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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중앙일보

축제 사라진 남도의 봄…매화·산수유꽃은 피었네

섬진강 두 꽃동네 예년과 다른 봄

사진꾼만 몰린 구례 산수유마을

관광 버스 사라진 광양 매화마을

섬진강 벚굴 매출 작년 10분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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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에 봄이 깃들었건만,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다. 모두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집 밖으로 나설 일을 만들지 않는다. 봄꽃축제는 진즉 사라졌다.


그래도 꽃은 핀다. 긴 겨울 견뎌낸 봄꽃이 남도를 물들이고 있다. 섬진강 물길 따라 꽃동네 두 마을을 돌아다녔다. 구례 산수유마을과 광양 매화마을. 화신(花信)을 앞다퉈 전하던 두 마을의 봄날은 예년의 봄날과 많이 달랐다. 꽃은 화사해도, 꽃길은 사람이 들지 않아 처량했다. 띄엄띄엄 만났던 상춘객의 얼굴에서 잠시나마 우울한 표정이 가신 걸 본 것도 같다. 꽃길을 걷는 것이 지금 이 땅에서 온기를 느끼는 유일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산수유 만발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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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는 국내 최대 산수유 산지다. 구례군에서도 산동면이 유명하다. 전국 산수유의 약 60%가 산동면에서 난다. 이맘때, 그러니까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산동면은 산수유꽃에 점령당한다. ‘구례 산수유꽃축제’가 열리는 것도 이즈음 여기에서다. 올해는 못 열렸지만.


산수유마을 길목의 지리산 온천 관광단지는 황량했다. 봄마다 상춘객을 실어 나르던 관광버스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 호텔은 문을 걸어 잠갔다. 이곳에서 7년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정영혁(58)씨는 “3월이 최대 성수기인데 방이 남아돈다”고 탄식했다.


산동면의 산수유마을 가운데 제일 예쁘다는 반곡마을로 들었다. 과연 산수유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꽃길을 관통해 흐르는 서시천과 저 멀리 보이는 지리산 능선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마침 전날 비가 내려 지리산 만복대(1433m)와 차일봉(1433m) 능선이 상고대로 덮여 있었다. 겨울과 봄이 함께 있는 장관이었다.


다리 밑 너럭바위 위로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보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진 동호인만이 이 황홀경을 누리고 있었다. 전북 전주에서 왔다는 김만수(76)씨가 “새벽 4시부터 있었는데, 올봄엔 사진꾼도 별로 안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마을에서 2대째 밥장사를 한다는 ‘길손식당’ 안주인도 낯빛이 어두웠다.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어요. 도시락 싸 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요즘은 식당도 꺼리는 분위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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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현천마을에는 그나마 나들이객이 제법 됐다. 마침 동네 할머니들이 머위·산수유열매·감말랭이 따위를 들고 나와 팔고 있었다. “자식들은 위험하다고 나가지 말라는디, 가만히 놀 수만은 없응께.” 할머니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관광객 대부분은 테이블 한편의 손 소독제만 짜내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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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 화엄사에도 들렀다. 각황전 옆 홍매나무는 봄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는 존재다. 수령 300년의 고목에서 피는 꽃은 색과 향이 워낙 짙어 ‘흑매’라고도 불린다. 포근했던 겨울 덕에 일주일 먼저 꽃망울이 올라왔다지만, 화엄사 홍매의 만개는 아직 일렀다. 한 스님이 “봄을 맞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겠네요”라는 말씀을 남기고 스쳐 갔다.


매화마을의 시린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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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마을에서 나와 섬진강 끝자락까지 달렸다. 광양 망덕포구에 이르자 ‘벚굴’을 내건 식당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2~5월 수확하는 벚굴도 섬진강의 대표적인 봄 손님이다. ‘강에서 나는 굴’이라 하여 강굴로도 불리지만, 현지에서는 벚굴로 더 익숙하다. ‘벚꽃이 필 때 맛이 좋다’는 의미다. 벚굴은 섬진강 바닥 바위에 붙어 자라는데, 종패를 뿌리지 않은 100% 자연산이다. 몸집은 남해 굴보다도 곱절 이상 크다.


섬진강 벚굴은 아무나 따지 못한다. 섬진강을 마주 보는 광양과 하동 사람만 가능하다. 두 지역 다 합쳐 오직 11명에게만 허가가 있다. ‘청아수산’의 이성면(63) 선장은 30년 가까이 벚굴을 다룬 망덕포구의 베테랑 어부다. 그가 캐낸 섬진강 벚굴이 서울도 가고, 부산도 간다. 요즘은 5㎏짜리 한 박스에 2만8000원을 받는다.


제철을 맞았건만 벚굴 장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 선장은 “주문이 뚝 끊겨 벚굴을 강바닥에 그대로 두는 날이 많다”고 털어놨다. 관광객이 와도 식당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 벚굴 소비량이 크게 줄었단다. 매출은 지난해의 10분의 1 수준. 한창 때는 하루에 20㎏짜리 박스 80개가 나갔다. 이날은 그나마 주문이 15개 박스가 됐다. 막 껍질 벗긴 생굴을 통째로 받아 먹었다. 한입에 다 넣기 버거울 만큼 크고 탱글탱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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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청매실농원, 그러니까 광양 매화마을에서 아침을 맞았다. 홍쌍리(78) 명인이 일군 농원으로, 매화나무만 10만 그루에 이른다. 마을 입구엔 ‘광양 매화 축제 취소. 방문 자제 바란다’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평일 아침부터 제법 사람이 몰려왔다. 한낮에 이르자 금세 주차장이 찼다. 어림잡아도 400대는 돼 보였다. 관광 버스는 없었고, 모두 승용차였다.


봄볕을 받아든 매화마을은 눈이 시리도록 희었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핀 매화 숲은 구름처럼 보인다”는 김훈의 표현 그대로였다. 홍씨는 “올봄은 유독 매화가 곱다,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곱게 화장하고 기다리는 가시나 같다”고 말했다.


흥청거리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다들 차분하게 봄꽃을 즐기고 있었다. 관광객 대부분 인터뷰를 꺼렸다. 한 20대 연인은 “몰래 와서, 인증샷은 올리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고, 한 중년 남성은 “온 가족을 끌고 나왔다. 오랜만에 나왔더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스크 너머로 희미하게 번지는 미소가 보였다.


구례·광양=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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