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제인 폰다 “날 체포해줘” 매주 연행되러 집 나서는 까닭
전세계 환경단체들의 새로운 무기로 떠오른 현장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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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제인 폰다는 다음달 21일 맞는 자신의 82번째 생일을 구치소에서 보낼 작정이다. 구치소 창살이며 추위엔 이제 익숙해졌다. 지난 10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수감돼왔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자는 환경보호 시위를 주도해온 그의 혐의는 의회 무단 점거다. 현장에서 연행될 걸 알면서도 매일 같은 자리에 간다. 그에겐 체포가 시위의 수단이 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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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연행되면서 받는 카메라 세례와 언론 보도가 환경보호를 위한 자신의 신조를 홍보하는 데 효율적인 수단이 됐다는 게 그의 판단. 오스카상 수상 경력의 이 명배우에게 체포는 이제 일상이다.
체포 현장에서 더 이목을 끌기 위해 아예 ‘체포 유니폼’까지 택했다. 새빨간 모직코트다. 때론 까만 베레모도 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수갑은 필수 아이템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에도 그는 빨간 코트 차림으로 환히 웃으며 연행됐다. 꼬박 하룻밤 동안 구금된 뒤 풀려난 그는 기자들에게 “(구치소의) 바퀴벌레들과 잘 지냈다”(할리우드 리포터) “빨간 코트를 이불삼아 자긴 했는데 뼈마디가 쑤시네”(워싱턴포스트)라고 농담할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뉴욕타임스(NYT)는 폰다에 대해 “자신의 명성과 인기를 활용하는 유명인 시위대의 대표격”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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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유명인뿐 아니다. 현장 체포는 일반인 시위대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영국의 환경보호 단체인 익스팅션 리벨리언(Extinction RebellionㆍXR)이 대표적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제기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기존의 시위 방식이 식상해졌다는 데서 이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들이 찾은 해답은 현장 체포다. 새로운 방식의 시위를 한 뒤 현장에서 체포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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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의 리더 격인 사이먼 브람웰은 NYT에 “폭력적이지 않되 이목을 끌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며 현장 체포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석유회사인 쉘의 로비에 가짜 피를 잔뜩 흘려 놓는다거나, 회사 정문 회전문 사이에 들어 앉아 임직원들의 이동을 막는 방식이다. 퍼포먼스성 시위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역사 및 버스 정류장도 이들의 단골 무대다.
규모도 커졌다. 영국뿐 아니라 호주ㆍ독일ㆍ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시위가 확산했다. NYT는 “XR은 시위대에게 체포될 것을 독려한다”며 “기존 사법체계를 활용해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 이들에게 체포는 유용한 수단이 됐다”고 풀이했다. 비폭력 시위인만큼 형량이 무겁지 않다는 점도 ‘체포 시위’의 확산에 한몫했다. 구금이 된 후 대개 약 130달러(약 15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면 풀려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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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의 체포 시위는 각국에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들을 두고 “비협조적인 심술쟁이들(uncooperative crusties)”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정색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방식은 자제해야 한다”는 사설까지 썼다.
과격하되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시위한 뒤 체포되는 방식은 그러나 앞으로도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XR의 일원인 바네사 스티븐스는 NYT에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나는 아이도 낳지 않기로 했다”며 “앞으로도 계속 시위하고 계속 체포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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