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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퇴 후 공부, 이틀에 한 번 잤다"…300만 본 의대생맘 찐후기

중앙일보

'의대생 엄마' 이도원씨는 한 번의 재수, 두 번의 편입 끝에 의사 꿈을 목전에 앞뒀다. 출산 후 의대 공부와 육아를 병행한 이씨는 "이제는 너무나 커 보였던 꿈도 못 이룰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의사가 되고 싶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내신 3등급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성적으론 의대에 못 가니 어떻게든 돌아서라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재수와 두 번의 편입 끝에 의대에 입학했다. 공부만 해도 힘든데 아이를 키우면서 의대를 다녔다. 이제 국가고시만 합격하면 의사가 되는 ‘의대생 엄마’ 이도원(30) 씨를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무리 공부해도 만년 3등급

이 씨가 의사의 꿈을 가진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아빠가 17살 대학생 시절 시위에서 한쪽 눈에 맞은 최루탄 파편으로 흐릿해진 ‘도깨비 눈’이 녹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으면서다. “의사가 돼서 아빠 눈을 고쳐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백일장 상은 휩쓸었는데 성적우수상은 한 번도 못 탔다”던 그가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한 이유다. 고등학교 땐 식사시간 빼고 공부만 했지만, 만년 3등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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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씨는 의대 학사편입을 준비하려고 제약회사 정규직이 된 지 일주일 만에 퇴사했다. 퇴직 전 마이너스통장을 만든 덕분에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의대는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에서 의대 편입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입사했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3개월 인턴 생활이 끝나고 정직원으로 전환된 지 일주일 만에 퇴사했다. 의대 학사편입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4개월. 하루 4시간씩 자면서 “공부하다 쓰러져서 자고 일어나면 또 공부한” 끝에 2017년 12월 인하대 의대 합격증을 받았다.


이씨는 그런데 “미친 듯이 공부만 했던 그 4개월이 좋았다”고 했다. “편입도 공부니까 돈이 들잖아요. 우리 집은 학비를 대줄 형편이 아니었어요. 대학교 때 ‘난 어차피 느린 아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휴학하고 돈 벌면서 공부했죠. 1년간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회사 퇴직하기 전엔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거든요. 드디어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게 돼서 좋았죠.”


의대 합격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씨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 평범한 머리를 가진 내가 그 수업을 따라간다는 자체가 공포였다”고 했다. 그러다 이곳에서 만난 동기와 결혼하자마자 임신했고, 출산 100일 만에 복학하니 아르바이트가 아닌 육아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틀에 한 번 잤다”고 했다.

이틀에 한 번 잠…첫 영상 조회 수 3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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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씨는 의대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2년 가까이 이틀에 한 번 자는 생활을 하다 마음 속 응어리를 풀려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첫 영상으로 구독자 13만, 조회 수 300만을 기록했다. 강정현 기자

학교 수업을 마친 후 그의 저녁 일과는 여느 부부와 다르지 않았다. 한 명이 육아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집안일을 하고 급하면 둘 중 한 명은 나가서 공부하는 식이다. 이씨는 육퇴(육아퇴근) 후 하루는 밤을 꼬박 새워 공부하고 다음 날 밤에 잤다. 2년 가까이 그런 생활이 이어지자 답답함이 밀려왔다. 같은 처지인 남편과는 마음 놓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야기를 하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유튜브를 켰다. 처음 올린 영상이 13만 구독자와 3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방송에 출연하고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책까지 출간하며 작가가 됐다. 악플로 받은 상처도 컸지만, 받은 위로가 더 컸다. “나에게 ‘힘내’가 아니라, ‘당신이 힘든 건 너무 당연하다. 그 힘든 걸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데 큰 위로가 됐어요.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던 내 삶을 누군가는 ‘당신을 보니 용기가 생긴다’면서 희망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고등학교 내내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대학에 와서는 명문대생들을 부러워하면서 열등감에 시달렸다”는 이씨는 의사라는 꿈 실현을 목전에 두고 이제 또 다른 꿈을 갖게 됐다. ‘미혼모 학교’ 설립이다. “아이를 키우며 공부하다 보니 자립과 양육의 어려움에 부닥친 미혼모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면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보니 이제 너무 커 보였던 꿈도 못 이룰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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