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전까진 미우나고우나 동지였다, 유시민·진중권 20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유시민과 진중권.
서울대 2년 선후배 사이인 둘은 20여년간 ‘자타공인’ 진보진영 대표 논객이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거쳐 비판 기조를 이어가며 맹활약했다. 둘은 한때 같은 배를 타기도 했다. 2014년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통해서다. 또 같은 정당에도 몸담았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조국사태’를 거치며 파국을 맞았다. 두 사람의 과거 발언을 토대로 ‘애증의 역사’를 정리해봤다.
━
17대 총선 앞두고 '민노당 사표(死票)논쟁'
두 사람의 말싸움이 아주 낯선 건 아니다. 둘이 정치권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맞붙은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벌인 ‘사표(死票)논쟁’이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신분이던 유 이사장이 “지역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는 표는 모두 죽은 표”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자, 진 전 교수는 진보 커뮤니티에 “정치판에 들어가더니 이 인간(유시민) 완전히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둘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이라크 파병,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을 놓고 또 대립각을 세웠다.
유시민·진중권 주요 사건 및 관계 기상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
MB정부 때 찰떡 호흡…‘통진당’서 한 배
싸움도 한때, 그해 12월 두 사람은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찰떡 호흡’을 과시한다. 이명박 정부의 1년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당시 네티즌들은 “유시민과 진중권 투톱 덕분에 신나는 경기였다” “유시민-진중권 환상의 복식조였다”는 등의 평가를 했다.
유시민 이사장과 진중권 전 교수가 함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책 표지. [중앙포토] |
2011년 두 사람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 서적 『아! 노무현』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그해 12월 둘은 처음으로 같은 정당에 몸담는다. 유 이사장의 국민참여당이 민주노동당·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과 합당해 ‘통합진보당’(통진당)을 창당해서다. 진 전 교수는 앞서 2009년 ‘진보신당’에 합류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진당이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내홍에 휩싸이자 두 사람은 비당권파인 심상정 대표를 지지하며, 정의당으로 갈라설 때까지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유 이사장은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지만, 정의당 당적은 계속 유지했다.
━
‘노유진의 정치카페’로 톰과 제리 활약
두 사람이 ‘절친 케미’ 최고조에 이른 건 2014년 고(故)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시작한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였다. 두 사람이 ‘톰과 제리’처럼 투덕투덕 진행을 이어가면, 노 전 의원이 이들을 중재하는 게 재미요소였다. 2016년까지 100회분이 방송됐다. 2016년 5월엔 JTBC ‘썰전’ 패널이던 유 이사장이 개인 사정으로 녹화에 불참하자, 진 전 교수가 대타를 맡기도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유 이사장이 ‘어용지식인’을 선언하고, 다음 해 정의당을 탈당하며 6년 6개월 만에 둘은 당적을 달리하게 된다. 그해 유 이사장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
'조국 사태' 1차전…지킴이 vs 저격수 갈라서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 건 2019년 8월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뒤다. 각각 ‘조국 수호대’ ‘조국 저격수’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 이사장은 “심각한 위법 행위나 직접 책임질 도덕적 문제가 하나도 드러난 게 없다”고 했고, 진 전 교수는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이지 이념이나 진영으로 나뉘어 벌일 논쟁이 아니”라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특히 둘은 ‘동양대 표창장 위조’ 의혹을 놓고 그해 말까지 4개월여간 대치를 이어간다. 유 이사장이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한 것이 ‘외압 논란’으로 비화하자 “유튜브(알릴레오) 언론인이라 취재한 것”이라는 유 이사장의 해명을 진 전 교수가 “회유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반박한다.
이어 유 이사장이 유튜브를 통해 “진 교수 스스로 자신의 논리적 사고력이 1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감퇴했는지 자가진단해 봤으면 한다”고 하자, 진 전 교수는 “이 분, 60 넘으셨죠?”라며 유 이사장의 논리적 사고력이 감퇴한 것 아니냐고 에둘러 비판했다.
━
올해 초, 유시민 “서운하다”며 작별선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두 사람의 공방은 2020년 새해 첫날 JTBC ‘신년토론’에서도 이어진다. 진 전 교수가 스탈린·히틀러를 예로 들면서 ‘알릴레오’가 전체주의를 부추긴다고 공격하자 유 이사장은 “저는 과거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마구 따지니까 당혹스럽다”며 “서운하다”고 했다.
일주일 뒤인 1월 7일 유 이사장은 유튜브에서 “어떤 때에는 판단이 일치했고 길을 함께 걸었던 사이지만 지금은 갈림길에서 나는 이쪽으로, 진 전 교수는 저쪽으로 가기로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며 ‘작별’을 고한다. 이에 진 전 교수는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분(유 이사장)의 마인드가 윤리 영역을 떠나 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며 “그래도 두 발은 아직 논리 영역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아예 논리 영역마저 떠나버리셨다”고 답한다.
━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 두고 전면전
‘임미리 칼럼 고발 사건’‘민주당 위성정당 창당’을 두고 국지전을 이어오던 둘은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두고 다시 전면전에 들어선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모집책을 상대로 강연했던 유 이사장에게 지난 4월 이철 전 대표가 ‘2시간에 50~60만원 선’에서 강연료를 지급했단 주장을 하자, 진 전 교수가 그 액수는 터무니없다며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라고 비판했다. 이에 유 이사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진중권씨의 모든 주장을 나는 백색소음으로 여긴다”고 응수했다.
7월 24일엔 유 이사장이 또 다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사건은 검찰이 언론에 외주를 준 사건”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개입됐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진 전 교수는 “유시민이 아침부터 거짓말을 한 모양”이라고 저격한다. 또 ‘(유 이사장의)피해망상 사이코 드라마’라고도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시민 이사장을 지칭하며 "밥만 먹으면 거짓말 하는 분인데, 그렇다고 이분께 밥을 먹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잖아요"라고 했다. [진중권 전 교수 페이스북 캡처] |
25일,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이 음모론 시나리오를 검수했다고 주장한다. 또 유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24일 “노무현재단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봤다”고 한 것을 지적하며 “밥만 먹으면 거짓말하는 분인데, 그렇다고 이분께 밥을 먹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한다. 진 전 교수는 그 뒤에도 “유시민이 그전엔 최소한 이수준은 아니었어요. 최근에는 하는 말이 거의 김어준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그 배경엔 공포감이 있는것 같다”(27일)고 하며 유 이사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유 이사장은 이에 대한 답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