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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중앙일보

LP 판매량 CD 넘었다…아이유 '꽃갈피 LP' 300만원 되는 마법

3000원이 50만원으로, 잠든 LP 깨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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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언스플래시]

어릴 때 집 거실에 커다란 턴테이블 전축이 있었습니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같은 올드팝이 늘 흘러나왔죠. MP3 세대인 저는 LP를 듣는 부모님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무결점에 고음질 음악이 촌스러운 지직 소리보단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세월이 흐르고 이제 전축이 있던 자리는 TV와 사운드바가 차지했고요. 소장용 LP 몇 개는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 뒀어요.


문득 잠들어 있는 LP의 가격이 궁금해 시세를 알아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님이 1985년 학창 시절에 3000원을 주고 중고로 구입한 '신중현과 엽전들' LP의 가격이 자그마치 50만원. 80년대 500원이었던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5000원으로 약 10배 올랐다는 점을 감안해도 물가 상승폭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죠. 소중히 보관만 했을 뿐인데, 희귀 명반 콜렉터가 됐달까요. 보물찾기에 성공한 저는 어머니께 달려갔어요. “이거 50만원이래요! 팔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팔 수가 없대요. 3000원짜리가 50만원이 돼도 팔지 못하는 이유, LP 한 장에 그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죠.

LP 사러 줄 산다고? 2022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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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LP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1.4% 성장했다. [자료 MRC데이터]

LP 붐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음반 판매량 조사업체 MRC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LP 앨범은 4170만 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4% 성장했어요. 재작년엔 1986년 이후 36년 만에 CD 앨범 판매량을 넘어섰고요.


돈이 몰리는 곳엔 리셀러가 있습니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LP도 재테크 수단이 됐어요. 작년 초반까지 3만7000원이었던 비틀즈 베스트 LP 앨범, 이젠 7만8000원에 팔리죠. 아이유 ‘꽃갈피’ LP는 중고 시장에서 약 300만원에 거래됐고요. 음반 업계에 따르면 중고 거래액을 제외한 국내 LP 시장 매출 규모도 2020년 약 600억∼700억원대에서 지난해 100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돼요.


오래된 신중현 아저씨의 LP가 50만원에 팔리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수요가 있으니 가격이 오른 것이겠죠? LP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레코드샵 '모자이크'를 찾았어요. LP 매니아들 사이에서 소문난 중고 LP 명반 판매점이죠. 유창한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 사장이 커피 한 잔 하라며 반겨주더라고요.


커티스 캄부 모자이크 사장은 "7년 전부터 레코드샵을 운영하다가 이 곳에 정착한 지는 2년이 됐는데, 요즘 들어 새로운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물건이 들어오는데,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일요일마다 가게를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선다"고 설명했어요. 가게 내부엔 희귀 명반부터 빈티지 음반, 제3세계에서 건너온 소울, 펑크, 제3세계 LP로 가득했죠. 턴테이블에서 '지직'하며 흘러나오는 하우스 뮤직에, LP를 감싼 포장지를 만질 때마다 바스락하는 소리가 좋았고요. 유행하는 아이돌 신보는 없지만, 가게 주인의 취향에 맞춘 희귀 LP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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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당동 레코드숍 '모자이크'에서 판매하는 희귀 LP [사진 박영민]

잡음도 음악이 되더라

더 대중적인 취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종로3가의 '서울레코드'가 떠올랐어요. 모자이크가 콜렉터를 위한 유니크한 감성의 LP 판매점이라면, 1970년대 중반에 문을 연 서울레코드는 LP의 쇠락과 부활을 지켜본 산증인이에요. 황승수 서울레코드 대표는 창업 당시 이 곳의 직원이었대요. 그는 "10년전 쯤엔 당시 50~60대 손님들이 LP를 많이 찾았는데 처음엔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그런데 지글지글 모닥불 타는 소리도 듣다 보니 좋더라. 잡음도 음악이 되더라"고 추억했어요.


황 대표는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즘은 부모님과 자식 세대가 함께 가게를 찾는다는 것"이라며 "옛날 분들은 그리움, 젊은 층은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LP의 매력"이라고 했어요. 그는 "개인별로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돌 신보나 클래식 명반 모두 골고루 잘 팔린다"며 "우리 또래는 어릴 때 팝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 젊은 층은 분위기 있는 재즈를 많이 듣는 게 또 재밌다"고 했죠.

