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현역 여의사의 마지막 말 "힘내""가을이다""사랑해"
한원주(94)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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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땐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낫기도 합니다.”
향년 94세로 별세한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로 활동한 한원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의 평소 지론이다. 5일 경기 남양주 매그너스요양병원에 따르면 한원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지난달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아흔이 넘은 고령에도 지난달 7일까지 직접 환자를 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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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직전까지 하루 환자 10여 명 돌봐
그는 산부인과 개업의로 일하다 80대 중반의 나이에 요양병원의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별세 직전까지 매일 1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다. 죽음을 앞둔 동년배들이 있는 요양병원에서 내과 과장으로 10여년 째 일했다. 지난해 가을엔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는 제목의 에세이집도 재출간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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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별세 직전까지 노인 환자들 곁을 지키려고 애썼다. 지난달 중순 노환이 악화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지난달 23일 매그너스요양병원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말년을 헌신한 병원에 입원해 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내다가 영면에 들었다. 고인이 오래 생각해온 마지막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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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환자, 마음마저 돌보며 치료
고인은 고령의 환자들에게 말동무가 돼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며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치료해줬다. 일평생 ‘나’보다 ‘남’을 위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그는 건강 관리를 위해 적게 먹고, 늘 운동하면서 신앙생활에 매진해 왔다. 그는 평소 “그냥 살아오며, 매일매일 즐겁게 사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입원해 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조금 들면 죽고 싶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그리고 수시로 죽으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는 것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해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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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약 40년 전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개인 병원을 정리하고 의료선교의원을 운영하며 수십년간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런 무료 진료 봉사활동은 지난해 말까지 매월 한 차례 정기 봉사 외에도 매월 한두 차례 정도 더 다녔다.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무료 진료 봉사는 잠시 중단한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환자 치료에 도움되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의학 세미나도 코로나19 상황 전까지 꾸준히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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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아흔이 넘은 노령에도 고인의 환자에 대한 정성과 사랑은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매그너스요양병원 관계자는 “고인은 돌아가시기 직전 병상에 계실 때도 보다 나은 진료를 위해 의학 관련 서적을 늘 탐독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이 별세 전 가족과 직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세마디다.
80대 중반의 나이에 요양병원의 의사로서 도전한 고인을 요양원 직원들은 예우 차원에서 ‘원장님’이라고 불렀다. 매그너스요양병원 관계자는 “모든 직원의 정신적 지주였던 원장님께서 돌아가셔서 갑자기 어깨가 다 무너진 것 같다”며 “환자분들도 한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원장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반듯한 모습으로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셨다”면서 “병상에서 ‘원장님’하고 불러드리면 눈을 크게 깜박이셨으며, 조용히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고 울먹였다.
그의 ‘국내 최고령 현역 여의사’라는 이력은 각종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남 진주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한규상)와 독립운동가 어머니(박덕실) 사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해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어 남편과 미국으로 유학 가 내과 전문의를 딴 뒤 귀국해 개업의로 일했다.
남양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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