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도의 무덤' 도쿄 그랜드슬램 우승 전승범 "깜짝 金 아니다"
생애 첫 성인 국제 대회 우승 후 포효하는 전승범. 사진 IJF |
"깜짝 금메달이 안 되도록 이 악물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2022 도쿄 그랜드슬램에서 금메달을 따낸 유도 경량급 간판 전승범(24·포항시청)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승범은 4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60㎏급 결승에서 일본의 곤도 하야토를 소매들어 업어치기 절반승으로 꺾고 우승했다. 생애 첫 시니어 국제 대회 우승이다. 그는 20세 때부터 성인 무대를 밟았다. 종전 최고 기록은 올 초 파리 그랜드슬램 준우승이었다. 전승범은 5일 전화 인터뷰에서 "첫 경기 전까지만 해도 입상은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경기를 할 수록 몸 상태가 좋아져서 잘하면 우승도 가능할 것 같았는데, 꿈이 이뤄져 기쁘다. 이젠 내 실력에 자신감을 가져야겠다"며 기뻐했다.
도쿄 그랜드슬램은 '해외 선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대회다. 그랜드슬램은 체급당 한 국가에서 1~2명이 출전하지만, 개최국은 4명까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선수층이 두터워 1~4진까지 실력이 비슷하다는 유도 강국 일본의 입상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보다 도쿄 그랜드슬램이 해외 선수의 입상이 어렵다는 얘기까지 있다. 게다가 한국 선수들은 2012 런던올림픽 이후 일본 유도에 약세를 보였다. 한국이 도쿄 그랜드슬램 60㎏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2014년 김원진이 마지막이다. 전 체급을 통틀어도 2017년 100㎏급 조구함이 한국의 마지막 도쿄 그랜드슬램 금메달리스트였다.
실제로 일본은 남자 7체급, 여자 7체급 등 14체급이 끝난 가운데 12체급 우승을 휩쓸었다. 전승범과 남자 100㎏급의 젠나로 피렐리만 일본 대표팀 소속이 아닌 금메달리스트다. 전승범은 올해 파리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무릎을 꿇었던 나가야마 류주(일본)를 3회전에서 안뒤축걸기 한판으로 꺾으며 설욕에 성공하기도 했다. 전승범은 "선후배들이 일본 선수에 패해 탈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는데, 내가 한국 유도의 자존심을 세워 뿌듯하다"고 말했다.
결승에서 일본 곤도(오른쪽)를 쓰러뜨리는 전승범. 사진 IJF |
전승범은 단신 선수로 성공한 사례다. 그는 키 1m62㎝로 경쟁자보다 6~7㎝ 작은 편이다. 그는 데드리프트 190㎏을 든다. 보통 대표 선수는 170㎏ 수준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육상부로 활약해서 스피드에선 어떤 상대를 만나도 밀리지 않는다. 주 특기가 업어치기인 것도 박은송과 같다. 전승범은 제2의 최민호를 꿈꾼다. 한국 60㎏급 레전드 최민호(은퇴)는 두 차례 올림픽(2004년 동·2008년 금) 메달을 따냈다.
그는 단신(1m63㎝)으로 데드리프트 230㎏을 드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화려한 기술로 세계를 호령했다. 전승범은 최민호 계보를 이어 경량급 최강자에 도전한다. 전승범의 성장 뒤엔 대표팀과 소속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석정수 포항시청 감독은 "전승범의 기량이 일취월장한 건 이강덕 포항시장님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셨고, 황희태 남자대표팀 감독의 열정적 지도 덕분"이라고 말했다. 전승범은 차세대 경량급으로 기대를 모은다. 물론 60㎏급은 전통적으로 강자가 많다. 2014년부터 8년째 최강자로 군림하는 김원진, 이하림, 최인혁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전승범은 "2024 파리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