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밀담]단 1대 가격이 6870억···B-2 독주 끝낼 '만능 폭격기' 정체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의 밀담
지난달 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전략사령부는 트위터 계정에 그래픽을 하나 올렸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핵전력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전략사령부는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전략(핵)폭격기를 운영하는 사령부다. 사령관인 찰스 리처드 제독은 “우리가 오늘 맞닿고, 그리고 미래에 보게 될 위협은 현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그래픽의 중국과 러시아에서 눈에 띄는 게 있다. 중국의 전략 폭격기를 소개하는 곳에 스텔스 폭격기가 보인다.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노란색은 앞으로 10년 안에 생산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엔 PAK-DA라는 폭격기가 그려졌다. 이 폭격기는 러시아가 스텔스 폭격기로 개발 중이다. 까만색으로 칠해졌다. 까만색은 앞으로 10년 안에 연구개발이 끝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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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엔 노란색 B-21 레이더(Raiderㆍ습격자)가 있다. 중국의 스텔스 폭격기와 같은 노란색이지만, B-21은 러시아ㆍ중국의 경쟁자보다 먼저 세상에 선보일 전망이다. 2020년대 미ㆍ중ㆍ러 세 나라의 스텔스 전략 폭격기 경쟁에서 일단 미국이 훨씬 앞선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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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공 전투에 다른 전투기 지휘까지…만능 폭격기 B-21 레이더
미 공군은 1월 31일 B-21의 그래픽을 공개했다. 엘즈워스(사우스다코타주)ㆍ와이트먼(미주리주), 다이어스(텍사스주) 공군 기지의 격납고에 있는 B-21의 사진을 합성해 만든 것이다. 이 세 기지는 앞으로 B-21을 배치할 곳이다. 엘즈워스 공군 기지에 가장 먼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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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속 B-21은 형님격인 B-2와 흡사하다. B-21의 제조사인 노스럽그루먼은 B-2를 만든 미국의 방산업체인 노스럽이 또 다른 방산업체인 그루먼과 합쳐 만들어진 회사다. 차이점은 물론 있다. B-21이 B-2보다 선이 더 부드럽게 만들어졌다. B-2의 랜딩 기어는 4개의 타이어로 이뤄졌는데, B-21 2개의 타이어로 돼 있다.
미 공군은 B-21에 대한 정보를 좀처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 공군과 노스럽그루먼간 계약 비용까지도 비밀이었다. 액수가 알려지면 B-21의 정보를 추측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대당 가격이 5억 6400만 달러(약 6870억원·2016회계연도 기준)라는 정도만 알려졌다. 그만큼 베일에 싸인 폭격기다.
B-21은 전략 폭격기다. 적의 영토에 신형 장거리 스탠드오프(LRSO) 순항미사일을 떨구는 게 이 폭격기의 임무다. 이 미사일엔 핵탄두가 달려있다. 물론 B-21에 재래식 무기도 탑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폭격기는 공대공 전투 능력이 없다. 그러나 미 공군은 B-21에 자체 방어용으로 첨단 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려고 한다. B-21은 여차하면 전투기로 쓸 수도 있고, 또 스텔스 성능을 이용한 정찰기로 활용하거나, E-2 공중조기경보기나 E-8 조인트스타스처럼 전장에서 다른 전투기를 지휘하는 임무를 맡을 수도 있다.
미 공군은 2018년 B-21의 설계를 끝냈다. B-21 시제기의 첫 비행은 2021년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 기지에서 치를 예정이었다. 여기서 32㎞ 떨어진 팜데일 42번 공장에서 B-21 시제기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미 공군은 B-21의 첫 비행이 늦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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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1의 실전 배치는 2025년부터이며, 미 공군은 2037년까지 100대를 보유할 계획이다. 그런데 미 공군은 145대까지 살 의향이 있다고 한다. B-21로 B-1 랜서와 B-2 스피릿은 2030년대에, B-52 스트래토포트리스는 2050년대에 각각 퇴역시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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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골칫거리…미국 뒤를 바짝 쫓고 있는 H-20
미국의 뒤를 중국이 바짝 쫓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스텔스 전략 폭격기인 H-20을 올해 선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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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0은 그동안 루머로만 떠돌다 2018년부터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의 국영 항공기 제조사인 시안(西安) 항공기공업 공사(XAC)는 2018년 5월 8일 자사 창립 60주년을 맞아 홍보 비디오를 공개했다.
