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걸그룹 톱스타는 왜 한국행을 택했나
미야와키 사쿠라 하이브 계약 목전
日 걸그룹 멤버, 한국 오디션 참여 러시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 미야와키 사쿠라(23)가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에서 입국하고 있다. [뉴스1] |
미야와키 사쿠라의 하이브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 27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그녀는 현재 하이브 측과 계약 최종 사인만 남겨둔 상태라고 알려졌다. 미야와키 사쿠라는 한국에서는 올 3월 계약 만료된 아이즈원의 멤버로 지만, 일본에선 대중적 영향력이 큰 톱스타다.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 꼽히는 AKB48에서 센터를 도맡아 왔다. 나이는 아직 23. 전성기가 막 시작할 나이인 셈이다. 그런 그녀가 지난 6월 AKB48에서 공식 은퇴하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일본에서도 반향이 컸다. 하이브행과의 계약 진행이 처음 알려진 것도 일본 언론을 통해서였다. 일본 톱스타인 미야와키 사쿠라는 왜 전성기의 시점에 한국행을 택했을까.
2018년 AKB48 총선거에서 올해 1위를 한 마츠이 쥬리나(첫째줄 가운데)와 3위 미야와키 사쿠라(첫째줄 오른쪽)는 ‘프로듀스 48’에 참가했다. [사진=AKB48 트위터] |
2000년대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일본은 한국 정상급 스타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꿈의 무대였다. SES,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한국에서 데뷔해 톱스타 반열에 오른 가수들이 줄줄이 일본의 문을 두드렸다.
일본 프로그램인 뮤직스테이션에 출연한 보아의 모습 TV 캡처. |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일본 오리콘차트에 이름을 올렸다거나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한다는 것이 아티스트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좋은 홍보수단이었다. 일본의 시장 크기가 한국보다 크다는 점도 있었지만, 음악 수준도 일본이 아시아의 톱이라고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7년 같은 해 데뷔해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에 밀려 상대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카라는 이런 방식으로 한국에서 톱스타로 성장했다. 윤하처럼 아예 일본에서 데뷔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3년 일본콘서트를 앞두고 포토타임을 가진 카라 [중앙포토] |
반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유명 아이돌그룹 스맙(SMAP)의 쿠사나기 츠요시가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활동한 적은 있지만, 한시적인 프로젝트성 활동이었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상황이 반대가 됐다. 일본에서 이미 데뷔했더나 인기를 얻은 스타들이 사실상 원점에서 시작하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Mnet에서 방영 중인 한중일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 999'에는 일본인 33명이 참여 중인데 여기엔 오카자키 모모코(사쿠라가쿠인), 카와구치 유리나(X21) 등 일본에서 걸그룹으로 활동했던 멤버들도 포함되어 있다. 앞서 2019년에는 AKB48의 인기 멤버였던 다카하시 쥬리가 한국 걸그룹 로켓펀치에 합류했다.
X21 시절의 카와구치 유리나(맨 윗열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최근 Mnet의 한중일 합작 걸그룹 프로젝트 '걸스플래닛 999'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오리콘차트] |
이런 현상에 대해 가요계 관계자들은 달라진 K팝 위상을 꼽는다.
2010년대 이후 소녀시대, 빅뱅 등 K팝 스타들이 일본은 물론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 등에서도 팬덤을 갖추고 월드투어를 진행했고, 특히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K팝의 위상도 급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위원은 "아시아 음악 시장의 중심은 이제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며 "한국에서 활동하면 일본을 비롯해 글로벌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면 일본 외에서는 주목받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세계 무대를 꿈꾸는 일본 아티스트로서는 한국을 발판으로 삼고 싶어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다이너마이트' 등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 방탄소년단 [사진 하이브] |
양국의 역전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2018년 한일 합작 걸그룹 오디션 Mnet의 '프로듀스48'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데뷔한 AKB48 멤버들이 한국에서 걸그룹에 데뷔하기 위해 한국의 연습생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했다. 이를 통해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 등 3인이 12인조 걸그룹 아이즈원에 합류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연예기획사 요시모토 흥업의 가미가소 슈 콘텐트제작 겸 사업본부장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BTS를 필두로, 세계적인 K팝 아티스트가 연이어 탄생하는 상황을 피부로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아이돌도 K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며 "K팝 아이돌은 일본 아이돌에게 없는 ‘댄스’ ‘랩’ ‘가창력’ 등 그 어떤 요소를 보아도 매우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급속한 디지털화로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해지면서 '고퀄리티의 퍼포먼스가 필수'라는 생각이 일본에서도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 한일 합작 걸그룹 프로젝트 '프로듀스 48'의 한 장면 [사진 CJ ENM] |
유독 걸그룹에서 두드러진 이유는 왜일까.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위원은 일본 걸그룹 시장의 특성을 들었다. "일본 음악 시장에서 걸그룹은 악수회 등 팬과의 만남을 갖는 오프라인 행사로 수익의 상당 부분을 벌어들인다"며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이런 오프라인 행사가 막히면서 대부분의 일본 걸그룹들이 매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일본에서 걸그룹은 여전히 여성성이 강조되는 반면 한국은 걸크러시 장르가 유행하는 등 일본보다 음악으로 승부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야와키 사쿠라는 2018년 '프로듀스48'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한국 걸그룹은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를 성장시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