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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좋고 사람 없고…가을은 서핑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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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서너 개가 잇달아 한반도를 때리고 가자 여름도 가 버렸다. 전국 해수욕장은 방과 후 운동장처럼 썰렁하다. 한데 이때를 기다려 바다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파도와 노는 서퍼들이다. 제주와 부산 바다도 있지만, 가을엔 강원도 양양으로 서퍼가 모여든다.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양양 해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침 10월 11~13일 양양 죽도 해변에서 서핑 페스티벌도 열린다. 지난 19~20일 서퍼들의 열기로 뜨거운 가을 양양 바다를 다녀왔다.



한국의 서핑 메카 ‘양양’


‘망고서프’ 권지열(44) 사장은 10년 넘게 다니던 은행을 관두고 2016년 양양 죽도 해변에 서핑 숍을 차렸다. 벌이는 예전만 못해도 결코 후회는 없다. 조하니(26)씨는 대학에서 교직을 이수했지만 당장 취업 생각은 없다. 알바해서 모은 돈은 모두 서핑하는 데 쓴다. 올해는 10월까지 죽도 해변 식당에서 일하며 틈틈이 서핑하고 겨울엔 인도네시아 발리로 원정 서핑을 떠난다. 권 사장과 조씨는 입 모아 말한다. “서핑에 맛을 들인 뒤 침대에만 누우면 천정에 바다가 아른거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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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는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이 수두룩하다. 영화 ‘시월애’ ‘그대 안의 블루’ 등을 연출한 이현승 감독은 죽도 해변에 무인카페 겸 서점 ‘파란책방’을 열었다. 서핑을 소재로 한 영화 ‘죽도 서핑 다이어리’도 찍었다.


양양은 서퍼들이 만든 서핑 메카다. 자치단체나 레저 기업이 만든 게 아니다. 파도 찾아 헤매던 서퍼들이 어촌에 정착해 서핑 숍을 차리고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열었다. 대한서핑협회에 따르면, 서핑 강습을 전문으로 하는 ‘서핑 숍’이 전국에 122개 있다. 이중 절반에 달하는 60여 개가 양양에 몰려 있다. 한국 서핑의 절반을 양양이 책임지는 셈이다. 오죽하면 강원도 동해안 6개 시‧군 중에서 양양군 인구만 늘고 있을까. 윤학식 양양군 해양레포츠관리사업소장의 설명이다.


“가장 먼저 서퍼가 몰린 하조대부터 죽도‧남애해변까지, 양양 21개 해변 중 14개 해변에 서핑 숍이 있습니다. 요즘은 자기 장비를 챙겨와 숍이 없는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속도로와 KTX 개통이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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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은 이제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대한서핑협회는 올해 서핑 인구를 70만 명으로 추산한다. 2015년 10만 명을 돌파했으니 4년 만에 7배가 늘었다. 여가 예약 플랫폼 ‘프립’의 서핑 예약 현황도 폭증했다. 2015년 7, 8월 서핑 예약은 800여 건이었으나 올해 같은 기간엔 8800여 건에 달했다. 무려 11배가 뛰었다.


이제는 여름 휴가철뿐 아니라 봄 가을에도 서핑을 즐긴다. 이승대 강원서핑협회장은 “10월까지는 바다 수온이 20도 안팎으로 의외로 춥지 않다”며 “가을엔 파도의 질도 좋아서 2014년부터 10월 중순에 양양 서핑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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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안 추운 가을 바다


최대 높이 1.5m의 파도가 찾아온 19일. 죽도 해변에는 어림잡아 서퍼 100명이 모여들었다. 낮 기온 24도로 제법 선선한 날씨였지만, 강습을 받는 초보부터 프로 서퍼까지 다양한 실력의 서퍼들이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죽도 해변에서 서핑을 배운 뒤 정확히 3년 만에 다시 파도를 탔다. 3년 전에 배운 걸음마 수준 기술은 깡그리 잊어버렸다. 그 사이 노를 저으며 서서 타는 SUP(스탠드업 패들)를 몇 차례 해봤지만, 전혀 다른 운동이다.


‘모쿠서프’에서 강습을 받았다. 추석 연휴가 지난 평일인데도 강습을 받는 사람이 꽤 많았다. 박준영 모쿠서프 대표는 “요즘엔 스키장처럼 ‘시즌권’을 구매해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는 서퍼가 많다”며 “겨울에 서핑을 즐기는 서퍼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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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 간단한 이론교육을 받고 두께 3㎜짜리 수트를 입었다. 제법 따스한 모래사장에 보드를 깔고 기초를 다시 익혔다. 자유형처럼 팔을 젓는 ‘패들링’부터 윗몸을 일으키는 ‘푸시 업’, 두 다리를 앞으로 끌어오는 ‘테이크 오프’, 파도를 타고 전진하는 ‘라이딩’까지. 예전에 배웠던 동작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입수했다. 생각보다 바닷물이 차지 않았다. 파도는 만만치 않았다. 초짜에겐 버겁고 고수에겐 놀기 좋은 파도였다. 가슴 높이 바다까지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파도가 매섭게 뺨을 때렸고, 보드가 수없이 뒤집혔다. 약 2시간 동안 넘어지고 넘어지길 반복했다. 그래도 파도가 센 덕에 밀어주는 힘을 받았다. 5초 이상 파도를 타고 나가는 재미를 서너 차례 느꼈다. 3년 전 얌전한 바다에선 느껴보지 못한 재미였다. 바다가 한갓진 것도 초보 입장에서는 좋았다. 이래서 가을 서핑을 하는구나 싶었다. 백사장으로 나와 고수들이 춤추듯 큰 파도를 타는 장면을 한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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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마친 뒤 이국적인 분위기의 해변을 산책했다. 서퍼가 만들어 파는 햄버거를 사 먹고, 죽도 해변 바로 아래에 있는 인구 해변으로 넘어갔다. 이현승 감독이 운영하는 책방에서 중고책 세 권을 샀다.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갔는데도 서퍼들은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밤 공기가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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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1~13일 죽도 해변서 '서핑 페스티벌'


‘양양 서핑 페스티벌’이 10월 11~13일 죽도 해변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 페스티벌 하이라이트는 서핑 대회와 라이브 공연이다. 대회는 모두 11개 종목이 열린다. 종목에 따라 초보자와 주니어도 참가할 수 있다. 미리 참가 접수를 해도 되고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총상금 3080만원이 걸려 있다. 대회 참가와 참관은 4만원. 라이브 공연 관람은 무료다. 서핑용품과 수공예품을 파는 플리마켓과 양양군 특산품 장터도 열린다. ‘우리 바다를 지키자(Save our seas)’라는 슬로건을 걸고 해변을 청소하는 ‘비치 클린 캠페인’도 매일 진행된다.


양양=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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