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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손잡고 340회 마라톤 완주, 아내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눕터뷰

[눕터뷰]

29살에 시력 잃은 아내 위해 18년간 손잡고 뛰어준 남편

김미선·김효근 부부의 행복한 달리기


42.195㎞ 마라톤 풀코스와 100㎞ 이상 울트라마라톤을 모두 합쳐 340여 차례 완주.


시각장애인 김미순(59) 씨가 지난 18년간 달려온 기록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이런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


예순을 일 년 앞둔 김미순(59) 씨는 시각장애 마라토너다. 아내로, 엄마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어둠의 세상이 찾아왔다. 웅크리는 시간 대신 행복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든든한 동반자 남편 김효근(58) 씨가 항상 함께한다. 두 사람은 "영원히 꼭 잡은 손, 놓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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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김미순의 꿈은 ‘여행가’였다.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고 산과 들을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철쭉꽃 흐드러진 소백산 자락에서 평생의 인연인 남편 김효근을 만났다. 가정을 꾸리고 예쁜 딸도 얻었다. 집을 안락하게 꾸미고 정성스레 화초를 키우며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다.


스물아홉, 의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시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베체트병이라고 했다. 베체트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질환으로 여러 장기에 반복성, 폐쇄성 혈관염이 발생하는 만성 전신질환이다. 실명, 신경마비,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중증 질환이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어요. 시력을 잃는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죠”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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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방 가리지 않고 용하다는 의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결국 마흔한 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각장애 1급이다. “중도장애인들은 선천적인 장애보다 더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우선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보이던 삶에서 안 보이는 삶으로의 전환도 더딜 수 밖에 없죠.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동안 눈이 멀지 않기 위해서만 노력했어요. 눈먼 후를 대비했더라면 조금 더 수월했겠죠.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딸 아이 얼굴도 더 많이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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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내가 못 본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더듬거리는 모습을 남에게 보일까 항상 염려하고 살았던 거죠. 그때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이 ‘더듬거리는 것 보다 보면서 죄를 짓는 게 더 나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제야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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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차 찾은 중국의 한의원에서 운동을 권유받았다. “여러 가지 운동을 했었는데 목표가 없으니 금세 흥미를 잃게 되더라고요.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10㎞를 뛰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자유로움만이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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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혼자 뛸 수 없다. 동반주자(초심자들을 위해 옆에서 같이 뛰는 베테랑 마라토너)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손을 잡고 뛰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하고는 할 수 없었다. 정식으로 마라톤을 하고 싶다는 말에 남편은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겠다고 대답했다.


“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게 있어요”


김미순은 뛸 수 있는 힘의 근원이 가족의 사랑이라고 말했다.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는 건 전적으로 가족의 헌신을 필요로 해요. 남편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에 ‘그래 한 번 해보자’라고 말해주고, 딸 아이는 ‘우리 엄마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줘요. 눈을 잃고 가족의 사랑을 넘치게 얻었어요. 행복을 찾았어요”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부부는 주말마다 ‘마라톤 뛰러 갑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를 붙이고 대회에 참가한다. 1년에 42.195k㎞ 풀코스는 50개, 100㎞가 넘는 울트라 마라톤은 15개쯤 뛴다. 2017년에는 공식 대회만 3800㎞를 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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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도 마라톤 훈련에 맞춰져 있다. 매일 약 6㎞의 거리를 산을 넘어서 출근한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정비소 한쪽에서 자전거 훈련을 한다. 오후에는 수영과 러닝을 한다. “쉬는 날 없이 운동해요. 쉬면 오히려 여기저기가 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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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시작하고 나서 그에게는 예상치 못한 삶이 펼쳐졌다. “나가고 싶은데 안 나가는 거랑 못 나가는 건 천지 차이에요. 혼자서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은데 마라톤을 시작하고 나서는 남편 손을 잡고 세상을 누빌 수 있게 되었어요” 증상이 전신으로 퍼질 수도 있다던 베체트병의 악화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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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쉬지 않고 달리는 겁니다”


극한의 마라톤에도 도전했다. 지난 2015년에는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발해 강원도 고성까지 622㎞를 6박 7일 동안 달렸다. 강화~경포대 308㎞, 부산 태종대~임진각 537㎞까지 종·횡단 울트라 마라톤 코스를 두 번씩 완주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우리나라 여성 마라토너로는 최초다. “울트라 마라톤은 낮과 밤 구분 없이 뛰어야 해요. 길 위에서 잠을 청하고 샤워도 옷 위에 물을 붓는 게 끝이죠. 노력한 만큼 전진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걸 하면서 마음이 더 단단해졌어요. 더는 다른 사람의 거친 혀에 휘청거리지 않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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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순은 그저 좋아서 달리는 것 외에 선한 발걸음에도 도전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100㎞를 달리며 기부를 하는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마쳤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영국에서 시작된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옥스팜에서 진행하는 대회다. 4명이 조를 이뤄 100㎞를 38시간 안에 완주하는 대회로 참가비와 모금액은 전액 기부된다. 김미순·김효근 부부는 친구들과 함께 ‘멈추지 않는 도전’팀으로 3회째 참가해 23시간 23분 9초로 완주에 성공했다. “내가 겪어봤으니 장애인에게 치료비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알잖아요.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기부도 할 수 있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그녀의 발걸음은 기부로 연결된다. 지난 2014년부터는 한국가스공사 인천LNG기지의 후원을 받아 대회 참가 1㎞당 1000원씩 장애인 체육 발전을 위해 기부한다. 그가 완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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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철인3종경기도 시작했다. 거친 물살에서 수영하고, 자전거 뒷자리에서 페달을 돌려 완주에 성공했다. 모든 도전에는 남편이 함께한다. “항상 손을 잡고 다니니 대화가 끊이질 않아요. 손을 잡는 강도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전해지기도 하죠. 우리는 가끔 투닥거리긴 해도 부부싸움은 하지 않아요. 서로 대화 없는걸 견디지 못하고 운동을 많이 하니 싸울 기력이 없기도 해서요” 그리고 ‘꼭 잡은 두 손’의 다음 목표를 밝혔다. “2016년에 몽골 고비 사막 225㎞를 달리고 나서 사막 레이스 그랜드 슬램에 도전을 꿈꾸게 되었어요. 그리고 남극, 사하라 사막, 미국 대륙 횡단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는 동안 후회 없도록 달리고 싶어요”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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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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