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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 난동 취객 제압한 약사, 알고보니 25년 '우슈 유단자'

약사 이승욱 씨 흉기 든 취객 맨몸으로 방어

"환자 해칠까봐 몸으로 막았다”

“20대부터 중국 무술 연마해 제압할 자신 있었다”

약국 치안에 취약…약사폭행방지법안 통과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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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이 흉기를 들고 약국으로 들어오는 순간 의자에 앉아있는 환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맨몸으로라도 제가 막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부산 동래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이승욱(45)씨는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씨는 취객을 제압해 인명피해를 막은 공로로 22일 동래경찰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수상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는 이씨는 “흉기를 든 취객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가족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며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사건은 지난 20일 오후 2시 벌어졌다. 술에 취한 안모(52)씨는 치과 치료를 거부당하자 약국 앞에서 고성을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다. 15분간 고성이 이어지자 이씨는 “영업에 방해되니 조용히 해달라”고 안씨에게 말했다. 안씨는 갑자기 인근에 있는 마트로 가 흉기를 들고 약국으로 뛰어들어왔다.


당시 약국에는 환자 1명과 직원 3명이 있었다. 남자는 이씨가 유일했다. 이씨는 주위에 있는 의자를 손에 쥐고 안씨와 대치했다. 술에 취한 안씨는 위협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112 신고해라’고 외친 뒤 안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씨는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다. 이씨는 흉기에 찔릴뻔한 위기를 수차례 모면했다. 참다못한 이씨는 “흉기를 내려놓고 밖에 나가서 남자답게 한판 붙자”고 안씨에게 제안했다. 이 말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안씨가 흉기를 내려놓는 순간 이씨는 안씨에게 다가가 팔을 꺾었다. 이씨는 25년간 우슈를 연마해 우슈 4단에 지도자 자격이 있는 유단자였다. 우슈는 중국 전통 무술 전체를 이르는 말로 소림사 권법과 쿵푸, 태극권 등이 있다.


이씨는 “20대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안씨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며 “처음부터 제압하면 안씨가 돌발행동을 할 것 같았다. 소극적인 방어를 하다 안씨의 심경이 좀 누그러졌을 때 제압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늦깎이 약사다. 부산대 공대를 다니던 이씨는 27세가 되던 2000년 경성대 약대에 입학했다. 2004년 약대를 졸업하고 서울로 취직했다가 2008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때부터 약국을 직접 운영했다고 한다. 이씨는 한 달에 2~3번씩 서울에 올라가 중국 무술 대가에게 우슈를 배우고 온다고 했다. 그는 “약국은 치안이 취약해서 약사 스스로 위협 상황에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약사가 다쳐 약국 문을 닫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국회에 계류된 ‘약사폭행방지법안’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법안은 의료인, 간호사에 대해 혹은 응급실 등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했을 때 가중 처벌하듯 약국에서 발생한 폭력 행위도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씨는 “약국이 야간이나 주말에도 운영하는 것은 지역에서 공공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며 “치안이 취약한 약국의 안전을 위해 사회가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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