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장례식장서 록밴드 '락골당' 기획…'국민약골' 이윤석의 꿈
방송인 이윤석이 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타공인 록 마니아인 그는 최근 프로젝트 밴드 '락골당'을 꾸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를 이뤘다. 전민규 기자 |
“혹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개그맨 이윤석(50)은 지난 5월 갑작스럽게 숨진 한 후배 개그맨의 장례식장에서 라디오 담당 PD와 술잔을 기울이다 이런 질문을 받았다. 숨진 후배는 이윤석이 6년 넘게 진행 중인 MBC 라디오 ‘주말하이킥’의 바로 뒷 프로그램 게스트였다. “록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그의 답변은 프로젝트 밴드 ‘락골당’으로 이어졌다. 크라잉넛 한경록(베이스), 백두산 박찬(드럼), 크랙샷 윌리K(기타), 크랙실버 오은철(건반), 정홍일(보컬)과 김현철이 밴드마스터로 합류했다.
‘락골당’은 이윤석이 주도해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다. ‘국민약골’ 이윤석이 더는 ‘약골’이 아닌 록(락)을 즐기는 ‘락골’(樂骨)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윤석은 지난달 라디오 생방송 공연에서 드럼 연주를 선보였다. 그는 ‘락골당 2기’를 벌써 그리고 있다. “멤버들이 속한 밴드가 함께 모여 공연하고 그 밴드의 또 다른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락골당에 합류해 스페셜 무대를 꾸미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이다. 그를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장례식장서 기획한 프로젝트 밴드
“젊었을 땐 ‘약골’이라고 하면 귀엽게 봐주면서 웃는데, 나이가 드니 이제 안쓰럽다고 웃질 못하더라고요.” 이윤석은 “이제 넘어지면 진짜 일어나질 못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락골당’ 멤버들에겐 공연이 끝난 뒤에야 “락골당은 사실 후배의 장례식장에서 기획했고, 그를 기리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공연에서 팔에 상주 완장을 찼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고 한다.
이윤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록을 접하고 "록을 안 들으면 잠이 안 왔다"고 할 정도로 마니아가 됐다. 그는 "몸은 아픈데 일류대를 고집하는 부모님의 압박에서 록은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했다. 전민규 기자 |
이윤석이 록 마니아가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그가 동경하던 ‘멋진’ 친구들이 모두 록 밴드였다. 매니저를 자처해 어울려 다니면서 록 음악을 따라 들었다. “영어 공부하고 EBS 수업을 들으려면 워크맨과 비디오가 필요하다”면서 아버지를 속여 라디오 헤비메탈을 녹음하고 록 밴드 뮤직비디오를 녹화했다. “록을 안 들으면 잠이 안 왔다”던 그는 “몸은 아픈데 일류대를 고집하는 부모님의 압박에서 록은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했다.
“록은 유일한 탈출구”
그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몰래 기차 타고 상경한 뒤 강력반 형사 봉급으로 4남매를 키웠다. 장손인 이윤석을 억지로 태권도 경기에 내보냈다가 나가자마자 맞고 우는 아들을 다그치고, 이윤석이 개그맨이 된 후에도 “공부는 놓지 말라”며 고시생 잡지를 정기구독까지 시켰다. 나중엔 모든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대본까지 직접 썼다는 아버지는 그에게 “참 미웠지만,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그의 박사 학위(중앙대 신문방송학)는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에게 드리는 선물이기도 했다.
그가 평생 은인으로 꼽는 서경석과 김진수, 이경규도 리더십이 강하고 열정적이었던 아버지와 비슷하다. 이윤석은 “데뷔하자마자 ‘그렇게 심한 말을’ 코너가 대박이 났다. 그때 안됐어야 진정한 적성을 찾았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경석이의 능력으로 3년 먹고 살았고, 그 후 3년은 진수 덕분에 ‘허리케인 블루’로 먹고 살았는데, 그 뒤 일이 잘 안 들어올 때 이경규를 만나 ‘국민약골’ 캐릭터를 구축했다. 물에 빠질 뻔하면 항상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모순적 성격”…굴욕에도 버텨
이윤석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면서도 뭔가는 해보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성격"이라고 했다. "평생 마이너였다"고도 했다. '안 웃긴 개그맨', '얌전한 록 마니아' 캐릭터도 그렇다. 전민규 기자 |
이윤석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면서도 뭔가는 해보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성격"이라고 했다. "평생 마이너였다"고도 했다. '안 웃긴 개그맨', '얌전한 록 마니아' 캐릭터도 그렇다. 전민규 기자 |
그는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면서도 뭔가를 해보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성격”이라면서 “평생 마이너였다”고 했다. “열심히 공부해놓고 시험날 아프거나, 응원단 연습을 죽도록 했는데 정작 운동회날 아팠다”는 식이다. ‘안 웃긴 개그맨’, ‘얌전한 락 마니아’ 캐릭터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녹화장에 갔는데, 내 자리에 다른 연예인이 있었다”라거나 “대기실이 점점 구석으로 밀려나다 소품실, 의상실까지 쫓겨났다”는 굴욕에도 버텼다. 그는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을 상황인데 항의하는 건 내 얼굴에 침 뱉기”라며 “대기실을 쓸 수 있는 연예인이 돼야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서경석과 콤비가 끝났을 때다. 그는 당시 서경석의 ‘울엄마’ 코너에서 ‘칠득이’로 3초 등장했다. 땜빵 가발을 쓰고 바보같이 웃으면서 지나가는 역할이었는데 그는 실제 원형탈모를 겪고 있었다. 그는 “경석이 덕분에 아무나 해도 되는 ‘칠득이’ 역할을 맡았다. 경석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김진수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았을 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방송을 6개월간 쉬어야 했다. 그때 부상으로 그는 지금도 왼손을 뒤집지 못한다.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내년이면 30년이다. 사실 이윤석의 데뷔는 친구들의 장난 때문이었다. 연세대 재학 시절 자칭 ‘아웃사이더’로 어울리던 대학 친구들과 “개그맨 시험 한 번 봐보자”고 했던 게 그 시작이었다. “각자 준비해서 방송국 시험장에서 만나자”던 친구들은 정작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바 ‘이윤석 몰래카메라’였다. 그런 그는 “지금도 방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죽기 전에 ‘아, 이래서 내가 개그맨을 했구나’ 알면 좋겠지만, 모른다고 해도 괜찮아요. 전 제 인생에 진짜 만족하거든요.”
[에필로그] 록 밴드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은 ‘락골당’ 1호 멤버입니다. 라디오 출연으로 이윤석과 친해졌다는 그는 “우리가 게스트로 나갈 때마다 메탈밴드 티셔츠를 챙겨 입고 오고, 로큰롤 이야기를 할 땐 꼭 순수한 어린아이 같다”면서 특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자는 형님 말씀이 마음을 울렸다”고 했습니다.
■ 하룻밤 맥주 100만㏄ 동났다…홍대 뒤집은 '경록절'의 사나이
록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은 홍대 ‘인싸’다. 그의 생일 ‘경록절’은 크리스마스 이브, 핼러윈데이와 함께 홍대 3대 명절로 꼽힌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