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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집이 살아 움직인다…인공지능 갖춘 집의 탄생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서울 구기동 자락의 '아이엠하우스'

건축가 하태석의 살림집이자 리빙랩

자동으로 움직이고, 기계학습 하는 집

"집이 집사처럼 집주인에 맞춰 변한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줄기를 따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에 최근 새하얀 집이 들어섰다. 틈이라곤 전혀 없는 하얀 네모 박스 같기도 하다. 언뜻 봐서 무표정한 이 집은 동네에서 ‘살아 있는 집’이라고 불린다. “아이가 그 집에만 가면 집에 안 오려고 한다”며 이웃의 원성 아닌 원성도 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는 신기한 것 투성이다. 일단 자동으로 움직인다. 스스로 학습해 집주인의 상태에 반응하기도 한다.


집주인의 퇴근길을 가정해보자. 주인이 동네 어귀서 ‘퇴근 모드’를 작동시키면 닫힌 집이 자동으로 열린다. 문이 열리는 정도가 아니라, 입면이 움직인다. 하얀 벽처럼 보이던 집의 입면은 사실 38개의 ‘키네틱 파사드(Kinetic Facade)’로 구성됐다. 이 키네틱 파사드가 각각 움직이면서 집의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진다.


집 안에 들어서면 천장 전등이 집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하나씩 켜지고 꺼진다. 무대 위 주연 배우를 따라다니는 스포트라이트 조명 같다. 바닥도 움직인다. 낮아져서 계단이 됐다가, 솟구쳐서 의자가 된다. 명상 모드로 바꾸면 집의 조명 색이 바뀌고, 음악도 달라진다. 변화무쌍하다. 집주인이 명명한 당호(堂號)는 ‘아이엠하우스(IMHous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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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하태석(49) 스케일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대지 면적 262㎡, 연면적 204㎡ 규모의 ‘아이엠하우스’는 그의 가족이 함께 사는 살림집이자, ‘리빙랩’이라고 부르는 실험 공간이다. 하 대표는 “내가 집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집이 내게 맞추는 집”이라며 “‘변하는 집’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컨셉트이며 최초의 시도”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엠하우스’는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들을 집과 결합해 진일보했다. 그러면서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 집은 변할 수 없다. 집을 달리 보이게 하는 것은 빛과 그림자의 역할이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설계한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은 “건축은 빛과 그림자의 교향시”라는 표현을 즐겨 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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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하우스’는 스스로 변한다. 사물 인터넷(IoT)으로 집의 기기들이 연결되어 있고, 집 안팎에 부착된 센서가 빅데이터를 수집해 인공지능으로 분석하고 활용한다. 하 대표는 “작동법은 세 가지”라고 했다.

일단 스마트폰으로 원격 제어를 할 수 있다. 하 대표가 개발한 ‘디지털 쌍둥이’ 앱을 통해서다. 앱을 켜면 ‘아이엠하우스’와 똑같이 생긴 3D 모델이 화면에 나타난다. 앱 속의 집을 작동시키면 실제 집에 반영된다. 하 대표는 “조명·벽·바닥 등 집에 움직이는 장치가 많아서 이를 조합한 7가지 모드를 만들어 둔 상태”라며 “명상ㆍ파티ㆍ퇴근ㆍ시네마 등 모드를 누르면 집이 그에 맞춰 변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모션 컨트롤이다. 그가 집 안에서 손을 하늘로 찌르는 동작을 취했더니, 센서가 이를 감지해 식탁 위 조명을 켰다. 팔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동작에 따라 바닥도 움직였다. 마지막은 집주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머신 러닝(기계 학습)하는 단계다.


하 대표는 “집주인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졌는지 빅데이터를 수집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집이 스스로 변하는 단계”라며 “현재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로, 더 발전되면 마치 10년 된 집사가 집에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건축가는 이 집을 짓기까지 8년여를 투자했다. 2010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그는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도시(미분 생활 적분 도시)’를 선보였다. 사람들이 스마트폰 앱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입력하면 알고리즘을 통해 설계된 맞춤형 집을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식이었다.


늘 건축주에게 1대 1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축가의 업력을 1대 다중으로 확장하는 시도였다. 혹은 건축가의 업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도발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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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반응은 어땠나.




A :

“당시만 해도 건축계의 반응은 아예 없었다. ‘이상한 거 했구나’ 하는 정도였다. 대신 미술계의 반응이 엄청났다. 인터랙티브(상호작용하는) 미디어 아트로 여기더라.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서울미술관 등 국내에서 미디어 아트 전시가 있을 때마다 초청받아 전시했다.”


Q : 건축가가 졸지에 미디어 아티스트가 됐다.


A :

“그런 셈이다. 하하. 건축에, 도시에 실현하고 싶었는데 미술관을 벗어나질 못했다. 엄청 답답했다. 건축이라고 말하는데 건축이라고 안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그 경험을 토대로 ‘아이엠하우스’를 지을 수 있었다. 최근에도 자치단체 공무원이 사무실로 견학을 왔다. 또 인천 서구청 ‘퓨처 시티(Future City)’의 총괄 건축가로 임명되기도 했다. 건축과 IT의 융합 시대가 본격적으로 온 듯하다.”


Q : 일반적인 집짓기와 달랐을 것 같다. 어떻게 지었나.


A :

“세 단계를 거쳤다. 일반 집처럼 기본적인 공간을 시공사가 만들었다. 두 번째는 벽·바닥 등 움직이는 요소들을 부착시키는 작업이었다. 직접 시공했다. 세 번째는 사물 인터넷으로 여러 장치를 연결했다.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입혀서 알고리즘을 넣고 더 맞춤화시키는 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 일반적인 공사를 담당했던 현장 소장이 완공된 집을 보고 ‘이런 집이었냐’며 깜짝 놀라더라.”


Q : 공사비가 많이 들 것 같다.


A :

“1단계까지 일반적으로 집 짓는 데 드는 비용과 비슷하다. 2단계부터 연구개발비가 제법 들었다. ‘아이엠하우스’에는 안팎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총 149개고, 센서는 20여개 정도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 집의 경우 센서를 잔뜩 붙일 수 없으니 최소화하는 게 목표다. 대신 소프트웨어가 똑똑해져야 한다.”


Q : 집도 기계학습을 해 진화하는 시대다. 건축가의 역할은 뭔가.


A :

“20세기 초 유리와 철이라는 소재가 처음 나왔을 때 건축가들은 이를 활용해 어떤 건축을 만들 것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초고층 빌딩 시대가 열렸다. 이제는 센서ㆍ알고리즘과 같은 뉴미디어가 새로운 건축 재료가 되는 거다. 이걸로 어떤 건축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때가 온 거다. 4차 산업혁명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는데 아직 공간에는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이 부족하다. 전자제품 회사가 미래의 집을 그리고 있다. 건축가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Q : 아이엠하우스의 최종 버전은 뭔가.


A :

“정말 스스로 행동하는 거다.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집사처럼 집주인의 컨디션, 날씨 등에 따라 공간을 바꾸고 제안하는 집으로 아이엠하우스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또 일반 집뿐 아니라, 스마트 건축으로 확대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오피스·호텔·상업공간을 생각하면 된다. '아이엠하우스'를 계기로 미래 건축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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