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 절단, 교통사고 당한 수준" 의료진이 본 정인이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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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의 CT(컴퓨터단층촬영), X선 검사 결과는 아동학대 사례로 의학 교과서에 실릴만한 수준이죠.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지 않는 이상 아이가 일상생활을 하다가 복부 깊은 곳에 있는 췌장이 절단되는 일은 생길 수 없습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는 지난해 10월 13일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인이는 사망 당일 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양모는 아이를 구급차가 아닌 택시에 태웠다.
남궁 교수는 “병원에 왔을 때 사실상 사망 상태였다. 이미 택시 안에서 심정지가 일어났다”라며 "정인이를 처음 진료한 의료진이 아이 모습을 보고 '배가 너무 부르고 창백해 선천적 질환이 있는 줄 알았다’고 전했다. 장이 터져 복부에 피와 염증이 가득 차부어오른 거다”라고 말했다. 의료진의 간절한 심폐소생술에 다시 뛰던 정인이의 심장은 이날 세 번의 심정지 끝에 끝내 멈췄다. 생후 492일째, 입양된 지254일 만의 일이다.
정인이는 또래보다 마르고 작은 몸집에 핏기없이 창백한 몸이 온통 피멍으로 뒤덮여있었다고 한다. 장기가 파열돼 흘러나온 혈액으로 배가 빵빵했다. 갈비뼈 등 부러진 곳도 여럿이었다. 정인이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었다. 남궁 교수는 “장기가 다쳤을 때 병원에 바로 왔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너무 천사처럼 예쁜 아이가 온몸이 맞아서 퍼렇게 된 모습에 의료진들 모두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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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학대인데, 정인이 양모가 보호자 대기실에서 ‘우리 애 죽으면 어떡해요’라며 울부짖는 걸 본 의료진은 ‘진짜 악마인가’ 생각했다고 해요.”
그는 2018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양천구 괴물 위탁모’ 사건을 떠올리며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보이는 일관된 태도가 있다”고 말했다. 30대 위탁모가 위탁받은 15개월 여자아이를 열흘 동안 굶기고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가해자는 생후 6개월~18개월 사이 아이들을 돌보며 뜨거운 물을 얹고 욕조 물에 담가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등 심각한 학대를 저질렀다. 담장을 넘어간 아이들 울음소리에 주민들이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학대로 보기엔 모호하다”며 넘어갔다. 가해자가 붙잡힌 건 아이 하나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남궁 교수는 “당시 가해자는 ‘제 아이 어떡하냐’며 울었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닌 척 죄책감 없는, 너무 슬픈 부모의 얼굴을 하고 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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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교수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는 아동학대 피해 아이들은 정인이처럼 전신이 깨져서 죽기 직전 상태로 온다.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다 보니드러나는 건 소수이고 그나마도 너무 늦게 알려진다”라고 말했다. 신고의무자에 대한 보호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신고를 하는 경우 익명으로 할 수 있고, 보호하도록 제도는 갖춰놨다. 그럼에도 신고 이후 신고자의 신상이 알려지고 ‘우리 앤데 왜 이래라 저래 라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라며 “대학병원 의사들은 나은 편이지만, 동네병원 의료진은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가 가해 부모가 ‘생사람 잡는 이상한 병원이다’라는 소문을 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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