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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불편한' 기술, 그래서 한 개에 10억원 대인 이 시계

F1 챔피언 카레이서는 왜 자전거 시계를 만들었나

자전거 매니어 알랭 프로스트 아이디어로

리차드밀과 'RM70-01 투르비용' 제작

한 시즌 달린 거리 합산하는 기술 등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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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시계, 매니어층이 빠져드는 공통의 지점이 있다.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나 운송 수단이 아니라, 수천 개의 부품이 완벽하게 맞물려야 하는 결정체라는 점이다. 그러니 정밀하고 오차 없는 설계는 필수 조건이다. 실제로 종종 두 업계는 서로 영감을 주고받거나 협업하며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다.

프랑스 럭셔리 시계 브랜드 리차드밀(Richard Mille)의 12월 신제품 출시 예고는 그런 면에서는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도 있다. 협업 파트너가 자동차 경주 포뮬러1(F1)에서 4번이나 우승한 알랭 프로스트(62·Alain Prost)라니. 수퍼카에 어울리는 수퍼와치라는 그림이 단박에 그려졌다. 하지만 10월 9일 열린 글로벌 론칭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낸 신제품 'RM70-01 투르비용'은 반전 그 자체였다. 차가 아니라 자전거가 얽혀 있었다. 글(라 카스텔레)=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리차드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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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은 프랑스 마르세유 인근 라 카스텔레의 폴 리카드 서킷. 1970년대 F1 대회가 펼쳐지던 역사적 장소였다. 처음엔 짐작대로 카레이싱이 펼쳐졌다. '속도의 장인'이자 전설의 카레이서인 알랭 프로스트는 레이싱카(Renault RS01)를 몰고 13번 커브가 이어지는 1800m 코스를 굉음을 내며 내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노장 선수는 사이클리스트로 변신해 서킷에 다시 나타났다. 자전거 폐달에 올라선 그의 오른쪽 손목에는 빨간 시계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행사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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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RM70-01 투르비용'은 한마디로 자전거 시계다. 다이얼 위쪽에 마치 번호 자물쇠처럼 다섯 개의 숫자가 나열된 '주행 기록계'가 포인트. 9만9999km까지, 사이클리스트가 한 시즌에 몇 km나 달렸는지를 누적해 보여주는 장치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용두 위쪽 2시 방향으로 있는 누름장치(pusher)를 이용해 주행 기록계의 5개 자릿수 중 하나를 택하고, 10시 방향에 있는 누름장치로 롤러를 한 칸씩 움직이며 숫자를 맞추는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이전 기록에 추가된 주행을 더해 입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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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도 아닌 바에야 이게 뭐 대단한 건가 싶지만 실제 시계에서 구현하기 쉽지 않은 기술이란다. 첫 번째 누름장치로 자릿수를 택할 때 한 번에 한 자리씩 딱딱 끊어 이동시켜야 하고, 두 번째 누름장치 역시 지정된 자릿수의 숫자만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자릿수들이 잠금 상태가 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시계'답게 이번 신제품은 기술뿐만이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자전거에서 영감을 받았다. 시계를 옆에서 보자면 용두는 자전거 바퀴를, 양쪽 누름장치는 폐달을 닮아 있다. 브릿지는 물론 브릿지를 고정하는 볼트 역시 자전거의 체인링과 바퀴살을 연상시킨다. 또 실제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가정 하에 손목이 꺾인 채 시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토너 형태의 케이스를 살짝 휘게 만들었다. 바람의 저항을 고려해 케이스 두께 역시 비스듬하게 깎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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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서와 자전거, 대체 무슨 관계일까. 프로스트는 "워낙 젊을 때부터 달리기부터 크로스컨트리 스키, 골프, 테니스까지 망라하는 운동광이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런 그가 자전거를 처음 접한 건 1992년. F1 경기를 떠나 안식년을 취했고, 당시 담당 물리치료사는 문제가 많은 무릎·등을 고려해 자전거를 권했다. 이후 자전거에 빠져 47세에 은퇴한 후 주당 200km를 달리는 수준급 아마추어 자전거 레이서가 됐다. 실제로 사이클링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번 'RM70-01 투르비용'도 이러한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많은 자전거 선수들이 '한 시즌 내내 대체 얼마나 달린 걸까'를 궁금해 한다"면서 이를 협업 과정에서 담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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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동차만큼이나 자전거 역시 시계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처음 산악 자전거를 봤을 때 서로 다른 소재의 부품이 오차 없이 정밀하게 조합된 자전거 그 자체에 매료됐다"고 했다. 2대의 전기 자전거는 물론 산악용까지 모두 10대의 자전거를 갖고 있는 그는 "어떤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느낌을 다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전거 부품 조정에 신경을 쓴다"며 자전거 매니어로서의 애정과 지식도 과시했다.

