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 박사 따서 편의점 알바···강사법이 부른 슬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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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친한 교수들의 조언이 컸다. 그들은 “8월에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은 4대 보험이 있는 강사를 겸임교수로 우선 채용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병원 등 4대 보험이 되는 곳에 취직하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했다. 강사법에서는 3년간의 재임용 절차와 방학 중 임금‧퇴직금 지급 등 최소한의 지위를 보장하지만, 겸임교수는 이를 보장해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또 “대학이 강사를 제로(0)로 만드는 게 목표”라는 말도 자주 반복했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에서 다른 직업이 없는 전업강사 고용 변동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나서자 대학들이 꼼수를 부리고 나선 것이다. A씨는 “사실상 4대 보험이 없으면 2학기 때 강의를 맡기 어려울 것”이라며 “병원 등에서 파트타임으로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건 분야 강사 중에는 병원에 취직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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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자 처음 이야기했던 것과 다르게 B씨의 근무일수를 놓고 일부 윗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퇴근 시간 이후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하거나 B씨 담당이 아닌 업무를 떠넘기는 일도 잦아졌다. 강사법 시행에 대한 대학의 방침이 설 때까지는 버티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후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근 때문에 다음날 강의까지 지장이 생기자 B씨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B씨는 “이제 와서 교수임용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자니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고, 경력이 부족해 뽑아주는 곳도 없다”며 “10년 걸려 박사학위 취득했는데 편의점에서 알바나 하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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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C(37)씨는 “강사 중에는 교수임용을 준비 중인 사람도 있지만, 강의를 업으로 삼아 일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에게 논문실적을 요구하는 건 결국 대학이 전임교원 수준의 실력을 갖춘 강사를 뽑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말했다. B씨도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거나 실적이 인정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려면 수십에서 수백만 원이 드는데, 한 달에 강의료 70만원을 받아 이를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전임교원처럼 대학이 기본 연구 인프라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사 채용 시 논문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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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놓은 해고 강사 구제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교육부는 해고 강사에게 연구지원사업비 280억원을 우선 지원하고, 지역사회 평생학습·고교학점제 프로그램에서 강의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정책을 추진할 방침을 세웠다. 강사법 시행에 앞서 올해 1학기에만 약 1만개의 강의자리가 줄어들자 마련한 대책이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 시간강사 E(37)씨는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평생학습이나 고교학점제 프로그램에서 강의하려고 10년씩 투자해 박사학위 취득한 게 아니다”며 “학생을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고 전공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 이 길을 선택했는데, 미래가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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