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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아, 티켓 고맙다"···시스루 입고 노래하는 72세 나훈아

17일 전국투어 시작…전석 매진 행렬

11년만 ‘드림 콘서트’ 잇는 열기 계속

눈물 닦고 밝은 분위기 속 25곡 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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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를 앞두고 지난 3일 새 앨범 ‘벗 2’를 공개한 나훈아. [사진 예아라]

“저는 여러분들 절대 그냥 못 보냅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서 자식분들이 표를 구해가지고 갔다 오십쇼 하고 보내주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제가 책임이 큽니다. 지금부터 11년간 못 돌려드린 청춘을 돌려드릴 테니 받으시기 바랍니다.”

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에서 시작된 전국투어 ‘청춘 어게인’의 첫날 무대에 오른 가수 나훈아는 “공연장에 들어갈 때는 늙어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젊어져서 나와서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몰라볼지도 모른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일흔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놀라운 에너지를 뿜어내며 ‘회춘’의 무대를 펼쳤다.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진행한 ‘드림 콘서트’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지난 공연에서는 11년 만에 무대에 올라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할 말은 많아도, 말 못합니다”(‘예끼, 이 사람아’)라고 부르며 눈물을 보였다면, 이번 공연은 한층 밝아졌다. 2008년 신체 훼손설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연 것을 제외하면 2006년 40주년 기념 공연 이후 긴 칩거에 들어갔던 그는 지난 2년간 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나며 그간의 상처를 회복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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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연은 공히 2시간 동안 25곡을 가득 채웠지만, 레퍼토리는 전혀 달랐다. 이달 초 발매한 새 앨범 ‘벗 2’의 타이틀곡 ‘자네!(8자는 뒤집어도 8자)’도 처음 선보였다. ‘누가 울거든 그냥 두시게/ 실컷 울고 나면 후련해질 거야’ ‘지나간 상처는 잊어버리게/ 그래야 또 다른 행복을 맛보지’라는 노랫말처럼 그는 지금의 행복을 만끽했다. ‘벗 2’는 40주년 기념앨범 ‘벗’에 참여한 작곡가 18명과 작사가 10명 등 28명이 참여한 앨범이다.

현장 투표를 통해 2017년 발표한 앨범 ‘드림 어게인’의 수록곡 6곡 중 1곡을 골라 부르는 깜짝 이벤트도 진행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내 청춘’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나훈아는 “우리 스태프처럼 준비된 사람들이 아니면 이런 코너를 할 수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1966년 데뷔 이후 ‘트로트 황제’로 군림해온 그가 ‘울긴 왜 울어’ ‘너와 나의 고향’ ‘고향역’ ‘머나먼 고향’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곡들을 잇따라 부르자 흥이 오른 관객들은 객석 사이 통로로 나와 춤판을 벌이기도 했다.


현직 아이돌에게도 꿈의 무대인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운 7000여 관객들은 연신 10대 소녀팬 못지않은 함성을 쏟아냈다. 나훈아가 “여러분들이 돈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려면 옷이라도 많이 바꿔 입어야 되지 않겠냐”며 무대 위에서 상체가 훤히 비치는 시스루 의상으로 갈아입자 “섹시하다”는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찢어진 청바지에 흰색 민소매 차림으로 ‘남자의 인생’을 부를 때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속 프레디 머큐리 못지않은 젊음을 자랑했고, 영어로 ‘앵콜’ 대신 우리말로 “또! 또! 또!”라고 요청이 쏟아질 때마다 너댓벌의 옷을 갈아입고 나와 패션쇼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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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승사자’라는 이름이 붙은 무대. 빨간 두루마기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각각 이승사자와 저승사자로 분한 댄스팀과 연결된 흰 줄과 검은 줄을 한손에 움켜쥐고는 마치 산신령이 되어 호령하듯 노래했다. 이애란의 ‘백세인생’을 개사해 ‘7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노래 좀 더 부르다가 가겠다고 전해라’고 운을 띄운 그는 ‘80세엔 짜증 나고 성질나니 오지말라 전해라’ ‘90세엔 성질나면 천년만년 안 간다고 전해라’ ‘100세엔 죽으면 죽었지 못 간다고 전해라’라며 센스 넘치는 연출을 선보였다.

대부분 중장년층이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온 20~30대 젊은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전남 광주에서 온 대학원생 김은아(32)씨는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인데 생각보다 너무 신나고 재밌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남편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이윤경(66)씨는 “지난해, 지지난해 모두 예매에 실패했는데 올해는 두 아들과 며느리까지 4명이 모두 도전한 끝에 성공했다. 둘째 며느리에게 너무 고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나훈아 공연은 ‘피튀기는 티켓팅’으로 유명하다. 서울의 경우 지난번 공연이 열린 올림픽홀(3500석)보다 2배가량 큰 체조경기장(7000석)으로 옮겨 19일까지 3일간 공연하지만 2만석 넘는 좌석이 8분 만에 매진됐다. 다음 달 예정된 부산ㆍ대구ㆍ청주는 물론 7월 울산까지 지방 공연 역시 2~4분 만에 전석 매진됐을 정도. “제가 신비주의는 무슨 얼어 죽을 신비주의냐”며 “내년에도 나훈아 공연 또 구경 오라”며 지속적인 활동을 암시했지만 긴 공백기 끝에 돌아온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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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달 초 6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한 이미자 선배가 이번 공연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쎄했다”고 했다. “나는 언제까지 할 수 있겠노”라는 생각에서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미자가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를 처음 치고 나갔다면, 나훈아는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미자가 노래를 잘하는 기술자로서 ‘엘리지의 여왕’이 됐다면, 나훈아는 초기 전통가요를 부르는 가수를 넘어서 ‘무시로’부터 자기 노래를 짓는 뮤지션으로서 역량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생명력을 연장했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최규성 대표 역시 계속해서 신곡을 발표하고, 그것이 대중에게 소구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 대표는 “조용필이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를 수용해 ‘바운스’(2013)를 발표한 것처럼, 나훈아 신곡 ‘남자의 향기’나 ‘자네!’ 역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고민을 담아낸 흔적이 느껴진다”며 “TV조선 ‘미스트롯’ 등을 통해 전 연령층에서 트로트 바람이 새롭게 불고 있는 만큼 팬층이 더 확장될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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