행사장에 참석한 리차드밀의 리샤르 밀(66·브랜드 명으로는 리차드밀, 이름은 리샤르 밀로 표기) 회장은 사업가다운 설명을 보탰다. "협업 파트너의 요구를 전적으로 반영하는 리차드밀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서프라이즈 효과를 노렸다"고 말했다. F1 챔피언과 손을 잡았으니 당연히 차와 관련된 물건을 내놓으리라는 세간의 예측에 깨며 '지루한 건 죄'라는 럭셔리 분야에서 선방을 날린 셈이었다. 그는 또 시계 사업을 하면서도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오픈 마인드를 강조했다. "자동차 경주-폴로-테니스-골프에 이어 이제는 사이클링이 주목 받는 스포츠"라면서 "가장 성장할 만한 스포츠·라이프스타일 분야에 시계를 접목하는 게 리차드 밀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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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70-01 투르비용'은 전 세계 한정판으로 수량은 불과 30점. 선주문 후제작 시스템으로 가격은 9억2000만원대 수준(79만9000 스위스 프랑)이다. "다른 제품에 비해 비교적 개발이 빨라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까지 듣고 나면 도통 수량도, 가격도 이해하기 힘들다. 왜 이리도 어렵게 공들여 만들었는데 그렇게 적게 만드는 걸까, 또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 걸까.

리차드밀은 1999년 창립 이후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오고 있다. 그래서 투르비용 하나 만드는 데만 6개월이 넘게 걸리다보니 고객을 무한정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한정판 수량을 결정한다. 가격 역시 개발 비용을 수량으로 나눠 책정하는 식이다. 장기의 개발 기간에다 완성될 때까지 부품의 40%가 버려지다보니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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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소재에 도전하는 것도 리차드밀만의 강점이다. 미우주항공국(NASA)에서 소재를 얻어 만든다거나(RM009), 카본 TPT(카본 필라멘트를 각도를 달리하며 800층으로 쌓아 고온 고압에 응축시킨 소재)를 시계에 적용시키는 식이다.

여느 럭셔리 브랜드와 달리 기술력에 집착하는 데는 르샤르 밀 회장의 개인적 스토리가 있다. 1974년 시계제조업체 핀호르(finhor)에서 수출 담당 매니저로 일하며 업계에 발을 들인 리샤르 밀은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모부생(Mouboussin)에 합류, 시계 설계와 제작에 몸소 관여하기도 했다. 당시 스위스 최고 무브먼트 제조사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투자 비용과 마케팅 전략에 따라 어떤 제품을 만들것인가가 결정되는 사업 구조에 절망하면서 시간과 비용에 신경쓰지 않는 시계를 직접 만들기로 한다. 스스로 클래식카의 엔진을 설계할 정도의 모터 스포츠 매니어인 그는 F1 레이싱을 모티브로 한 RM 001을 처음 선보였다. 놀랍게도 이 제품에 수백 개의 주문이 몰리며 대성공을 거둔다.


그에게 "조만간 리차드밀과 비슷한 브랜드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짧지만 단호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만들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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