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톈안먼 사태 올 수도"···리원량 죽음, 中민심이 심상찮다
우한지역 교수들 SNS 공개서한
“이번 사태 핵심은 언론의 자유
정부, 리원량 순교자로 지정을”
천안문 촉발 후야오방 죽음도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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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을 경고했던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죽음에 중국 지식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리원량에 대한 국민적인 추모 열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학자들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소셜미디어에 공개 서한을 냈다. 이번 사태가 시진핑(習近平)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같은 거대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지난 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리원량의 죽음 후 중국의 대학 교수들이 연이어 중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베이징대 법학과 장첸판(張千帆) 교수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리원량이 사망한 2월 6일(공식 사망일자 7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법 조항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중앙병원의 안과 과장이었던 리원량은 지난해 12월 말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 신종 코로나 발생을 알렸다가 우한 공안(公安, 경찰)으로부터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후 신종 코로나에 걸려 투병하다 지난 7일 숨졌다. 중국 지식인들은 애초에 정부가 리원량에 대한 입막음만 하지 않았어도 현재와 같은 국가적 재앙이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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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같은 상황 벌어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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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첸판 교수는 이어 “우리는 리원량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다”며 “모든 사람이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현 체제에 맞서 ‘아니요’(No)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첸훙(秦前紅) 우한대학 법학 교수도 SCMP에 “이번 사태는 아주 큰 위기”라며 “중국의 여론은 지금껏 분열돼 있었지만, 현재는 (리원량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라는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황이 폭발할까 봐 우려된다”며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가 죽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후야오방은 1982년 총서기가 돼 덩샤오핑(鄧小平)의 후계자로 꼽혔으나, 1986년 일어난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다. 1989년 4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후야오방의 사망은 같은 해 6월 일어난 ‘톈안먼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시진핑(習近平) 정권 출범 후 사회 통제가 대폭 강화된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식인들의 이 같은 발언이 이어지면서 리원량의 죽음이 시진핑 체제 자체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게 아니냐는 예측도 나온다.
중국 정치 전문 저술가 룽젠(榮劍)도 뉴욕타임스(NYT) 8일자에서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는 공산당의 정당성에 1989년 6월 4일 사건(톈안먼 사태) 다음 가는 큰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NYT는 이번 위기가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구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하면서 “시 주석이 2018년 개헌으로 제3기 집권을 실현할 발판을 마련했지만, 신종 코로나 위기로 타격을 받는다면 당내 실력자들과 타협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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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량을 순교자로 지정하라”
9일 SCMP에 따르면 신종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에 있는 화중사범대의 탕이밍(唐翼明)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소셜미디어에 공개서한을 냈다. 중국 정부에 보내는 이 서한에서 학자들은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지적하면서 “이번 사태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중국 헌법을 인용해 “중화인민공화국 시민들은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며 “신종 코로나의 존재를 폭로한 리원량 외 8명의 의사들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침해당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이들 8명에게 사과하고, 리원량을 순교자로 지정할 것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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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 서둘러 민심수습 나서
리원량에 대한 중국인들의 추모 열기는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리원량 사망 후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등에는 그를 추모하는 글과 ‘나는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를 단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는 곧바로 당국에 의해 삭제됐고 수많은 위챗 계정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정지 당했다.
중국 의료계에도 “어떤 경우에도 신종 코로나와 관련된 얘기를 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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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검열과 함께 조사팀을 우한에 파견해 사태 수습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관영 경제일보의 소셜미디어 계정 ‘타오란 노트’에 따르면 중국의 사법·공안 계통을 총괄 지휘하는 중앙정법위원회 비서장 천이신(陳一新)이 우한시에 파견돼 신종 코로나 대응에 합류한다. 천이신은 시 주석의 비서와 책사 역할을 한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친첸훙(秦前紅) 우한대 법학 교수는 “우한 내 환자들과 가족, 주민들 사이에 분노가 거세다는 점을 생각하면 천이신의 파견이 ‘사회적 안정’을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신속한 개입이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난징대 정치학 교수인 구쑤는 SCMP에 “국가 고위 기관이 의사 한 명의 죽음에 이렇게 신속하게 조사팀을 파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들이 리원량을 처벌한 경찰은 조사할 수 있겠지만, 이를 지시한 상층까지 조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SCMP도 “중국 정부가 대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관료들을 처벌할 수 있겠지만, 이는 신종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관료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다”며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를 얼마나 수용할지도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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