이 편한 세상에 레트로 붐이라니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편한 세상에 살고 있어요. 스마트폰 하나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배달도 시킬 수 있고 쇼핑도 할 수 있죠. 반면 아날로그는 한없이 불편합니다. 그런데도 LP와 같은 레트로 붐이 지금 세대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서요. 불편하지만 그 방식이 주력이었던 시대가 그리워서. LP를 들으면 훨씬 더 인간적이었던 삶, 순수했던 옛 시절을 되찾는 느낌이 들어요." (이재경, 59세, 서울레코드 단골)

최근 LP 붐의 또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건 MZ세대예요. 예스24가 지난해 LP 구매자 연령을 집계했더니 20~30대가 약 40%를 차지했어요. 이날 방문한 모자이크, 서울레코드, 김밥레코즈 등 총 세 곳의 레코드숍 모두 주 고객층이 20대 젊은 친구들이더라고요. MP3부터 스마트폰까지 디지털로 음악 듣는 게 익숙한 젊은 세대가 아날로그 유물인 LP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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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3가 레코드숍 '서울레코드'에서 황승수 대표가 판매 중인 LP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박영민]

연남동 김밥레코즈에서 만난 하소윤(24)씨는 아이돌 신보 LP를 구경하러 아침부터 일찍 경기 의정부시에서 올라왔어요. 그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소장하고 싶은데 구매 전 실물로 제품을 직접 보기 위해 왔다"며 "와보니 디자인도 다양하고 앨범 자켓도 큼지막해서 보는 맛이 있다"고 했어요.


옆에서 재즈 음반을 살펴보던 전재영(29)씨는 "어머니가 노라 존스(미국의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노래를 좋아하셔서 선물을 사드리려고 가게를 방문했다"면서도 "직접 턴테이블로 음악을 감상하니 너무 좋아서 내가 살 재즈 음반도 살펴보고 있다"고 했고요.


MZ세대가 LP 시장의 주 고객층으로 떠오르면서, 음반 산업계는 LP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아이유, 블랙핑크, 방탄소년단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도 잇따라 LP를 발매했고요.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인 이담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소장하고 싶은 젊은 친구들에게 LP는 스트리밍 음악에 비해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준다"며 "소장한다는 측면에서 30cm 크기의 브로마이드 같은 LP의 앨범자켓이 매력적일 것"이라고 했어요.

LP 붐, 아직 꿈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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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 '마장뮤직앤픽처스' 공장에서 한 직원이 LP의 원재료인 PVC를 프레싱하고 있다 [사진 박영민]

뒤늦게 찾아온 LP 붐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사람들, 누굴까요? LP를 만드는 사람들이죠. LP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 지난달 24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마장뮤직앤픽처스 LP공장을 찾아갔어요. 이 곳은 국내 유일의 LP 제작공장이자 클래식 LP를 프레싱할 수 있는 전세계 몇 안 되는 LP 제조사예요. 마침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의 음반을 제작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직원 10명이 수동 프레기 머신 2대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어요. 프레스기의 온도는 자그마치 100도 이상. 이 기계에 재료를 넣으면 동그란 모양의 PVC 덩어리인 ‘마더’가 나오는데요. 외국에서는 하키볼처럼 생겼다고 해서 '퍽(puck)'이라고 하고, 이 곳에선 햄버거라고 부른대요. 어감이 귀엽지 않나요?


LP는 한 장 제작하는 데에 통상 약 1주일 정도의 과정이 걸려요. 제작 의뢰후 납품 과정까지 계산하면 약 3~6개월이 소요되고요.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서죠. 디지털 음원을 LP라는 아날로그 음원으로 옮기기 위해 소릿골을 새기는 커팅 작업을 하면, 소릿골이 새겨진 ‘래커’를 본떠 대량 생산을 위한 스탬퍼를 만들어요. PVC 덩어리를 정확한 압력과 온도로 압축한 후, 검수해 포장하면 LP 한 장이 완성돼요.

"LP 붐을 체감하게 된 시점은 2020년 하반기였어요. 500장씩 주문하던 수량이 1000장, 2000장, 1만장, 10만장으로 쭉쭉 늘었죠."

하종욱 마장뮤직 대표는 "가요와 클래식 명반 재발매뿐이었던 업계 흐름이 신보 발매에 열중하고 있다"며 "2016년 설립 당시 2만장이었던 연간 생산량은 지난해 약 20만장을 기록했다"고 설명했어요. 5년 새 10배나 성장한 거예요. 그래서 공장은 매일 2교대, 야간근무로 대응하고 있대요. 필요할 땐 철야 작업도 하고요. 공장이 설립된 지 벌써 6년, 추억 속 LP를 다시 찾는 이들 덕분에 요즘 직원들은 누구보다 바쁘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최근 몇 년 새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대중문화를 관통한 레트로 붐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뭉클해지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뱀발: 우크라 전쟁이 LP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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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언스플래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유가 상승 등 원료 수급 악재로 LP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LP의 원재료인 PVC의 가격은 약 30% 이상 상승했어요. 도금 과정에서 필요한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도 쓰이기 때문에 물량 확보가 쉽지 않고, 생산원가도 2년 전보다 약 3배 올랐어요. 니켈 등 재료 수급 문제 때문에 LP 발매가 미뤄지는 경우도 있어요.


국내 LP 제조 원가는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 높은 편이에요. 하 대표는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 아직은 납품 단가를 올리지 않고 있지만 (사태가 지속되면)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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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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