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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살기

개그맨에서 연극인, 피자 가게 주인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꾼 이원승에게‘내 멋대로 사는 법’에 대해 물었다.

“나는 스스로 ‘몽키호테’ 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남들이 지어준 몽키라는 별명과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인물 돈키호테를 합친 이름. 이 별명이 참 마음에 든다. 스스로 몽키호테가 된 뒤 더욱더 많은 일을 벌일 수 있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주저하지 않았다.”


이원승이 최근 출간한 <피자 한판 인생 두판>(이유출판)의 프롤로그 중 한 대목이다. 서른아홉에 연극인이 되기 위해, 피자계의 문익점이 되기 위해 꽃길 대신 흙길을 선택해 몽키호테로 살아온 것.


그는 어쩌다 보니 인생 두 판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판은 남들처럼 돈이 되는 쪽으로 쫓아가는, 한 가지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한 인생이었다면 두 판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내 멋대로 사는 인생이다. 이를 위해 몇 년 전 성북동 집과 스포츠카를 버리고 가평 시골로 떠났다.


피자는 인생 두 판째에도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매일 아침 6시 30분 가평에서 대학로 피자 가게로 출근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곳에서 직접 손님들을 맞는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다이어리를 꺼냈다. 하루 일정, 일상에서 느낀 감정, 순간순간 떠오른 아이디어 등이 적혀 있었다.

메모는 언제부터 해왔나요?


10년 전 40대 후반부터 썼어요. 사실 그 이전에도 다이어리를 사용했지만 그땐 돈에 대한 메모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인생에 대한 메모입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주로 제 느낌을 적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연극적으로 설정해보고 대사도 적어보는 것이지요. 그중 괜찮은 내용은 노트북으로 다시 옮깁니다. 습관이 되니 여러모로 도움이 돼요. 기록이 축적되니까 책을 쓰게 되고 논문을 쓰게 되고요. 또 하나는 시간을 계획 있게 사용하게 됐어요. 농부가 농사짓듯 시간을 농사지을 수 있게 된 거지요. 분신처럼 누굴 만나더라도 항상 끼고 다닙니다.


피자 가게는 여전히 잘되던데 장사 비결이 뭔가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관계성이에요. 배우는 관객과 연출과의 관계성에 의해서 공연이 이뤄집니다. 인생도 그렇더라고요. 사람과의 관계성이 얼마나 밀도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져요. 관계성이 시원치 않으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잖아요. 피자 파는 게 제겐 비즈니스지만 상거래는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손님들과의 관계성을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처음 오신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 22년을 기다렸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손님이 가실 땐 “멀리 못 나갑니다. 또 봐요”라고 말하지요. 그 손님이 나가면서 ‘저 사람이 날 기다린다네’ 하며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까요? 손님들과 피자 한 판으로 인생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관계성을 높이는 저만의 방법이지요.


연극처럼 사네요.


인생이 무대잖아요. 관계성이란 어려운 게 아니에요.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각자 인생의 주인공끼리 만난다고 생각해보세요. 내 삶도 재미있고 남과의 관계성이 훨씬 좋아집니다. 당연히 세상도 아름답게 보이고요.


매 순간 의미를 담고 살겠는데요?


저는 아침에 ‘태어나듯 일어나서’ 밤에는 ‘죽음을 맞듯’ 잠을 잡니다. 그러면 한 인생을 살 수 있잖아요. 1년이면 365개의 서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겠습니다.


매일 밤 죽는데 두려울 게 뭐 있어요. 저는 2050년 2월 5일에 죽는다고 가정해놓고 바둑판을 복기하듯 삶을 복기합니다. 미래에서 과거로 온 터미네이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2050년 완성된 그림에서 2022년의 오늘을 고쳐보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잖아요.

2050년에서 2022년으로 온 터미네이터가 되는 거네요.


삶의 마지막 날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하지 않도록 제 인생의 하루를 바꿔보는 겁니다. 예전에는 오늘 열심히 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반대로 먼 훗날 이뤄진 꿈에서 과거를 보며 그려보니까 훨씬 생동감 있고 힘들지 않더라고요. 삶의 태도도 달라지고요. 게을러질 땐 2050년의 나는 다 이룬 사람이고 가치 있게 살았노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오늘 이렇게 살면 안 되지’ 하는 겁니다. 삶이 객관화되는 거지요. 내 안에 그 꿈이 이뤄진 상태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바라봤을 때 잘못된 방향으로 가거나 안주하고 있으면 ‘네가 그렇게 살면 안 되지’ 하면서 저를 이끄는 겁니다.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터미네이터식 삶입니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30대 후반에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기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는데 왜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나요?


