭의 남은 공간은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중에, 조금이라도 주위에 나눔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싶어 비타민나무, 사과나무, 돌배나무, 살구나무 등 과실수를 심었다.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밭작물에 비해 나무는 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주말에 식사나 놀러 오는 지인들 대접하기 위해 상추, 고추 등도 심어두었다.
“사실 주말이 더 바빠요.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고 이곳에 저녁쯤 내려와요. 그리고 한숨 잤다가 일요일 아침부터 텃밭을 가꾸고, 산에 올라가서 약초를 캐면 점심 먹는 것도 잊어버려요. 어느 날 딸이 그러더라고요.”
평일보다 주말에 더 고생하는 엄마, 아빠가 이해 안 간다는 딸. 사실 더 고생하는 건 맞다. 그러나 몸은 힘들고 고되지만 꿀과 보물 같은 하루를 선물받은 기분이 든다고. 오롯이 부부만을 위한 장소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5도 2촌이 가져다준 삶의 모습
탑을 쌓을 때 너무 빽빽하고 오밀조밀하게 쌓으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순간 폭삭 내려앉는다. 뭐든 틈이 있어야 더 튼튼한 법. 주말은 부부에게 삶의 작은 ‘틈’이다. 일상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틈.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듯, 일상을 정신없이 사는 부부에게 ‘주말 귀촌’은 삶에 빛을 비추는 작은 틈이 되었다.
“주말 귀촌하면서 부부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은퇴하기 전에는 각자 일을 하다 보니 따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죠. 그런데 은퇴 후에도 비슷하더라고요. 평일에 장사를 하다 보니 같이 있기는 해도 같이 있는 거 같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니 사이가 더 돈독해졌죠.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하고,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올드팝도 크게 틀어놓곤 하죠. 텃밭 가꾸다가 지치면 같이 쉬면서 새참 만들어 먹고, 근처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는 게 삶의 낙이에요. 아직도 이곳에서 둘이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그래서 앞마당에 작은 카페를 열 계획이에요. 지인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와서 편안하게 차 한 잔 마시고 갈 수 있는 그런 카페요.”
귀촌의 첫 시작은 노동이 아닌 취미로
누구나 한번쯤 귀촌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준비해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기 때문. 그렇기에 귀촌은 한번에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온전한 귀촌을 하기 전에 주말 귀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부담 없이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주말만 귀촌을 하든, 온전히 귀촌을 하든 귀촌은 일단 부부의 마음이 맞아야 가능해요. 그리고 돈을 벌려고 하면 어려워져요. 그저 재밌는 취미 생활 정도가 괜찮죠. 귀촌을 수입원으로 생각하는 순간 하는 일이 노동이 되기 때문에 힘들어지거든요. 그리고 어떤 작물이든 대량으로 심으면 안 돼요. 작게 시작해서 지인들 나눠줄 정도로 하는 것이 실패하더라도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거든요.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꾸미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해져요. 있는 그대로를 조금씩 다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기획 우성민 사진 박충열, 정석훈(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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