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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에 불경 옮기는 예술… 1700년 '사경' 문화재 된다

삼국시대 시작, 고려 때 꽃 핀 필사 예술

붓끝 털로 0.1㎜ 선 그어 수행 정신 전해

40여년 외길 김경호씨 보유자 인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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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의 한두 개 털로 0.1㎜ 선을 긋는다. 1㎜ 공간에 무려 5~10개의 선이 들어찬다. 글자 한 개 크기가 2~3㎜에 불과할 때도 있다. 불경(佛經)을 옮겨 쓰는 사경(寫經)은 ‘쓴다’의 일상적 의미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다. 고도의 정신집중과 ‘달인’급 훈련으로만 가능한 필사(筆寫)의 예술이다. 1㎜ 크기의 부처 얼굴에 눈과 코, 입을 집어넣기도 한다.


불교국가 고려시대에 찬란한 꽃을 피웠다가 조선 시대 이후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사경이 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1일 ‘사경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하고, 한국사경연구회장 김경호(57)씨를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 문화재청은 김씨가 “40여 년간 사경 작업에 매달려온 장인”으로 “오랜 기간 문헌과 유물을 통해 사경의 재료‧형식‧내용을 연구하고 이를 기술로 승화시켰다”고 밝혔다.



눈도 깜박 않고 집중해야 하는 수행의 예술


사경은 불교 경전을 유포하거나 공덕을 쌓기 위해 경전을 베끼는 일 또는 베낀 경전을 일컫는다. 크게는 필사, 변상도(變相圖) 제작, 표지 장엄 세 가지로 구성된다. 변상도란 경전의 내용이나 그 교의를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고 표지 장엄은 신장상(神將像)·불보살(佛菩薩)·꽃·풀 등으로 표지를 장식하는 것이다. 감지(紺紙) 등 고급 색지에 금과 은 안료로 표현한 선들이 화려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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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제작 과정은 입이 떡 벌어지는 고행의 연속이다. 맨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공간을 선으로 채우기까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눈을 깜박일 수도 숨을 크게 내쉴 수도 없다. 방심하면 선이 비뚤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뾰족한 붓끝의 금니(金泥·아교에 갠 금가루)는 2~3초면 굳어버리기 때문에 머뭇거릴 새가 없다. 아교가 굳지 않게 실내 온도를 35도 이상, 습도를 90% 가량 유지해야 하는 것도 고충이다. 감지에 손때가 묻어날까 수시로 손을 씻는다. 그런 고행을 하루에 8시간씩 해도 작품 하나를 마치기까지 보통 5~6개월, 길게는 9개월이 걸린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을 지낸 박상국 동국대 석좌교수는 “사경은 단순한 경전의 필사가 아니라 이를 통해 마음에 진리의 문구를 새기는 행위”라면서 “고도의 수행성을 띠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정교한 예술의 극치를 보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또 “국보·보물만 200여점이 지정돼 있지만 사실상 맥이 끊어질 위기에서 무형문화재 지정을 통해 현대화와 창조적 계승의 길도 열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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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사경은 불교 전래와 함께 시작돼 역사가 1700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작은 불교 경전을 보급하기 위한 것으로 인쇄술 발달 전 수도사들이 성경을 한 자 한 자 필사하던 것과 마찬가지 목적이었다. 그러다 8세기 중엽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스스로 공덕을 쌓는 수행 형태로 바뀌었다. 통일신라 때(745~755년) 제작된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국보 제196호)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경 유물이다.



고려 때 활짝…국보·보물 등 200여점 지정


사경이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은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 시대 와서다. 『고려사』 등에 따르면 사경 전문 국영 기관이 있었을 정도다. 특히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등 금은자(金銀字) 형식의 사경이 많이 제작됐다. 금은자란 아교에 금박과 은박을 개어 한줄씩 교대로 쓴 경문이다. 충렬왕 대에 중국에 수백 명의 사경승을 파견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조선 시대 들어선 숭유억불 기조 속에 쇠퇴했다. 이후 일부 왕실과 사찰에 의해서 명맥이 유지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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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사경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장은 사경의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되살린 주역으로 평가된다. 1997년 조계종에서 개최한 ‘제1회 불교사경대회’ 대상을 수상하고 2010년 ‘대한민국 전통사경기능전승자(고용노동부지정, 제2010-5호)’로 선정됐다. 각종 교육 기관에서 사경 관련 강의를 하고, 다년간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 서적을 잇따라 냈다.


김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형문화재가 된다는 기쁨보다는 고려시대 글씨보다 더 좋은 사경을 우리 시대에 만들어야 하는 중압감이 크다”면서도 “다만 앞으로 관심이 커지면 관련 연구나 계승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전용 종이‧붓‧먹 등 사경 재료 제작이 더 활발해질 거라는 기대도 비쳤다.


김씨는 전북 김제향교 전교(典校·책임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집안이 불교라 어려서부터 사경과 익숙했다고 한다. ‘한길’ ‘외로운 길’을 뜻하는 호(號) ‘외길’은 고교 때 스스로 지었다. 2000년대 이후 뉴욕·로스앤젤레스 등에서 20여 차례 전시를 통해 해외에도 한국 사경의 높은 수준을 알렸다. 작업할 때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하다 보니 어금니가 모두 빠져 임플란트를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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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으로 2012년 약 8개월에 걸쳐 제작한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이 있다. 가로 6m63㎝, 세로 7.5㎝ 종이에 금니 세필로 신장도, 변상도와 5층·7층탑 463개를 그리고 7층 탑신마다 한 글자씩 모두 3000자의 견보탑품 원문을 써넣었다. 하루 10시간씩 꼬박 8개월이 걸린 작업이다. 그는 사경을 가리켜 “0.1㎜ 안에서 우주를 볼 수 있는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느림의 미학”이라고 소개했다.


문화재청은 오는 30일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사경장’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보유자 인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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