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경조사비 얼마 냅니까” 친구 50명에게 물었다
더오래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103)
돈의 액수가 축하와 위로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사진 flickr] |
사람들을 만나기 힘든 코로나 시대, 아주 오랜만에 선배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다들 금융기관이나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터라 안정된 직장에서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맛난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얼마 남지 않은 은퇴와 은퇴 이후에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었다.
“은퇴 이후에는 반드시 딴 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은퇴 이후에 사회생활이 마님 눈치 보느라 엄청 힘들어진다.”
“그런 이야기는 미리 했어야지, 이제 조금씩 모아서 딴 주머니 차기에는 이미 늦었다.”
“은퇴 이후를 대비해서 자격증 공부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인데. 후배들 보니 나이가 들어버렸더라,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다양한 넋두리들을 늘어놓다가 ‘경조사비’에 대한 질문을 해 보았다.
“형님들, 은퇴하고 나면 요즘처럼 경조사비 내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1번 죽어도 평소에 하던 대로 한다, 2번 금액을 줄여서라도 경조사비 하는 게 좋다, 3번 금액을 줄여서 하느니 차라리 그냥 지나치는 게 좋다.”
선배들과 나눈 질문을 내가 사용하고 있는 SNS를 통해 전달해 친구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50명 정도의 답을 들여다보면 가장 많은 응답은 ‘2번, 금액을 낮추더라도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라는 것이었다. 2번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 이유로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비용을 지출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는 류의 답변이 가장 많았다. 현실적으로 경조사에 축하와 위로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고 소득이 줄어 힘든 상황에서 현직에 있을 때처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두 가지 현실에 당연히 타협하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실제 경험해 보니 적은 돈이라도 보내 준 은퇴한 선배의 마음이 느껴져 감사하더라.’ ‘작은 돈을 했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라도 1번을 유지하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더구나 내 경조사에 보낸 금액을 그대로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2번을 택한 사람들도 이미 받은 경조사비가 있다면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3번을 택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3번을 염두에 두고 고민을 하겠지만 실행하기는 힘든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SNS에서 조사해보니 은퇴여부나 성별 등 개인이 처한 여러 상황에 따라 경조사 금액도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사진 pxhere] |
선배들과 대화를 마치고 친구들에게 물으면서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이 1번을 택하고 어떤 사람들이 2번을 택하는지, 그리고 혹시 3번을 택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등등. 나는 5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안정된 직장생활보다는 세일즈와 사업을 하면서 살아온 기간이 많았고 2008년 금융위기와 사기를 당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1번, 2번, 3번을 다 경험했다. 은퇴 이후 소득의 단절이나 지속적인 소득 감소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지만, 일시적으로 지독한 결핍 속에서 실제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한 것 같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었고 그것은 때로는 상처로, 때로는 다시 만날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응답자들을 남자와 여자,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자영업이나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 젊은 사람과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사람으로 구분해 살펴보면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1번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었고, 상대적으로 남성이 많았다.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경조사가 있었고, 받은 돈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그만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이나 소득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눈 선배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그들도 50대 중반을 넘었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해와 당연히 1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돈을 줄여 한다는 것에 ‘안 하면 안 하지 그건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는 1번이었는데 이제 2번으로 바꿔야겠지.” 존경하는 멋진 선배님이 SNS에 남긴 멘트가 마음에 계속 남는다. 후배를 잘 챙기고 좋은 회사에서 임원으로 생활했고, 지금도 다양한 일을 하면서 모임에도 자주 참여하고 젊게 사는 선배라 나온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경조사비를 얼마 내야 하느냐’는 꽤 오래전에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애정남’이라는 개그 코너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주고받은 과거가 있는지, 관계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주고받는 것이 경조사비다. 이것이 애매한 이유는 사회적 원칙이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나의 기준과 나의 원칙밖에 없는데, 이 행위는 지극히 상호적이고 사회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변화가 필요가 시기가 된 것 같다. ‘허례허식을 버리자, 경조사 문화는 상부상조의 의미가 사라지고 부담만 남은 것 같다’는 주장이 아니라 은퇴 이후 30~40년을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유지되기 불가능한 사회적 습관인 것 같다. 사회생활을 잘해온 사람일수록, 좋은 직장에서 좋은 위치에 있던 사람일수록 사회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관습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1번, 현실은 2번, 마음은 3번’
이 답이 어쩌면 우리 보통사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불일치를 벗어버리는 것이 어떨까? 많은 사람이 받았던 금액만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와 그 사람은 객관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훨씬 더 많은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 사람일 수 있고,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상황일 수 있다. 더 많이 받고 더 적게 내는 것이 어렵다면 적게 받으면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과 다르게 적게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돈의 액수가 축하와 위로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생각에서 이제 벗어나면 좋을 것 같고 벗어나야 하는 사회적인 환경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