그런데 이 비디오 마지막 장면엔 베일에 덮인 폭격기의 모습이 나온다. 자막엔 영문으로 ‘The Next(다음)…’이라고 적혔다. 일종의 티저 광고다. 2015년 2월 미국의 노스럽그루먼이 NFL 슈퍼볼 광고로 B-21을 홍보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중국의 국영 CCTV는 다큐멘터리에서 “새로운 장거리 전략 폭격기인 H-20의 개발이 큰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중국의 차세대 전략 폭격기의 제식명은 H-20이라는 걸 공식 확인한 셈이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H-20의 모양은 B-2와 비슷했다. 그러나 최종 디자인은 아닌 듯했다.
H-20 역시 정보가 많이 없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취합하면 폭탄 탑재량은 10t 남짓이며, 재급유 없이 항속거리는 8000㎞일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항공산업의 고질적 약점인 엔진 성능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중국은 현재 H-6라는 전략 폭격기를 갖고 있다. 가장 최신형인 H-6N은 지난해 열병식 때 선보였지만, 기본 원형은 옛 소련의 Tu-16 배저다. Tu-16은 1952년 첫 비행을 했다. 똑같이 50년대 만들어졌지만, 미국의 B-52는 폭장량이 30t이 넘는다. 그러나 Tu-16나 H-6는 10t이 채 안 된다. 중국이 차세대 전략 폭격기를 간절히 원한 이유다.
H-20은 CJ-10K와 같은 순항미사일을 최대 4발 실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순항미사일엔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 모두 달 수 있다.
전문가들은 H-20의 개발이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에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일각에선 중국이 첩보활동으로 미국의 정보를 빼 와 H-20 개발에 활용했다는 추정이 있다. 노스럽그루먼의 엔지니어인 노스어 고와디어는 2011년 중국에 정보를 팔아넘긴 혐의로 32년형을 확정받았다. 그런데 그는 B-2 개발에도 참여했다. ‘B-2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B-2의 기술을 중국 정부에 넘겨줬다.
미국이 H-20을 꺼리는 이유가 있다. H-20은 미 본토에 대한 핵 공격을 퍼부을 수 있으며, 동ㆍ남중국해에서 작전하고 있는 미 해군을 제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ㆍ남중국해의 섬을 두고 이웃 나라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섬은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미 해군은 이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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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미 2018년 5월 군사기지화한 남중국해 섬에다 H-6를 배치했다. 앞으로 H-6가 H-20으로 바뀔 경우 미 해군은 스텔스 폭격기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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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주자 러시아의 PAK-DA…극초음속 무기 무장
미ㆍ러ㆍ중 세 나라 가운데 후발주자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차세대 전략 폭격기인 PAK-DA 개발 계획을 오래전부터 세워놨으나 경제난 때문에 진도가 더뎠다. 그러던 러시아가 잰걸음을 걷고 있다. 지난달 26일 러시아의 타스 통신에 따르면 첫 PAK-DA 조립 작업이 시작됐다. 완성은 2021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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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유리 보리소프 국방차관은 “PAK-DA 폭격기가 2018년 대중에 공개된 뒤 2025~2026년 시험비행을 치르고 2028~2029년에 본격 생산할 예정”이라고 2017년 밝혔다. 그러나 PAK-DA 일정은 여러 번 밀렸기 때문에 보리소프 차관의 발언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PAK-DA의 모양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B-21이나 H-20과 같이 전익기(全翼機)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전익기는 항공기 전체가 날개 꼴 모양이라는 뜻이다. 공기역학적으로 불리하지만, 꼬리 날개와 같은 돌출물이 적어 스텔스에는 유리하다. PAK-DA는 아음속 기체로 예상하며, 순항 미사일ㆍ정밀 유도 폭탄ㆍ극초음속 무기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 씨는 “3국이 모두 스텔스 폭격기 개발에 나선 것은 폭격기가 여전히 핵 삼각 축의 중요한 전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일 한 방이면 상대국을 초토화할 수 있는 시대인데도 왜 다들 차세대 전략 폭격기 개발에 목을 맬까.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미사일 시대에도 정밀 유도 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전략 폭격기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며 “가장 큰 약점인 생존성을 스텔스로 보완하면서 전략 폭격기는 21세기에도 활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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