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직장 사표내니 "연봉 1억→6000만원"···말바꾼 회사 최후
法 "연봉 약속한 합격 통보 뒤 취소는 부당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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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마침내 억대 연봉자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봉 1억원에 인센티브 약속도 받았습니다. '최종합격 및 처우안내'란 e메일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생각에 전 직장에 사표를 냈던 A씨. 그런데 갑자기 새 직장에서 연봉을 수천만원 깎은 조건을 다시 제시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항의하자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러브콜을 받던 A씨는 실직자가 됐습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회사의 행태를 '부당해고'라 판결했습니다. 회사와 헤드헌터업체, 지원자 사이에 오간 최종합격 e메일만으로도 근로계약이 성립했다고 본 것입니다. A씨는 해당 임금을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이직 과정의 연봉 협상에서 속앓이하셨던 분들에게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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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
A씨는 2018년 헤드헌터업체로부터 B업체 임원 영입 제안을 받았습니다. A씨는 자신의 이력서를 보내고 B업체 대표와 면접을 봅니다. A씨는 면접 이틀 뒤 헤드헌터업체를 통해 "000님 처우입니다. 연봉 1억에 인센티브, 법인카드 등 지급"의 B업체 '최종합격 및 처우안내'란 제목의 e메일을 받습니다.
A씨는 입사날짜를 통보했고 모든 것은 순조로웠습니다. 한 달 뒤 A씨는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합니다. 새 직장 입사까지 다시 한달이 남은 시점. 여기서 변수가 생깁니다. 새 회사가 조금씩 말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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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6000만원→불합격
B업체는 A씨 입사가 2주 정도 남은 상황에서 헤드헌팅업체에 "사업의 진도가 늦고 실무진도 선발이 안 돼 열악한 상황"이라며 A씨가 퇴직 전이면 입사를 하반기로 조정 가능한지 묻습니다. A씨가 이미 퇴사한 상황에서 말이죠. A씨는 그 뒤 B업체 임원들과 면담을 하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연봉이 확 깎인 것입니다.
B업체는 A씨에게 '연봉 6000만원에 특별성과급을 인센티브로 제시한다'는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A씨가 항의하자 B업체는 A씨에게 '불합격 통보'를 합니다. 아직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8일 이를 "부당한 해고"라 판단했습니다. 정확히는 B업체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부당해고를 했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이 적법하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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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왜 이런 판단을
법원은 A씨의 처우 등이 포함된 '최종합격' 제목의 e메일과 A씨의 면접 및 채용 과정의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이 정도의 의사가 오갔다면 근로계약의 효력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계약은 특정한 형식을 요구하진 않습니다. 채용에 대한 승낙과 약속을 증명할 객관적 서면 자료가 충분하다면 B업체와 A씨간의 근로관계는 성립합니다.
판사 출신인 신인수 민주노총법률원장은 "근로계약은 매매계약과 유사하다.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긴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A씨가 새 직장을 구하지 않았다면 지난 2년간 B업체가 처음 약속했던 임금을(연봉 1억원) 돌려받게 됩니다. 만약 새로운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연봉 차액 또는 손해배상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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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협의과정 근거 남겨야
이직 과정에서 말을 바꾼 회사에 속앓이하는 직장인은 A씨 뿐이 아닙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은 "이런 유사한 사건은 법조계엔 많다"고 말합니다. 양 변호사는 "전 직장을 퇴사하기 전 문자와 음성으로 새 회사와 협의한 채용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A씨의 승소 근거도 결국엔 '문서로 된 합격 증거' 였습니다.
변호사들은 새 회사의 합격이 확정되기 전에는 전 직장을 섣불리 퇴사하는 것도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인수 변호사는 "회사와 개인 간의 1:1 계약은 개인에게 불리한 측면이 많다"며 "특히 퇴사의 경우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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