개그맨 생활을 조퇴한 거지요(웃음). 당시 후배 박미선이 ‘오빠, 지금 잘나가는데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때 제가 했던 말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나는 강산이 ‘강’과‘ 산’이 아니라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환경이 안 바뀌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열심히 안 한 거라고 본다. 나는 10년 동안 열심히 했다. 이제 다른 10년을 살기 위해서 떠난다’고 말했지요. 그때는 인간의 수명을 70세 정도로 보던 때라 남은 30년을 10년씩 나눠서 세 번의 인생을 살고 싶었어요. 하나의 인생만 살고 가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퇴한 거지요.


중년에게 실패의 대가는 클 수 있는데요.


무모해 보인다는 주변의 반대가 오히려 제겐 해낼 수 있다는 원동력이었어요. 무지개를 따러 간 나폴레옹을 생각했지요. 하늘에 뜬 무지개를 잡으러 떠났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나폴레옹을 친구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너희들은 주저앉아 있었지만 나는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기까지 갔다 왔다’고 말하지요. 그게 도전해야 얻는 일종의 성취감 아닐까요? 성장을 신장계로만 잴 필요는 없잖아요. 이걸 함으로써 얻는 성취감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컸던 거지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저지르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겁니다.


위기는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사업 초기에 빚도 많이 졌고 이혼의 아픔도 겪었지요.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니까 더 이상 헤쳐 나갈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이쯤에서 삶을 끝내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지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잖아요. 살기 위해 딱 하나만 생각했어요. ‘나는 지금 터널 속에 갇혀 있다. 어딘가에 출구가 있으니 일단 뛰자.’ 가게 청소, 광고 전단 뿌리기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한참 뛰다 보니 어느 순간 하얀 점이 보이더라고요. 출구가 보이기 시작한 거지요. 그때부턴 그 점만 보고 달렸지요. 위기에는 생각을 하면 안 되더라고요. 생각이 많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만 하게 되고, ‘달리다가 돌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을 갖게 되고요. 위기의 가장 큰 적은 생각이란 걸 알게 됐지요.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도, 위기가 닥쳤을 때도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라는 거네요?


직원들에게 ‘일단 왼발을 먼저 움직여라. 그래야 오른발이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제 경험상 움직이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낫더라고요. 직접 해보면 성공이든 실패든 변화 속에서 나를 보게 되지만, 생각만 하면 선수가 아니라 심판에 머물러요. 머리로만 이것저것 해보고 마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면 지금부터 다이어트를 하면 돼요. 조금은 무모해 보여도 저지르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수습은 저지르고 나서 하는 거지요.

부촌인 성북동에 살다가 왜 가평으로 귀촌했나요?


피자 가게에서 배운 것이 1+1=2가 아니라 3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가평으로 간 이유도 피자가 인연이 됐어요. 남이섬에서 저에게 피자집을 내보자는 제안이 왔거든요.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요. 유명 대기업에서도 몇 차례 제안이 왔지만 100개의 피자집보다 100년 가는 피자집을 만들고 싶다며 거절했거든요. 근데 남이섬 사장이 직접 찾아와 ‘대한민국에서는 대학로에 하나 하고, 남이나라(남이섬)에 하나 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말했어요. 그 말에 빵 터져서 결국 남이섬에 체인점을 냈습니다. 이분이 배울 점이 많아 가까이 지내는데 하루는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기껏해야 아버지처럼 된다면서. 이분과 가까이 살면서 개인지도 좀 받아보고 싶었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서 남이섬 근처로 갔지요.


인생 2라운드를 준비 중인 4050세대에게 조언을 한다면?


내 인생의 주연으로 누군가의 삶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멋진 인생 연기를 펼쳐 가족, 지인 등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어렵지 않아요.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어떤 멋진 일을 하면 ‘그 사람이 그런 일까지 해?’ 하고 놀라곤 합니다. 그 사람이‘ 나’이면 되고, 그런 일이 내 ‘일’이면 되는 거지요. 종종 술 마실 때 ‘인생은 다 그런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왜 체념하듯 인생을 이야기하지요?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야지. 저는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인생은 오늘부터이니 고민은 나중에 힘이 없을 때 하시고 지금은 저질러보세요. 그래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몽키호테는 지금 행복하겠네요?


그럼요. 내 인생의 주연배우답게 내 멋대로 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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