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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중앙일보

1500만개 팔린 스테디셀러···‘틱톡 스위치’ 누가 만들었을까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디자인전

재단 운영하는 딸 지오바나 방한

"디자인 원천은 유머감각·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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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디자인했는지는 중요치 않아. 쓰임새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해.”


‘이탈리아 디자인의 대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1918~2002)의 말이다.


지난 17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아시아 최초 대형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밀라노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카스틸리오니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형 리비오, 피에르 지아코모와 함께 건축사무소를 세우고 본격적인 디자인 활동을 시작했다. 생전에 그는 480여 공간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50개 이상의 제품을 디자인하며 이탈리아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황금콤파스상’을 8회나 수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의 장식성에 취해 있을 때, 카스틸리오니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일상을 관찰하고, 실험적인 아이디어로 기능성이 돋보이는 제품들을 만들었다. ‘필요에 의한 디자인’을 우선시 해온 그의 디자인 철학을 젊은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은 ‘카스틸리오니의 생각법’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다. 세계적인 유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 알베르토 알레씨, 엔조 마리, 필립 스탁이 카스틸리오니를 ‘생각의 스승’이라 불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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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딸 지오바나 카스틸리오니가 한국을 찾았다. 지질학자였던 그는 2011년부터 카스틸리오니 미술관 재단을 운영하는 동시에 전 세계 디자인 세미나에 초대돼 아버지의 디자인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난 16일 그를 만나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 세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Q : 카스틸리오니 디자인의 특징을 정의한다면.


A : “늘 '뭔가를 예쁘게 만들려 하지 말고 문제 해결이 먼저'라고 말씀하셨다. 또 ‘디자인은 유행해선 안 된다. 좋은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될 때까지 지속돼야한다’고도 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디자인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 ‘스위치’인데,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이걸 만든 사람이 아버지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소리 높여 자신의 존재감을 외치지 않고, 조용히 제 역할을 하는 이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아버지다운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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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여준 건 ‘롬피트라타 스위치’다. 1968년 출시 이후 단일 제품으로 1500만 개 이상 판매될 만큼 큰 성공을 거두며 카스틸리오니 디자인의 상징이 된 제품이다. 스위치를 껐다 켤 때마다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 ‘틱톡’ 소리를 낸다. 카스틸리오니도 스위치를 만들고 가장 뿌듯해했던 부분이 바로 이 소리였다고 한다. 지오바나는 “이 틱톡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 제품들 중에는 롬피트라타 스위치처럼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것들이 많다. 너무 익숙하고 편해서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가 있다는 걸 잊고 지나칠 뿐. 다리가 3개인 ‘쿠마노’ 테이블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상판을 접어서 벽에 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상판에 동그란 구멍도 나 있다. 한쪽은 둥글고, 다른 한쪽은 병 옆면에 밀착해 잼이나 마요네즈 등의 내용물을 잘 걷어낼 수 있도록 네모나게 만든 ‘슬릭’ 스푼도 카스틸리오니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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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A : “아버지는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과 유머 감각이 많았다. 길거리를 가면서도 무언가 눈에 띄면 다 만져보며 나에게도 꼭 만져보길 권하셨다. 한 번은 내 구두를 사기 위해 신발가게에 갔는데, 아버지는 구두는 안 보고 그 가게의 램프·테이블·의자·카운터 등을 만져보며 궁금한 것들을 직원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구두는 안 사고 이상한 질문만 많이 하니까 직원이 우리를 쫓아내더라. 아버지는 아이처럼 눈을 찡긋하며 ‘다른 가게로 가자’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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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감각 또한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 특징 중 하나다. 앉아서 전화를 받으며 책상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었던 그는 지지대 바닥이 불룩한 ‘셀라’ 의자를 만들었고, 트랙터 안장에 탄력 있는 쇠막대를 연결해 말 타는 기분이 드는 ‘메짜드로’ 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만화 주인공인 스누피를 연상시키는 ‘스누피 램프’도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지오바나는 “아버지는 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즐길 수 있고, 디자인 영감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며 “83세에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아버지는 청년의 눈과 마음이었다고 할 만큼 호기심이 많았고,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디자인을 추구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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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아내를 위해 만든 조명도 있다던데.


A : “펭귄처럼 생겼는데 역시나 문제 해결을 위해 고안된 디자인이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해서 밤새 책을 읽는 편이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어 했던 아버지에게 침대 머리맡 램프는 늘 방해가 됐다. 그래서 아버지는 옆에서 잠자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도록 책에만 빛을 비추는 조명을 생각했다. 빛을 위로 쏘아 거울에 반사시키면 책에만 조명이 비치는 램프다. 덕분에 부모님은 침실에서 싸우는 일이 없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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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남자 주인공들의 세련된 거실에 늘 등장해 ‘실장님 램프’라고도 불리는 ‘아르코 램프’ 역시 아내를 위해 고안된 디자인이다. 램프를 단단히 지지하기 위해 무거운 대리석 받침을 썼는데, 아내는 그 램프를 필요에 따라 거실 곳곳으로 옮기고 싶어 했다. 카스틸리오니는 대리석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막대를 넣어 손으로 들고 옮기기 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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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한국 관람객에게 바라는 것.


A : “여러 오브제의 형태에만 집중하지 말고, 왜라는 질문을 갖고 보기 바란다. 왜 이런 모양과 디테일을 가졌을까. 저기에 왜 구멍이 있을까.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가 제품 하나하나를 만들 때마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던 것처럼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기자, 카스틸리오니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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