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불타오른 청라…'배터리 정체'도 모르는 전기차 50만대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불에 탄 벤츠 전기차. 뉴시스 |
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고를 계기로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라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EQE 화재 사고가 발생한 이후 네이버 ‘메르세데스-벤츠 EQ 클럽’ 등 온라인 카페엔 배터리 불안을 걱정하는 전기차 차주들의 글이 하루 평균 약 60~70건씩 올라오고 있다. 지난 6일 충남 금산의 주차타워에선 기아 EV6에서도 불이 났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벤츠 사고 차량에 중국 배터리 기업 ‘파라시스(Farasis)’의 제품이 탑재된 사실이 알려졌지만,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측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EV6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인 SK온은 “필요한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벤츠를 비롯해 현대차·기아·테슬라 등 주요 전기차 회사들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차종별 탑재 배터리의 브랜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배터리 용량과 최대 주행거리만을 표시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브레이크나 사이드미러를 어느 회사에서 납품 받은 건지 표시하지 않듯, 배터리도 제조사 표기를 하지 않는 관행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불만과 불안이 쌓이면서 정부는 내년 2월부터 전기차 배터리 정보 등록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화재 사고시 원인 분석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2025년 2월부터 배터리 이력 관리 의무화
자동차관리법 시행령에 담길 배터리 관련 의무 규정은 크게 2가지다. ▶전기차 제조사는 사전에 정부 인증을 받은 배터리를 써야 하고 ▶배터리 일련번호를 등록해 탑재부터 ‘사용후 재처리’까지 이력을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이 정보는 전기차 차주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배터리 이력이 관리되면 원인 불명의 화재 사고 발생시 해당 배터리와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같은 회사의 제품들을 정부가 일괄 점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추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6일 충남 금산에서 발생한 EV6 화재. 사진 금산소방서 |
문제는 새 법령 시행 이후 출시된 전기차에만 이 규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소급 적용은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토부는 전기차 주인이 교통안전공단에 식별번호를 자율등록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차주가 자기 차량 정보를 입력하면 교통안전공단이 해당 차량 제조사에 의뢰해 배터리 관련 정보를 받아 공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판매사 입장에선 의무가 아니다보니, 이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배터리 정보를 알 길이 없다. 현재는 현대차·기아·KG모빌리티·테슬라·BMW만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이마저도 국산 전기차는 2023년 12월 출고분부터 제조사가 배터리 정보를 갖고 있다 보니 효과가 제한적이다. 새 법령이 시행되든, 자율등록 제도를 통해서든 지난해 12월 이전 출고된 약 50만대의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정보는 계속 ‘깜깜이’ 상태로 남는다.
정부와 업계에서 거론되는 현실적인 대안은 화재 진압 설비 확충이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청라 벤츠 사고는 조사 결과가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스프링클러만 제때 충분히 가동됐어도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이 났을 때 순간 발화 속도가 높은 배터리 특성상, 전기차가 내연차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정부는 차량 화재 사고 1건당 내연기관차량 피해액은 800만원, 전기차는 20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전기차는 불이 나도 끄기 어려운 열폭주 현상 때문에 소비자에게 두려움을 주고 수요 저하에 영항을 줄 수 있다”며 “불 끄는 기술이 향상되는 등 대안이 제시돼야 하고, 전기차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욱·고석현 기자 isotop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