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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감독들이 묻다,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국내외 영화제 화제작 네 편

상업영화틀 뛰어넘는 패기 넘쳐

자식 잃은 부모 다룬 ‘살아남은 …’

범죄자 몰린 소녀 그린 ‘죄 많은 …’

히어로영화 제작기 ‘어둔 밤’ 유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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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아들이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숨진 뒤 부모는 살아남은 친구를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살아남은 아이’). 같은 반 친구의 갑작스런 실종에 가해자로 지목된 소녀는 모두의 의심 속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죄 많은 소녀’).

제작비 규모는 1억~2억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던지는 질문은 수백억원대 대작 못지않게 묵직하고 예리하다. 두 영화 모두 신인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신인 감독들의 주목할만한 데뷔작이 연달아 개봉한다. 고아가 된 열네 살 소녀가 생면부지 삼촌과 부녀 사칭 사기극을 벌이는 ‘어른도감’, 오합지졸 할리우드 키드들이 슈퍼 히어로 영화 제작에 도전하는 ‘어둔 밤’도 있다. 우리네 삶을 한 발 가까이서 파고든 세밀한 시선, 재기 발랄한 형식이 돋보인다.


30일 개봉한 ‘살아남은 아이’는 지난해 부산영화제, 올 초 독일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은 작품. 사고로 아들(이다윗 분)을 잃은 성철(최무성 분)과 미숙(김여진 분) 부부는 아들이 살린 친구 기현(성유빈 분)과 가까워진다. 인테리어 가게를 하는 부부는 의지할 곳 없는 기현에게 집 고치는 법을 가르치며 마음을 열지만,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용서와 위로에 이르는 여정을 차분하게 뒤좇되, 인물 저마다의 복잡한 심경을 섬세하게 그리며 매 장면 긴장을 놓지 않는다. 잔잔한 수면 아래 소용돌이가 치듯 복잡한 감정 변화를 표현한 배우들의 공도 크다. 최무성·김여진과 호흡을 맞춘 성유빈은 ‘신과함께-죄와 벌’에서 차태현의 어린 시절, ‘아이 캔 스피크’에서 이제훈의 동생으로 얼굴을 알린 신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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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신동석(40) 감독은 늦깎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입학해 영화에 입문한 경우다. 20대 초반 연달아 지인들과 사별하며 느낀 감정이 시나리오의 토대가 됐다는 그는 “결국 애도와 용서는 자신이 받은 고통을 어떤 식으로든 치유하려는 과정이 포함돼 있는 것 같다”면서 “입장은 다르지만, 그 고통을 진심으로 알아봐 주는 이가 한 사람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위로는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것이 삶에 내재된 작은 희망”이라고 했다.

다음 달 13일 개봉하는 ‘죄 많은 소녀’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과 올해의 배우상(전여빈) 등 2관왕에 오른 화제작. 친구의 실종에 관해 무죄를 입증하려는 고등학생 영희(전여빈 분)와 어떻게든 사건을 결론내고 싶어 하는 어른들, 같은 반 아이들의 엇갈리는 진술과 진실이 숨 가쁘게 교차한다. 김의석(35) 감독의 말대로 “본능처럼 자신의 탓이 아니길 바라며 필사적으로 자기와 가장 먼 답을 도출해내려는 가냘픈 인간성”이 자아내는 갈등과 부조리가 스크린 너머까지 와닿는다. 영희가 겪는 사건은 김 감독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심장을 잘근잘근 씹는 듯한 극도의 고통을 절제된 표정에 담아낸 전여빈의 연기도 일품. 주연은 처음이지만, 배우 문소리의 연출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 등 독립영화와 드라마 ‘구해줘’ 등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왔다. 죽은 친구의 엄마 역 서영화, 숨통을 죄는 형사 역의 유재명, 또 다른 비밀을 감춘 단짝 역의 고원희 등 조연진도 시선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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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6일 개봉하는 ‘어둔 밤’은 제목부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를 나사 하나 빠진 듯한 한국말로 패러디했다. ‘다크 나이트’에 푹 빠진 영화 덕후들이 열정만으로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가짜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전개한다. 지난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르영화 팬들을 열광시키며 코리아 판타스틱 작품상을 받았다. 심찬양(32) 감독은 연기가 처음인 실제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단돈 2000만원에 영화를 완성했다.

전체 3부 중 1부는 3년 전 심 감독이 만든 단편 ‘회상, 어둔 밤’ 그대로다. 히어로물을 찍으려던 동아리 멤버들이 돌연 입대를 하며 촬영이 불발된단 내용. 이후 제대한 주인공들이 취업난과 무기력증을 딛고 다시 뭉친단 설정으로 2·3부를 펼친다. 매끈한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당황할 만한 거친 전개가 허를 찌르며 이어진다. 극 중 패러디한 영화만 50여 편. 취향과 개성으로 무장한 뚝심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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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봉해 2주차에 접어든 ‘어른도감’은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매진사례를 일으키며 입소문이 자자했던 영화다. 중학생 경언(이재인 분)이 아빠의 사망 보험금을 홀랑 날려버린 삼촌 재민(엄태구 분)의 카사노바 행각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소동극. 장례식에서 처음 만난 삼촌과 조카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어주는 여정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자전적 성장담 ‘아빠의 맛’, 도박중독에 빠진 주부를 그린 ‘수요기도회’ 등 단편 시절부터 독특한 소재로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들춰온 김인선(34) 감독의 솜씨다. 서정연·황정민·박성연·장혜진·이정은 등 베테랑 여성 배우들의 생활연기도 현실감을 더한다.


김인선 감독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게 스스로에게도 독이 된다는 걸 깨달으며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며 “너무 자극적이거나 신파로 몰아가지 않는 드라마 장르를 시도했는데, 독립영화라 개봉관이나 상영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더라. 개봉 후 관객 반응을 귀담아들으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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