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인간혁명]일루미나티의 복수, 바티칸 살인의 비밀
윤석만의 인간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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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은 빛으로 소멸된다. 과학의 제단에 너희를 제물로 바쳐 교회를 무너뜨릴 것이다.”
영화 『천사와 악마』는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다빈치코드』에서 『인페르노』, 『오리진』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속 세계관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근간으로 삼고 있죠. 신의 뜻으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해온 중세 교리와 이를 과학의 힘으로 벗어나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대결 구도로 내세웁니다.
『천사와 악마』도 마찬가집니다. 영화의 처음은 교황의 서거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추기경들이 모여 ‘콘클라베’를 벌이죠. 그러나 새 교황을 뽑는 회의가 진행되는 사이 가톨릭의 심장인 바티칸에선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유력한 교황 후보 4명이 납치되고 반가톨릭단체의 상징인 앰비그램(Ambigram, 거꾸로 보아도 같은 단어로 읽히는 글자)이 나타난 거였죠.
한편, 비슷한 시각 세계 최대의 과학연구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선 우주의 탄생을 재현하는 빅뱅 실험이 성공합니다. 이를 통해 강력한 에너지원인 ‘반물질(antimatter)’을 개발하게 된 거죠. 그런데 실험이 끝난 직후 책임 연구자가 피살되고 반물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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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비밀 품은 반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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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물질은 양성자·전자 등 소립자에 반하는 물질을 말합니다. 기존의 물질세계와 반대로 전자가 +전하를 갖거나 양성자가 –전하를 갖고 있죠. 반물질이 우리가 사는 현실 속의 물질과 접촉하면 질량이 모두 에너지로 전환돼 거대한 폭발력이 생깁니다. 반물질 1g은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보다 큰 피해를 줄 만큼 위력이 셉니다.
영화는 납치된 추기경들과 도난당한 반물질을 찾아내려는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 박사의 활약을 그렸습니다. 랭던은 하버드대 교수로 댄 브라운의 세계관에서 늘 해결사 역할을 합니다. 그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중 교황이 자연사한 게 아니라 암살된 거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 배후에 ‘일루미나티(Illuminati)’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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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나티는 ‘빛나는, 찬란한’이란 뜻으로 ‘계몽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조직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역사에서는 주로 18세기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창시된 광명회를 원조로 봅니다. 철학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가 1776년 만든 광명회는 인간 이성을 중시하며 왕정과 교회가 중심이 된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사회지도층은 이 단체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비밀결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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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러나 예술적 상상력은 이 작품 속에서 일루미나티의 원조로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를 소환해 냅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유명한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해 종교재판을 받았죠. 1633년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판결 받은 그는 1642년까지 구금돼 있다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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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갈릴레이는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주장하는데 할애한 만큼 천동설에 대해서도 설명하라고 강압적인 요구를 받았다고 합니다. (김희준 서울대 화학과 교수, 2008. “과학과 종교의 갈등” 지식의 지평<4>: 108-123) 하지만 갈릴레이가 이를 거부하자 교황청은 그를 이단으로 심판했습니다.
사실 지동설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갈릴레이보다 100년 앞서 먼저 주장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4~1543)입니다. 그는 지동설에 대해 평생을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핍박을 두려워했던 그는 지동설을 정리한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임종 직전에야 출간했습니다. 죽기 전 서문에서 “나의 연구에 대한 그들의 무모한 비판을 경멸한다”고 썼죠.
그래도 코페르니쿠스는 교회로부터 갈릴레이와 같은 큰 화를 당하진 않았습니다. 당시 지동설은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큰 설득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핍박의 수위가 그리 높진 않았고요.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금서에 오른 것도 그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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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의 정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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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동설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계속 됐고, 이를 믿는 대중들도 점차 많아졌습니다. 교회가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17세기의 마지막 해인 1600년엔 ‘브루노의 정죄(La purga de Bruno)’ 사건이 발생합니다. 라틴어로 ‘purgā’는 죄를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숙청’을 의미합니다. 영어 표현 ‘purge’가 여기서 유래했죠.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자이자 과학자였던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지구의 공전은 물론 자전까지 주장했습니다. 태양처럼 스스로 빛나며 공전의 중심이 되는 항성과 항성 주위를 돌며 자전하는 행성을 구분했죠. 또 당시 통념과는 반대로 우주가 무한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매우 혁신적이었기에 가톨릭교회는 그를 8년이나 가둬 두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재판을 통해 화형에 처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를 일루미나티 소속 과학자들이 교회에 의해 십자가 낙인이 찍혀 공개처형 당한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 때부터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를 거부하는 본격적인 비밀결사 활동이 시작됐다는 거죠. 영화에선 여기에 앙심을 품은 일루미나티가 교회와 계속 갈등을 벌여왔다고 그려놨습니다. 급기야 교황을 암살하고 반물질을 훔쳐 테러를 일으킨다고 묘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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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의 오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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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서도 종교와 과학의 싸움은 중세 이후 끈질기게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종교는 점차 그 힘을 잃어갑니다. 갈릴레이가 죽은 지 115년 만에 그가 쓴 『두 가지 세계관의 대화』가 가톨릭 금서 목록에서 해제됐고, 1992년 당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이 그를 박해한 것에 대해 사죄했습니다.
