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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뉴스] "잠든 손님들 대피시킨 후 불 길 속 30분 버텨"

불 나자 손님 대피시키고 뒤늦게 빠져나온 이재만씨

3명 숨지고 80여명 다친 대구 중구 대보사우나 화재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암흑속에서 '공포의 30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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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이었던 지난달 19일. 대구 중구 포정동 대보맨션 5층에 사는 이재만(67)씨는 오전 6시쯤 바로 아래층 대보사우나를 찾았다. 이곳에 5년 정도 거주한 이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보사우나를 찾는 단골이었다.

목욕을 마친 이씨는 옷을 입고 카운터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탄내를 맡은 이씨. 흡연 장소에서 나는 냄새인 줄로만 알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사우나 업주가 남탕 입구 문을 열면서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는 뒤로 시커먼 연기와 거센 불길을 봤다.


불이 난 걸 깨달은 이씨는 곧장 휴게실로 달려가 "불이야" 고함치며 잠자고 있던 손님 10여 명을 깨웠다. 이어 헬스장으로 가 불이 난 사실을 알렸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 손님들을 대피시켰다. 당시 탕 안에는 3명이 있었다고 한다. 습식·건식사우나까지 둘러보고 목욕탕 밖으로 대피하려던 이씨는 순간 입구 쪽 천장이 무너져 손님 1명과 함께 탕 안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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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공급이 끊겨 캄캄한 가운데 이씨는 기지를 발휘해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바깥엔 거센 불길과 함께 끊임없이 연기가 나고 있는 상황. 이씨는 엎드렸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뉴스에서 본 대형 화재 사고들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감전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며 "30여분 동안 공포에 질린 채 불길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윽고 바깥이 잠잠해진 걸 확인한 이씨는 탈의실 쪽으로 나와 바깥으로 대피했다. 함께 있던 손님은 당시 탈출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렸다가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진화가 끝난 시간은 오전 7시30분이며 이씨가 건물 1층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시간은 3분 뒤인 오전 7시33분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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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불이 나자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며 "탕 안에 갇혔을 땐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들었지만 막상 건물 바깥으로 나왔을 땐 얼떨떨한 느낌뿐이었다"고 전했다.


불이 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이씨는 아직도 집에 누워 있으면 종종 어딘가에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씨는 "여전히 말을 하면 노래를 오래 한 것처럼 쉰 목소리가 난다"고 했다. 또 "내가 대피시킨 이웃이 병원 치료 중 마지막 사망자가 됐다고 들었을 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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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씨의 헌신으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조만간 이씨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표창할 예정이다.


한편 대구 중부경찰서는 13일 사우나 화재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 남탕 입구 앞 구둣방 안 벽면에 있는 콘센트에서 불이 시작됐고 소방시설 관리 미흡,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 태만, 사우나 종사자의 부실한 구호 조치, 소방계획·훈련 미흡 등이 화재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우나 업주 등 3명을 구속하고 사우나 종사자, 소방공무원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화재로 3명이 숨지고 84명이 다쳤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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