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일 화장지 60개 사서 집 오자마자 후회한 까닭
‘내 머릿속의 지우개’란 원래 아름다운 멜로 영화 제목이건만, 그 타이틀이 제게 와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변질하였습니다. 사놓은 것도 깜박하고 또 사는 것을 되풀이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엔 집에 생필품이 이미 충분히 있는데도 긴가민가해서 어차피 사 두면 나중에 쓰겠지 하는 안일함으로 구매를 되풀이했습니다. 사기만 했지 재고 파악은 전혀 하지 않았고, 아무 데나 두서없이 놓았기에 정작 필요할 때는 못 찾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 집을 어수선하게 만든 큰 이유 중 하나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누군가 미니멀 라이프를 하며 얻은 긍정이 뭐냐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집에 휴지, 치약, 샴푸 같은 생필품 여유분을 이제는 알게 된 것”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후 욕실용품을 주로 놓는 수납장을 종종 정돈합니다. 물건을 모두 꺼내 수납장을 환기하고 바닥에 깔았던 투명 매트도 닦아줍니다. 물건이 있었을 때 미처 닦지 못했던 수납장 바닥도 구석구석 청소해봅니다.
휴지는 몇 개 남았나, 치약은 여유분이 충분한가, 샴푸를 많이 사놓은 건 아닌가 하며 체크하다 보면 일상의 리듬이 균형을 잡는 느낌입니다. 휴지 여유분은 6개. 이중 절반 정도 남게 되면 새로 사면 됩니다.
문득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집에 휴지가 쌓여있는데도 어느 곳에서 폭탄세일을 하는 걸 보고, 30롤을 1+1로 샀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차도 없었고, 동네에서 꽤 먼 다른 곳에 있었던 겁니다. 더구나 퇴근 시간이어서 대중교통엔 사람이 많았습니다. 무겁기도 했고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가 복잡한 지하철에 탄 다른 분들에게 폐가 될까 싶어 고민 끝에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화장지를 싸게 산 가격 이상으로 예상치 않았던 택시비를 지출했던 겁니다.
무려 60개의 화장지를 사서 집에 들어와 보니 이미 집에는 진즉 사 놓은 화장지가 쌓여있었습니다. 베란다가 온통 화장지로 쌓여있던 경우도 흔했습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와 물욕이 더해 돈은 돈대로 낭비하고, 집의 공간은 화장지가 점령해 카오스가 되었던 겁니다. 이제는 그런 바보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며 우리 집 화장지 여유분을 체크할 때마다 다짐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생필품을 비롯한 집안 물건 여유분을 체크하는 사소한 노력이 집을 한결 쾌적하게 만든다 믿습니다. 넘치는 물건으로 공간을 침범하는 경우의 수가 줄어들어 덩달아 집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을 쾌적하게 만드는 사소한 방법은 악성 재고를 만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여유분을 체크해 생필품을 조절하며, 되도록 악성 재고를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소한 노력이 저처럼 게으르고 정리정돈에 둔한 사람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 해도 여전히 저는 물욕도 많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다만 이제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내 머릿속의 재고파악’으로 변해 갑니다. 집에 수건이 몇 개 있고 휴지가 얼마나 남았나가 제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샴푸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 유혹하는 구매 기회가 있다 해도 차분하게 다음을 기약하는 변화만으로도 미니멀 라이프로 얻은 긍정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사놓고 쓰지도 않은 휴지가 상당한데 또 사서 스스로 한심하다 여기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앞으로도 집을 쾌적하게 만들고 싶어질 때는 새로운 물건을 사서 변화를 주기 이전에, 혹여 악성 재고는 없나 살펴보는 사소한 노력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사소한 노력이 저 같은 사람에겐 집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절대 하찮지 않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 저자 chosun4242@naver.com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