김희준 서울대 교수는 “1999년에는 교황이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을 방문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며 “현대 사회에서 종교계나 일반 대중이나 지동설의 타당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인류의 기원에 관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극단적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갈등이 쉽게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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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 동안 종교와 과학이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존재의 본질을 위협하는 ‘모순율’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유럽에서 가톨릭은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 믿었고, 갈릴레이와 브루노는 지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천동설은 곧 신의 뜻이었기에, 정반대 주장을 하는 과학은 불경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던 거였죠.
용어사전 > 모순율
동일율, 배중률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논리학의 3대 원리. A라는 명제가 있을 때 ‘A는 A가 아니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A는 A가 아닐 수 없다’는 설명은 늘 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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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믿느냐, 믿고 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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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신념과 실증의 차이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종교는 ‘믿고 보는 것’이며, 과학은 ‘보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신념을 재판대에 올리고, 과학은 실증적 근거로 판결을 내립니다. 칼 포퍼는 과학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언제든지 새로운 증거에 의해 부정될 수 있는 이론이어야만 과학”이라는 게 포퍼의 설명이죠. 절대불변의 진리는 종교적 신념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1600년 간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왜 과학이 아닌지 명확해 집니다. 천동설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했을 때 화성과 금성의 공전이 때때로 역행한다는 걸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전궤도 안의 또 다른 공전궤도인 주전원(epicycle)이란 개념을 도입했죠.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는 불변의 진리를 전제해 놓고 거기에 각종 이론을 끼워 맞춘 겁니다. 즉, 반대되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언제든 그 이론이 깨질 수 있다는 ‘반증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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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갈릴레이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과 위성의 움직임을 관측하면서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실증을 이끌어 냈습니다. 물론 종교적 신념이 투철한 교회와 당시 과학자로 불렸던 진리의 맹목적 추종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저항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과학은 설득력 있는 새로운 실증이 나타나면 진리라고 믿어 왔던 이론들조차 쉽게 폐기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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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이성의 핵심은 반증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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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반증가능성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혁신의 열쇠가 됐고, 과학은 인류 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반증가능성이 없다면 새로운 시도도, 발전의 계기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과거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풍요로운 세상을 살게 됐죠.
그런데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지금의 시대가 브루노와 갈릴레이를 탄압했던 16~17세기보다 성숙하고 지혜로운가 하는 질문입니다. 맹목적 신념과 독선적 진리로 이성과 합리가 마비돼 있던 당시 사람들과 비교해 과연 우리가 더 나은가 하는 거죠.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총량은 그들보다 훨씬 많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우린 여전히 독선과 맹목으로 진리를 추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 악용하는 것은 주로 정치인이거나 그 언저리를 맴도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SNS에서 대중적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정치 ‘셀럽’들일수록 그렇습니다. 논란이 될 만한 발언으로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다른 생각’을 ‘틀린 사실’로 규정합니다. 그러면 맹목적 추종자들이 나서 ‘정의’의 이름으로 상대를 심판하죠. 진리의 독선은 폭력으로 쉽게 전이돼 신념의 제단 앞에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을 제물로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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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악보다 무서운 건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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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요? 애초 자신을 선과 정의의 편이라고 주장했던 주동자들입니다. 이들은 선을 가장해(위선) 대중을 홀리며, 독선적 주장으로 시민들의 합리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맹신하게 만듭니다. 독선은 브루노를 화형 시킨 과거의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비판과 검증의 펜 끝이 무뎌진 이성을 사이비 종교보다도 못한 거짓 신념으로 만듭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과 함께, 또는 저보다 먼저 타인을 죽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때 독선의 희생양은 주동자보다는 추종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과연 종교의 시대일까요, 과학의 시대일까요? 과학의 시대라면 우리는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일까요?
다음 주엔 ‘과학의 종교화’에 대해 다뤄봅니다.
■ 윤석만 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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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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