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다' 악명 떨친 그 곳, 50년만에 '잘피'가 돌아왔다
올해 은어·잘피 돌아오고 연어도 찾아와
'죽음의 바다' 끈질긴 노력에 다시 맑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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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출 입국의 상징이라는 부러움과 동시에 바다 오염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경남 창원시 마산만(灣).
1970년대부터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창원 국가산업단지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인구가 빠르게 늘었고, 내륙 안쪽으로 좁고 길게 뻗은 해역에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쏟아지면서 '죽음의 바다'로 변해갔다.
마산·창원·진해는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됐고, 그 가운데 위치한 마산만의 수질이 최근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올해 들어 깨끗한 곳에서만 자라는 해조류 잘피가 발견됐고, 창원시 도심 하천에서는 50년 만에 은어가 돌아온 것도 확인됐다.
이달 초에는 먼바다에서 살던 연어까지 창원 도심 하천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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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만 특별관리해역 민·관·산·학 협의회 이성진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마산만 바닷물 수질이 과거 10~20년 전에 비해 크게 좋아진 덕분"이라며 "지난 2000년부터 시민들 중심으로 마산만 살리기 운동이 시작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업계·학계 등에서 꾸준히 노력한 성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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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국내 최악의 오염 해역 '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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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만은 남북 길이가 8.5㎞, 동서 폭은 최대 5㎞인 반 폐쇄성 내만(內灣)이다. 평균 수심은 15m로 깊지 않고, 조류도 초속 10㎝ 정도로 약하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이곳에 오염물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진해만과 마산만에는 거의 해마다 적조(赤潮·red tide)가 발생했다.
86~90년 사이에는 매년 적조가 관찰됐다.
급기야 75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있었던 가포 해수욕장이 폐쇄됐다.
마산만 수질 악화로 시민들이 바닷물에 몸을 담글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환경부로 격상되기 전 해양관리까지 맡았던 환경청이 80년대에 측정한 마산만의 수질 자료를 보면 마산만 수질은 심각했다.
81년 기준으로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이 6.5ppm에 이르렀다.
I~III 등급까지 있는 해역 수질 등급에서 최하 III 등급 기준(4ppm 이하)마저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82년 국내 최초로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됐으나, 수질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86년에도 마산만의 COD는 계절에 따라 3.3~5.6ppm을 보였고, 인천·군산·목포·여수·부산중에서 오염이 가장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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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도 마산합포구 마산 어시장 앞 바닷물에서는 총 세균수가 mL당 10억 마리를 초과, 다른 지역의 1000배 수준에 이르렀다.
가포해수욕장 대신 76년 문을 열었던 광암해수욕장도 2002년 수질 악화로 문을 닫아야 했다.
94년 당시 인터뷰에서 경남대 환경보호학과 양운진 교수는 "과밀화된 마산·창원에서 공장폐수·생활하수가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채 흘러드는 데다 어패류 양식장도 오염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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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에 걸친 꾸준한 노력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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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접어들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시민단체와 정부, 학계 등을 중심으로 해양오염 방지 노력도 시작됐다.
특히, 95년 2월 마산에서는 '연안역 통합관리 워크숍'이 열리는 등 마산만·진해만에 대한 환경개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연안역 통합관리는 마산만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육지에서부터 오염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2000년에는 시민연합이 결성돼 마산만 살리기 운동이 시민 영역에서부터 본격화됐다.
마산만 특별관리해역은 2000년 해역(143㎢)뿐만 아니라 오염 발생지인 육지 지역(158㎢)까지 확대 지정됐다.
해양수산부 강정구 해양환경정책과장은 "2007년 전국 최초로 마산만에 오염총량관리제가 도입됐고, 지자체에서도 오염원 관리에 노력하면서 수질이 점차 개선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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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시장 허성무)는 지난해부터 수질 개선 종합대책인 '수영하는 해(海)맑은 마산만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육상 오염원의 해양 유입을 줄이고, 해양 생태계의 자정 능력을 제고하고, 해양환경을 과학적으로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5100억 원을 투입해 도시 비(非)점오염원 저감, 마산어시장 세척수 저감, 하수처리장 방류수 수질 개선, 해역 환경정화사업, 해양환경 모니터링 강화 등을 추진하게 된다.
창원시 수산과 이은화 주무관은 "지난 5월 마산만에 유입되는 하천에서 확인된 오염원 539곳 중 229곳의 유입을 차단했고, 하수처리장 최종 방류수 COD 수치도 지난해 11~20% 개선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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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았던 해수욕장도 재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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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산만의 COD 농도는 1.96ppm이다. 최근에는 정체 상태이지만, 30~40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개선됐다.
2009년 엽록소a 농도가 ㎥당 25.39㎎이었으나, 2018년에는 5.94㎎/㎥로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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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환경공단 김성길 팀장은 "엽록소 농도가 낮아졌다는 것은 적조 등 식물플랑크톤의 대발생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라며 "마산만의 경우 여름철에는 오염이 남아있지만, 다른 계절은 아주 맑아졌다"고 평가했다.
바닷물이 맑아지면서 광암해수욕장도 2018년 다시 개장했다.
마산만 바닷물 투명도는 2010년 1.5m에서 지난해 3m로 커졌다. 이제는 3m 깊이까지 바닷물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지난 6월에는 해조류 잘피의 일종인 거머리말이 마산만 돝섬 조하대(潮下帶·간조 때도 바닷물에 잠기는 해역)에서 자라는 것이 40~50년 만에 확인됐다.
마산만 오염 탓에 80년대 이후 사라졌던 잘피가 되돌아온 것이다.
물고기의 산란장과 은신처 역할을 하는 잘피는 바닷물이 깨끗한 곳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최근 서식지가 줄어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돼 있다.
지난 9월에는 창원시 지속 가능한 발전협의회 조사팀은 도심을 흐르는 창원천·남천 등에서 어류 서식 실태를 조사했고 은어의 서식을 공식 확인했다.
70년대 초 자취를 감춘 지 50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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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2일에는 창원천과 남천에서 연어 10여 마리가 헤엄치는 것이 목격됐다.
산란을 위해 마산만을 지나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한국 수산자원공단 동해생명자원센터 관계자는 "창원에서는 연어 치어를 방류한 사례가 없어 낙동강이나 섬진강에서 방류한 것이 3~4년 만에 회귀하다 길을 잘못 들어 마산만으로 간 것으로 판단된다"며 "마산만을 거쳐 하천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바닷물 수질이 개선된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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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으로 인한 수질 악화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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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피와 은어·연어 외에도 마산만의 봉암갯벌도 살아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수달도 살고 있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II 급인 흰목물떼새나 기수갈고둥도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해양도시 건설 등 마산만이 매립되면서 앞으로도 수질이 개선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면적 64만2000㎡에 이르는 마산 해양신도시는 정부가 2003년 말부터 마산만 가포신항 건설 과정에서 나온 준설토를 이용해 매립한 곳이다.
현재는 매립이 완료됐고, 도시기반시설 공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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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들어서면 그만큼 오염원도 늘어나게 된다.
하수처리를 강화하고 비점오염원 유입을 차단한다면 수질은 맑아질 수 있지만, 매립으로 마산만 자체가 더 좁아진다면 그만큼 오·폐수가 덜 희석되고 오염 수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진 사무국장은 "앞으로도 마산만이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50년 만에 되찾은 깨끗한 바다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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