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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름다움에 빠진 정우성, 자폐 소녀 완벽 연기한 김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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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13일 개봉하는 ‘증인’(감독 이한)으로 만난 배우 정우성(46)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영화는 살인 용의자의 변론을 맡은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유일한 목격자인 10대 자폐 소녀 지우를 만나 변화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휴먼 드라마에 법정신을 긴장감 있게 버무렸다. 지난해 영화 ‘신과함께’로 사랑받은 아역 출신 김향기(19)가 그와 처음 스크린에서 호흡을 맞췄다.







"실제론 무뚝뚝한 부자관계, 영화로 대리만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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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의 부패 경찰, ‘더 킹’의 비리 검사, ‘강철비’의 북한 요원 등 거친 남성들의 세계를 잇달아 그려온 그가 10대 소녀와 소통하려 쩔쩔매는 노총각 변호사 역이라니. 그런데 그 모습이 퍽 자연스럽다. 피로에 찌든 직장인의 얼굴로 출근했다가, 퇴근 후엔 아버지(박근형)와 막걸리 한잔하며 멸치 안주를 다듬어 건네는 손동작이 몸에 밴 일상처럼 다가온다.

“제가 맛보지 못한 일상의 순간들을 대리만족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정우성은 돌이켰다. “저에겐 모두 특별하고 값진 장면들이었어요. 집에선 제가 되게 무뚝뚝하거든요. 어릴 적 혼자 나와 생활해서 아버지를 잘 모르고 아버지도 저를 잘 모르세요. 가부장적이고 엄마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좀 재미없는 분이었어요. 박근형 선생님과 더불어 아버지와 갖고 싶었던 시간을 연기하며 내 인생에 실제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될까,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정우성 삼촌, 지금껏 외적 부분만 시선 집중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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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삼촌은 지금까지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맡으셔서 어떤 ‘순호 아저씨’를 보여줄까 궁금했는데, 너무너무 좋았어요. 아버지와 툭툭 주고받는 대화도 재밌었죠. 우리 영화 이후로도 이런 매력을 더 자주 보여주길 바랄 만큼요.” 이날 연이어 만난 김향기의 귀띔이다.

두 사람은 그가 두 살 때인 17년 전 TV 광고로 처음 만난 특별한 인연. 김향기는 “어릴 때 첫 광고를 정우성 삼촌과 했다는 건 엄마한테 들어 알고 있었다”면서 “현장에서 저는 살갑게 다가가지 못하고 모니터 뒤에 조용히 앉아있는 편인데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신과함께’ 때 주지훈 삼촌이 ‘우성 형은 재밌다. 그냥 편하게 대하라’고 했는데 덕분에 정말 현장이 편안했다”고 했다.


“현장에선 나이가 거꾸로 인 것 같았어요. 향기씨가 40대고, 우성씨가….(웃음)” 이한 감독의 너스레에 정우성이 응수했다. “향기씨가 말수가 적어요. 다가가려 애쓰기보단 현장에서 가만히 같이 있으려고 했어요. 시답잖은 농담 한두 마디 하고요. 자꾸 나를 표현하는 것보다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더 좋은 소통의 방법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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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책임져야 할 우리 세대, 좋은 사람일까"

이런 모습은 극 중 지우와 순호의 관계에도 고스란히 배어난다. 처음엔 변론에 이용하려 지우에게 다가간 순호는 지우가 좋아하는 퀴즈‧과자 등으로 눈높이를 맞추며 점차 진심으로 통하게 된다. 그를 결정적으로 흔들어놓는 건 지우의 이 질문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정우성은 “저를 포함한 우리 세대에 던지는 말 같았다.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지금 우리는 정당한가. 무섭고도 무거웠다. 또 고마웠다”고 했다.





"향기씨는 너무나 큰 영감을 준 동료"

세월호 참사, 난민, 남북통일 등 최근 사회 여러 이슈에 목소리를 내온 그의 신념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면, 영화에 한껏 온기를 불어넣는 건 김향기의 천진한 연기다.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에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감성까지 물 흐르듯 실어냈다. 자폐 소재를 다룬 ‘말아톤’의 주연 조승우,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의 연기를 잠시 잊게 될 정도다. 상대역 정우성은 “너무나 큰 영감을 준 동료”라 했다.

“시나리오가 좋아 큰 두려움 없이 도전했다”는 김향기는 “오히려 영화를 준비하며 지우 같은 아이들, 가족·지인들이 봤을 때 불편하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연기 톤을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자폐아 자신이 '다르다'는 것 사춘기 때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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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엄마와 클라리넷’에 소개됐던 자폐성 장애를 가진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들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확실히 책‧영상으로 볼 때와 달랐어요. 자폐에 대한 지식이 사실 한정돼있는데, 만나보니 한 분, 한 분 개성이 달랐어요. 자폐에 대한 통념으로 한정 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우 같은 친구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사춘기 때 깨닫는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도 보통 ‘중2병’이라고 하잖아요. 누구에게나 혼란스러운 시기니까, 그런 감정을 바탕으로 지우한테 주어진 상황에 집중해야겠다, 용기를 냈죠.”

만화 ‘보노보노’의 특정 에피소드를 외울 만큼 돌려보고, 즐겨 먹는 파랑 젤리를 꼭 왼쪽으로 씹어 먹길 좋아하는 지우의 확고한 취향부터 세세하게 잡아갔다. 자료에서 본 자폐의 특징을 은연중에 계산적으로 표현한 걸 깨닫고 아차 싶었던 때도 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강박들이 커지면 저는 나올 연기도 안 나오더라고요. 뭔가 계산하고 있는 제가 ‘별로’였어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뭘 한 건가 반성했죠. 큰 디테일만 잡고 현장에서 소통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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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짱구' 만화 좋아하고 힙합 즐겨 듣죠"
“지우처럼 평소 ‘짱구’ 만화 보는 걸 좋아하고, 혼자 생각할 땐 일리네어(빈지노, 도끼, 더 콰이엇이 만든 힙합 레이블)를 즐겨 듣는다”며 웃을 땐 여느 또래다운 발랄함이 묻어났다. 배우 유승호와 함께한 영화 ‘마음이...’로 여섯 살에 스크린 데뷔한 그는 올해 한양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입학한다.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연극도 해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요. 삼촌 대신 선생님‧선배님이란 호칭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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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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