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루이비통이 투자했다…실험실서 키우는 '양식 다이아' [더 하이엔드]
최근 하이엔드 업계에 주목할 만한 투자 이슈가 있었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산하 기업 투자회사 LVMH 럭셔리 벤처스가 이스라엘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Lab grown Diamond) 생산 스타트업 ‘루식스(Lusix)’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것이다. LVMH 럭셔리 벤처스의 정확한 투자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루식스는 다른 투자업체 두 곳과 함께 총 9000만 달러(117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수혈하기로 했다. LVMH의 이번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투자는 하이엔드 업계 최초이자 이례적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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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연속 상승 수직 곡선,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뭐길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특정 조건을 갖춘 실험실에서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일종의 '양식' 다이아몬드이다. 작은 천연 다이아몬드를 씨앗 삼아 실험실에서 몸집을 키워내는 합성 다이아몬드로, 조개 안에 진주 씨앗을 넣어 생산하는 양식진주를 생각하면 쉽다. 유사석이 아니라 천연 다이아몬드와 성분, 특성이 같아 보석으로 분류한다. 만들어지는 장소가 실험실이냐 천연이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문 감별사조차 눈으로는 분별이 어려워 시장성 높은 보석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합성 다이아몬드라는 데서 오는 선입견으로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사용은 다소 소극적인 면이 있었다. LVMH의 이번 투자가 시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주로 많이 활용되는 기술은 화학 기상 증착 방식(CVD, chemical vapor deposition)이다. 원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기체 상태의 원료 가스가 반응기 안으로 주입되면 열이나 플라즈마 등으로부터 에너지를 받게 돼 분해되는데, 이때 원하는 물질만 기판 위에 도달해 얇은 막을 형성하는 기술이다. 대개 천연 다이아몬드 1캐럿(0.2g)을 얻으려면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수 천 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면 적절한 조건을 갖춘 실험실에서 수개월 안에 다이아몬드를 키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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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 럭셔리 벤처스는 어떤 곳?
이번 투자를 단행한 주체는 2017년 설립된 LVMH 럭셔리 벤처스다. LVMH 그룹의 사내 투자 벤처 캐피탈 격으로, LVMH에서 자금 전액을 출자해 모기업이 전개하는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기업과 신규 산업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설립 이후 뉴욕의 명품 시계 전문 미디어·커머스 플랫폼 호딩키, 소셜 커머스 레플리카 등 9개 유망 기업에 투자했다. 투자 규모는 500만~2000만 유로(68억~270억원)에 달한다. 주로 미래 소비자 욕구를 잘 파악해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DNA가 있는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루식스에 대한 투자 역시 이 같은 투자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LVMH는 왜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에 주목했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보석업계는 천연 다이아몬드 수급에 불안정을 겪고 있다. 러시아 제재 때문이다. 지난 5월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 업체 러시아 알로사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가해졌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달리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이 같은 대외적 악재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 경쟁력도 좋다.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천연 다이아몬드 1캐럿이 1000만원대 라면,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2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세계 다이아몬드 산업 시장 조사 업체 에단골란에 따르면, 2018년 이전 세계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판매량은 10억 달러(1조2900억원) 미만이었다. 전체 다이아몬드 시장의 1%도 채 되지 않는 판매량이다. 그러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이 같은 경쟁력이 재평가되면서 판매량은 2020년 3.5%, 2021년 5%를 기록하는 등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는 10%를 내다보고 있다.
윤리적 소비 추구하는 MZ세대 품을까
LVMH가 루식스를 선택한 데는 미래 소비 주도층이 될 MZ세대에 대한 고민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다. 1캐럿의 천연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려면 흙을 파헤치는 등 막대한 자연 파괴가 동반된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수 천 만원을 호가하지만 이것을 얻기 위해 동원되는 노동력에 대한 대우는 처참하다. 천연 다이아몬드 광산을 두고 많은 아프리카 국가 간 내전을 겪으며 '피의 다이아몬드'라는 오명을 얻게 된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험실에서 만든 양식 다이아몬드는 과학 기술력으로 이 같은 어두운 면을 덜어낼 수 있다.
루식스는 여기에 더해 태양열을 활용한 다이아몬드 생산 방식을 추구하고 있어 더 눈길이 간다. 동종 업계 최초로 100% 태양광 발전을 활용했고, 환경·지속가능성 등의 분야에서 권위 있는 SCS 글로벌 서비스 인증도 받았다.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이 적잖은 전기가 사용되는 에너지 집약산업인 만큼, 태양열을 활용해 지속가능성까지 고민한 것이다. 이 스타트업을 제대로 된 협업 파트너로 가져간다면 LVMH는 합리적 가격, 높은 품질에 윤리·친환경적 생산 과정까지 더해 산업 판도를 바꾸는 파괴적 혁신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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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의 다음 행보는
LVMH와 루식스의 협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이번 LVMH의 투자금으로 두 번째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 시설을 확보하게 된 루식스는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LVMH로서는 이번 전략적 투자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게 된 만큼 보유한 다양한 브랜드에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LVMH는 이미 올해 초 공개한 태그호이어의 최신 시계 '카레라 플라즈마 투르빌론 나노그래프' 컬렉션에 11캐럿 이상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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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업계는 LVMH가 지난해 인수한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에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협업 결과물을 가장 빠르게 적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티파니는 LVMH 품에 들어오고 난 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슈프림 등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의 적극적인 협업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당신 어머니가 좋아하던 예전의 그 티파니가 아니다"라며 적극적인 변신을 예고하기도 했다.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합리적 가격에 높은 품질, 윤리적·친환경 제조 공정까지 MZ세대의 소비 DNA와 여러모로 들어맞는 구석이 많다. MZ세대를 잡고 싶은 티파니라면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통해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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