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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앞에서 긴 머리 싹둑…태국 10대들이 공개 이발 강행한 까닭은

지난 16일 태국 수도 방콕 시내에서 교복을 입은 한 10대 여학생이 교사에게 강제 이발을 당했다. 교사는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무참하게 잘랐다. 그리고는 학생 앞에서 자른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학생은 연신 훌쩍였다.


이 장면은 태국 10대 고등학생들이 학교의 엄격한 두발 규제에 반대하기 위해 만든 퍼포먼스다. 최근 태국 공립학교 등 다수의 고등학교에서 논란이 된 ‘강제 이발’ 사건을 재연했다.


태국에서 10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10대 학생들은 학교에 뿌리 박힌 군부 독재 문화 청산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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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요구 사항은 두발 제한 철폐다. 태국 학생들은 지금까지도 1970년대 초 군사독재 정권하에 제정된 두발 규정을 따른다. 여학생은 귀 위 길이의 단발머리, 남학생은 군인 스타일의 반삭발 머리를 해야 한다.




태국이 민주주의로 전환하면서 몇 차례 관련 규제가 완화됐지만, 학생들의 자율권을 보장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많다.



‘너무 길다’며 싹둑…코로나19가 터트린 분노


그러던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학생들이 오랫동안 쌓아왔던 군부 독재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연 학교들이 흐트러진 규정을 다시 옥죄겠다며 제멋대로 학생들의 머리를 자르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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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는 트위터에 한 남자 교사가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거리에서 강제로 자르는 사진이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사진 속 여학생은 두 손이 뒤로 묶였고, 목에는 “이 학생은 머리 길이 규정을 어겨 처벌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팻말을 걸었다.


사진을 올린 태국의 청소년 인권활동가 벤자마폰 니와스는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며 “억압적 두발 규제를 중단하라”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태국 교육부는 단정하게 두발을 유지한다면 짧게 자르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두발 규정을 일선 학교에 권고했다.



세 손가락 경례·흰 리본, 금기에 도전한 학생들


군부 독재에 오랫동안 쌓여 온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학생들은 독재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세 손가락을 펼쳐 들며 노골적으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태국 반정부 인사들이 사용하는 수신호다. 영화 ‘헝거 게임’(2012)에서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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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는 학교 조회 시간에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학생들의 영상이 속속 올라왔고, 게시물에는 ‘독재에 반대한다’는 해시태그도 달렸다. 일부 학생들은 반정부 집회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흰색 리본을 가방과 손목에 달고 다닌다.


나와스는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태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실패 이후에도 여전히 군사독재 시절의 관행을 고집한다”면서 “젊은이들은 이제 잃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호주 전략 정책 연구소 연구원인 트레이시 비티는 이런 현상에 대해 “태국 정부는 젊은 세대의 요구를 전혀 듣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태국인들은 지금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 체제를 계속 고집한다면 젊은 층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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