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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보려 '나홀로 백패킹'···다도해 껴안고 황홀한 하룻밤


진우석의 Wild Korea② 마복산 나 홀로 백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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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전남 고흥은 청정 자연을 잘 간직한 고을이다. 높은 산과 바다, 크고 작은 섬이 어우러진 다도해가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포두면 차동리에 자리한 마복산(538.5m)은 기암괴석이 다채롭고 다도해 조망이 일품인 산이다. 고흥 남쪽 해안과 나로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 이웃한 여수의 개도와 금오도까지 엿볼 수 있다. 정상 근처 암반 야영 사이트에 텐트를 치고 황홀한 하룻밤을 만끽했다.



백패킹, 자유와 일탈


백패킹은 무거운 등짐 지고 한뎃잠을 자야 한다. 왜 고생을 사서 할까.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는 아닐까.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일탈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한뎃잠이지만 매력적인 보상이 있다. 풍요로운 숲, 전망 좋은 꼭대기가 야영 사이트다. 마복산을 선택한 건 다도해 조망 좋은 암반에서 하룻밤 묵고 싶어서였다.


내산마을의 마복산 입구 주차장에서 2㎞쯤 떨어진 산 중턱의 마복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덕분에 걷는 거리를 조금 줄였다. 20kg의 커다란 배낭을 메자 몸이 휘청거린다. 야영 사이트까지 1.7㎞를 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스틱으로 중심 잡으며 힘차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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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쯤 걸어 조망이 열린 거북바위 앞에서 배낭을 내려놨다. 산은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나무마다 조금씩 다른 연둣빛 신록이 싱그럽다. 신록 군데군데 기암괴석이 박힌 모습이 장관이다. 마복산(馬伏山)은 말이 목을 쳐들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이다. 정유재란 때에 왜선이 상륙하려다가 마복산 산세가 수천 마리의 군마가 매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퇴진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수려한 바위가 많아 작은 금강산, 소개골산(少皆骨山)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삼거리봉을 넘어 정상 봉수대에 닿았다. 돌을 쌓은 봉수대에 오르자 시야가 거침없이 열린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팔영산(608m)이다. 취도·첨도 등 다도해 섬과 해창만이 어우러진 팔영산은 과연 ‘고흥 제1경’다운 장관이다. 정상의 8개 봉우리는 엠보싱한 것처럼 볼록하게 보여 귀엽다. 벌써 모내기를 마친 해창만 들녘은 녹색 조각보를 기워 놓은 듯 푸르다. 남쪽 풍경은 나로도가 중심이다. 작은 저수지와 간척지를 품은 남성마을이 정겹고, 그 뒤로 나로도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엎드려 있다. 나로도가 이렇게 넓고 올망졸망한 산으로 가득한 줄 몰랐다.


해가 기울 시간이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행히 암반 야영 사이트는 아무도 없고, 소문대로 바다 방향이 열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먼저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한다. 참치 통조림을 따고, 비화식 비빔밥을 조리해 한술 뜨자 꿀맛이다. 여기에 소주를 한잔 곁들이니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이장입니다. 내일 마을 부녀회에서는….” 훤히 내려다보이는 남성마을 이장님의 방송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이장님은 이방인이 방송을 듣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르리라.



암반 야영 사이트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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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해가 기울고 남성마을에 하나둘 불이 들어온다. 밤이 찾아오는 마을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암반에 드러누웠다. 하늘에는 이미 반달과 별이 떴다. 달 주위로 큰 달무리가 졌다. 내일은 비가 올 모양이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저녁상을 정리하는데 뭔가 축축하다. 어느새 해무가 몰려와 산을 덮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텐트는 푹 젖었다. 모든 짐을 텐트 안에 넣었다. 비좁지만 텐트 안은 아늑하다. 펄럭펄럭 바람이 텐트를 흔든다. 바람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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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뒤척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시계를 보니 오전 5시 20분이다. 텐트 밖 풍경은 어떨까. 설레는 마음에 머리를 텐트 밖으로 빼꼼 내밀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동쪽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해안과 마을에는 풀어진 솜사탕 같은 해무가 가득했다. 허겁지겁 나와 일출을 맞는다. 여수 돌산도 위로 구름을 헤치고 방긋 해가 솟는다. 두둥실 해가 떠오르면 풍경이 빛날 시간이다. 바다는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고 산은 수묵화처럼 그윽하다. 멀리 우미산(447.5m)과, 그 산자락이 바다와 만나는 언덕에 자리한 고흥우주발사전망대가 또렷하게 보인다. 나로도 우주센터의 발사대를 본떠 만든 전망대는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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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메뉴는 라면이다. 한 젓가락 먹고 바다를 보고, 후루룩 국물 마시고 또 바다를 본다. 짐을 다 싸놓고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앉아 풍경을 즐긴다. 해안선은 부드럽게 흐르고, 크고 작은 섬은 물고기 머리처럼 동글동글하다. 하염없이 ‘바다멍’을 하다가 오전 9시가 넘어 길을 떠난다.


소사나무가 빽빽한 부드러운 능선이 한동안 이어진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아침 산길을 걷는 것보다 행복한 게 또 있을까. 반송이 커다랗게 자란 마복송 앞에서 숨을 고르고, 내처 조선바위와 용사바위까지 내달았다. 조선바위는 설악산 흔들바위처럼 벼랑에 놓인 둥그런 바위다. 용사바위는 산허리 일대에 우뚝 솟은 바위들로, 창을 든 병사들이 도열한 것 같다.


바위와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고 내려오면 해재에 닿는다. 해재부터 마복사 주차장까지는 임도가 이어진다. 지루하지만 그윽한 숲길을 걸어 마복사 주차장에 닿으면서 백패킹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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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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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마복산 백패킹은 홀로 또는 두 사람 정도의 소규모로 다녀오는 걸 추천한다. 차는 마복사 주차장에 세운다. 산행은 마복사 주차장~정상~암반 야영 사이트~해재~마복사 주차장 순서. 원점 회귀 코스다. 거리는 실측 약 6.6㎞(안내판 6.2㎞), 넉넉하게 4시간쯤 걸린다. 야영 사이트는 두 곳이 적당하다. 정상에서 해재 방향으로 약 200m 지점의 풀밭과 약 500m 지점의 암반이다. 풀밭은 잔디가 깔려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지만, 조망은 없다. 암반은 조망이 탁월하지만, 바닥이 고르지 못해 불편하다. 산에서 식수를 구할 곳이 없다. 하룻밤 자려면 1인 최소 2ℓ의 물이 필요하다. 백패킹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유별난 노력이 필요하다. 화기를 쓰지 않는 비화식 도시락을 준비하고, 모든 쓰레기는 가져와야 한다. 야영 사이트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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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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