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월급내고 산 '죽음 티켓'···英컨테이너 베트남인의 비극
경찰 "냉동컨테이너서 숨진 39명 베트남인"
베트남 외교부 등 "심각한 비극, 충격 받아"
낙후지역서 일자리 찾아 유럽 밀입국 시도
1만~4만 파운드 내고 실패시 빚더미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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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지난달 냉동 컨테이너에 몸을 싣고 밀입국하려다 숨진 39명이 모두 베트남 출신으로 보인다고 영국 경찰이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베트남에서는 “가슴이 찢어진다"며 비통해 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경제 성장이 이뤄지고 있지만 낙후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일해 빚을 갚거나 본국 가족에게 송금하기 위해 밀입국을 시도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에식스주 경찰은 지난 1일(현지시간) “현재 희생자들이 베트남 국적자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베트남 당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에식스주 한 산업단지에서 39명이 화물 트럭 냉동 컨테이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주영 베트남 대사관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영국 경찰의 통보를 듣고 충격을 받았으며 몹시 슬프다"는 입장을 냈다. 이어 “희생자들의 구체적인 신원은 조사가 더 필요하고, 향후 희생자가 확인되면 본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지원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트남 외교부도 대변인 성명에서 “심각한 비극이며, 희생자 가족에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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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은 지금까지 영국에서 해당 컨테이너를 트럭에 적재해 운전한 모리스 로빈슨(25)과 해당 컨테이너를 벨기에 제브뤼헤 항구로 실어나른 에모스 해리슨(22)을 기소했다. 로빈슨은 살인ㆍ인신매매ㆍ밀입국 등의 혐의다. 해리슨에게도 과실 치사, 인신매매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북아일랜드에서 살인 및 밀입국 알선 등에 관여한 혐의가 있는 로난, 크리스토퍼 휴즈 형제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베트남 수사 당국은 피해자들의 고향 중 한 곳인 하띤성에서 불법 밀입국을 조직하고 알선한 것으로 보이는 두 명을 체포했다.
베트남에서는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사망 사고가 일어난 지난달 26일 베트남의 가족에게 해외로 가려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팜 티 트라 미(26)는 영국으로 가는 조건으로 밀입국 조직에 3만 파운드(약 4500만원)를 지불했다. 이 금액은 베트남 시골에서 30년 치 월급에 해당한다고 B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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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이들은 대부분 돈을 벌어 본국으로 송금하기 위해서라고 인신매매 반대 단체가 설명했다. BBC에서 베트남 지역을 담당하는 지앙 응우옌은 “베트남의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모두 수혜를 입고 있지는 않다"며 “노동력이 크게 남아도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역 등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영국이나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이들은 대부분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고 한다. 지난 수십년간 이들 지역에서 불법 이민과 밀입국 사례가 발생했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은 베트남 중북부 하띤성, 응에안성, 트어티엔후에성 등에 몰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북부 도시들이 많았는데, 점차 경제 형편이 열악한 중부로까지 번지고 있다. 연간 1만8000명 정도가 유럽으로 밀입국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BBC는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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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떠난 이들이 영국을 선호하는 것은 이미 자리를 잡은 교민 사회가 크고 이들이 일자리나 숙소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영국의 베트남 식당이나 네일숍, 불법 대마초 산업 등에서 저숙련 인력 수요도 많다는 것이다. 옥스퍼드-브룩스대에서 정치사회학을 강의하는 탐신 바버 박사는 “현재 저숙련 베트남 이민자가 합법적으로 영국에서 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회 루트를 통해 위험한 여정에 나서는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밀입국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이자로 돈을 빌리기도 한다. 입국이 실패하면 빚더미에 앉게 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영국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서 악순환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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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한 네티즌은 “헛된 꿈이 비극으로 끝났다. 남은 가족이 짊어질 엄청난 빚을 갚는 것을 도울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위험한 밀입국 시도가 없어지도록 알선 조직을 단속하고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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