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수술 중 옆 수술실 갔다…사람 죽인 공장식 '유령성형'
"공장식 유령수술을 근절해야 되겠다고 법제이사 시절 약속드렸습니다" 지난 5일 오후 2시50분 서울고등법원 재판정에 피고인 자격으로 선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30여분간 자신을 변론했다. 성형외과의 공장식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그는 1심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고, 검찰의 항소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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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전문의로 천안에서 병원을 운영해온 김 전 이사는 지난 2013년 발생한 그랜드성형외과 여고생 사망사고 이후 성형외과에 만연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령수술’과 싸워온 인물이다. 지난달 6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형수술을 받다 사망한 이들의 숫자를 알려달라"는 청원의 작성자이기도 하다. 그는 "성형 사망 사건들이 허술하면서도 간단하게 처리됐다"며 "성형 뇌사, 성형 사망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를 보건복지부와 법무부가 파악해달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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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뿐만이 아니었다”
실제 공장식 유령성형의 피해 사례가 최근 부각되고 있다.
아들을 성형수술 사고로 잃은 이나금(60)씨는 "처음 성형외과와 싸우기 시작했을 때는 우리 아들만 있는 줄 알았다"면서 "성형 피해자는 생각보다 더 많다"고 했다. 이씨는 "공장식 성형수술 자체도 문제지만 성형외과만 지나치게 보호하는 법이 문제"라며 "소송을 위해 내가 직접 CCTV 영상 등 증거를 모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잘못된 성형수술로 피해를 당하더라도 공론화시킬 수가 없다"고 했다.
대학생이었던 이씨의 아들 권대희씨는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49일 뒤 사망했다. 경찰 수사 결과 권씨의 집도의인 원장 장모씨와 신입 의사는 수술을 끝까지 마치지 않고 수술실을 밖으로 나갔다. 옆방에 누워있던 다른 환자 3명의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아들의 사망 경위를 밝히기 위해 5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
고 권대희사건 국민탄원서.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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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성형 문제 알리기 위해 소송”
지난 3월에는 홍콩 재벌 3세의 남편이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홍콩 의류 재벌인 로팅퐁(羅定邦)의 손녀인 보니 에비타 로(35)는 지난 1월 강남의 한 병원에서 지방흡입술을 받다 사망했다. 당시 남편 대니 치는 "사고 후 아내의 정확한 사망 경위도 알 수 없었다"며 "이 문제에 정부가 나서지 않는 것은 산업 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한국 법원에 1억 원 손해배상을 제기하며 "돈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성형산업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알리고 싶다"고 했다.
대니 치는 민사소송 제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소송을 취하했다. 다만 형사 고소 건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수사가 몇 달 더 걸린다"면서 "성형 사망 사건은 수사에 1년이 소요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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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막는 '외부발설 금지 조항'
최근 10년간 언론에 공개된 성형수술로 인한 사망자는 최소 30명이다. 김 전 이사는 성형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로 성형외과와 피해자 가족이 작성하는 합의서의 '외부발설 금지 조항'을 꼽았다. 사고 발생 시 병원은 3억~4억원의 합의금을 주며 '사망사고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합의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는다. 김 전 이사에 따르면 일부 병원은 합의 불이행 시 합의금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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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외부발설 금지 조항 자체는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 의사 출신 변호사는 "개인 간 합의한 조항이고, 거액의 합의금은 비밀 유지에 대한 대가도 포함돼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피해자가 원한다면 합의를 파기하고 해당 사실을 발설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이런 경우는 의료법 보다는 일반적인 손해배상 소송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불공정성 여부는 법원에서 따져볼 수 있겠지만 조항 자체는 위법성이 없다"고 말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성형의사회) 관계자는 "외부발설 금지 조항은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 조항이 없다면 합의금이 시세처럼 떠돌 수 있고 최선을 다하는 병원이라도 한 번의 사고로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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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사망자 수, "집계 불가능"
현재 성형수술실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공식 집계를 진행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성형의사회는 "성형 사망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성형의사회 관계자는 "미가입 의사들이 많은 의사회 차원에서는 집계가 불가능하다"면서도 "사망사고가 났을 때 보건기관에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기면 보건소에서 취합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는 "해당 청원이 20만이 되지 않아 공식 입장이 없으며 관련된 논의도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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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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