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가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농촌의 모습은 어릴 적 봤던 우리 농토의 모습과 너무 닮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착각과 흥분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첫 대규모 육로(경의선) 방문이 주는 설렘이 더해져 처음 북한을 찾은 이방인을 들뜨게 했다.
기자가 평양을 방문한 건 지난 10~17일. 제4회 아리스포츠컵 축구대회 취재단의 일원으로다.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북측이 내준 대형 버스로 갈아타고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3시간여 달리자 우뚝 솟은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낙랑구역(구역은 우리의 구에 해당) 통일거리 입구에 건설된 30m 높이의 거대한 석탑은 6.15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이듬해인 2001년 지어졌다. 폭이 61.5m에 달하는 아치형 석탑엔 남한과 북한의 여성이 한반도 지도를 마주 들고 있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평양시의 경계선이자 평양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확 뚫린 대로변 양편에 우뚝 선 알록달록 형형색색으로 채색된 아파트와 초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단번에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보니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들엔 주홍, 분홍, 코발트, 비취, 그린, 블루, 아이보리 같은 형광색상의 페인트를 입혀 새 단장을 했고, 최근 건설된 신형 아파트와 60~70층짜리 초고층 빌딩들은 유선형이나 타원형 건축기법을 써 세련미를 더했다.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형성된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평양 시내의 명물로 떠오르면서 스카이라인을 바꿔놓고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1년에 거리 하나씩이 생겨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금 평양은 리모델링 중이다.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서 만난 30대 여성 안미경 씨에게서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명거리 아파트에 산다는 안 씨는 “세대주(북에선 남편을 이렇게 부른다)가 김일성대 교원(교수)이어서 지난해 여명거리의 살림집(아파트)을 무상 배분받았다. 집을 배분받은 날 온 식구들이 같이 울었다”며 “29층인 데다 통유리가 돼 있어 평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소개했다. 5살짜리 딸을 포함, 세 식구가 살고 있는데 방 4개와 위생실(화장실) 2개, 식탁과 주방이 따로 있는 아파트를 배정받았단다.
앞서 2015년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의 아파트는 김책공대 교수와 연구원 등 과학자들에게 무상 분양됐다. 김책공대까지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한 대동강 변 중구역에 형성된 미래과학자거리는 북한의 과학자 중시 정책의 상징이다. 레지던스 은하 타워, 미래과학자거리 트윈 타워-초록 타워-파랑 타워 등이 잇따라 완공돼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고, 단지 내에 상점들이 입주해 있어 편리하게 돼 있다. ‘북한판 판교’라 불리는 이유다. 왕복 6차선 도로를 사이로 아파트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아파트 외벽엔 인공위성의 궤도 모양을 본뜬 심벌로 장식돼 있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원자로의 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외벽엔 ‘최첨단을 돌파하라’ 거나 ‘과학중시’ 같은 구호가 적힌 입간판이 내걸려 있다.
유례없는 고강도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수도에서 이처럼 대규모 건설 붐이 일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측 안내원에게 “대규모 건설사업을 하려면 자재 등을 수입해야 할 텐데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재와 기술이 100% 국산화돼서 제재와는 관련이 없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또 다른 안내원은 “지금 제재가 있다고 하지만 인민들이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때 허리띠 졸라매며 견뎠기 때문에 면역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이렇다.
“고난의 행군 때는 평양에도 배급이 끊기고, 전기 공급이 제대로 안 돼서 열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 재래식 무기론 안 된다, 핵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잘 사는 나라들은 전부 핵을 갖고 있지 않나. 미국도 우리가 핵을 갖고 있으니까 인정하고 대접해주고 있지 않은가.”
안내원이 안내하는 곳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을 뿐 일반 주민들과는 접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자신감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옥류관에 이은 평양의 신흥 명물이라는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선 안내원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달 문을 연 이 식당은 1층에 철갑상어, 연어, 대게, 털게 등이 담긴 대형 수조가 여럿 있고 2, 3층은 1500석 규모의 식당을 갖추고 있다. 수산물과 식재료를 파는 2층의 마트에서는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 수입해온 간장, 식초, 마요네즈, 참기름, 캐비어 같은 고급 식재료가 판매되고 있었다. 보따리상등을 통한 밀거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우리 당국의 설명이다. 가격표를 보니 일제 참기름이 1077원, 이탈리아산 비인코 식초는 700원이다. 북한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4000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高價)다. 북한에선 이를 달러나 유로로 환산해 판매하기도 하는데 1달러에 140원에 거래된다.
식당 1층에서 철갑상어회를 시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북한이 자체 기술로 양식에 성공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철갑상어회는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데 1kg에 14.5달러라고 표시돼 있었다. 외국인 전용 상점이 아닌데도 메뉴판에 달러로 가격이 표시돼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평양 전역에서 미국 달러와 유로,중국 위안화가 통용된다) 평양 중상층 주민들의 구매력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북한이 최근 개인들의 거래와 시장경제 활동을 허용하면서 대규모 재력가(돈주)도 생기고, 월급 이외에 생기는 수입이 상당하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북한 제품의 포장기술과 디자인. 훈제 햄이나 소시지, 수산물들이 진공 포장돼 있었고 과즙을 함유한 다양한 탄산단물(탄산 주스) 캔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10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동료 기자는 “포장기술과 디자인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며 놀라워했다. “국산화 노력의 결실”이라고 북측 안내원은 설명한다.
국산화의 성과는 적어도 화장품, 옷, 신발, 가방과 같은 생필품과 경공업 제품들에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평양 화장품 공장을 찾아 “(북한 화장품은) 하품만 해도 (얼굴이) 너구리가 된다”며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했다. 자외선차단제를 함유하는 등 제품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특히 과거 일본과 중국산이 주류를 이뤘던 판매대는 국산(북한산) 제품이 대신하고 있다.
경제 제재 속에서도 국산화에 어느 정도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과학중시, 과학인 우대 정책에 기인한다는 게 북측 인사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북측 안내원 김 모 씨는 “과학자들에겐 고급 살림집을 우선적으로 무상 제공하고 과학자 전용 상점이 있어서 생필품도 싸게 살 수 있다”며 “그러니 다른 걱정 없이 과학 기술 연구에만 열중할 수 있다”고 했다. 대동강수산물식당의 봉사원 여은숙 씨도 “우리 식당에선 과학자를 영예군인(상이군인)과 함께 우선 봉사하고 있다”며 “최우선으로 방을 내주고 식삿값도 눅게(싸게) 해준다”고 소개했다.
고층 건물, 화려해진 거리와 밝아진 밤거리 등 외형적으로 보이는 평양의 활력과 발전상은 상당 부분 과학 우대, 중시 정책에 기인하고 있었다. 여기에 잉여 생산물에 대해 개인의 소유와 처분권을 인정해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기업)와 포전담당제(농업) 조치와 장마당 경제가 결합돼 시너지를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핵, 경제 병진 정책을 표방한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핵 무력을 완성,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4.27 남북, 6.12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은 지금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비핵화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가 공언한 대로 핵을 내려놓고 과감한 경제 개혁 개방으로 나설지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