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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보다 한국인 판친다는데…'도떼기시장' 그 섬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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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의 인기 명소이자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마나가하 섬을 지난 1월 찾았다. 섬을 찾는 여행자 대부분이 한국인이었지만, 인파로 붐비는 정도는 아니었다.

93%. 지난해 사이판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 7만8918명 중 한국인이 무려 7만3613명에 달했다. 사이판 인구(약 4만3000명)보다도 많다. 한국인의 사이판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다. 코로나 전에는 한국과 중국이 시장을 양분했지만, 지금은 사이판 관광 시장을 한국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단순히 가까워서만도 아니고, 빼어난 자연환경 때문만도 아닐 테다. 사이판 현지에서 만난 글로리아 카바나 북마리아나 관광청 부위원장은 “사실상 사이판 여행자 99%가 한국인”이라면서 “모든 관광 시장이 한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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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출국 수속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한국~사이판 항공편이 대폭 줄면서 좌석 경쟁이 치열해졌다.

의외의 여유와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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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행객이 마나가하 섬 한편에서 기념사진을 담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관광객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해변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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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하 섬의 인기 액티비티의 패러세일링. 모트보트 위 낙하산에 매달려 쪽빛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재미가 크다.

1월 11일 밤 비행기를 타고 사이판으로 날아갔다. 인천에서 출국 수속하는 데 2시간을 보냈고, 비행기는 한국인으로 꽉꽉 찼었다. 여행 수요보다 항공편이 턱없이 부족해 생긴 문제였다. 현재 한국과 사이판을 오가는 항공편은 주 14편 수준이다. 2019년만 해도 한국 노선만 주 49편에 달했다.


막상 도착하니 사이판은 다른 세상처럼 한가했다. 사이판 현지 여행사와 한인 식당에서 “1년 반 이상 손님을 못 받았다” “지금 규모로는 힘들다”는 푸념을 들었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득이 컸다. 어디를 가든 대기 시간 없이 액티비티를 즐겼고, 주변을 독차지한 채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여행에도 철이 있다면 사이판은 지금이 제철이다.


사이판에서 액티비티 천국으로 유명한 ‘마나가하 섬’의 분위기도 그랬다. 소위 도떼기시장 급으로 인파가 몰렸던 이곳도 부두 앞 해변만 북적일 뿐이었다. 낙하산을 타고 패러세일링 하며 내려다본 마나가하 섬은 그저 무인도처럼 고요하고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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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액티비티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ATV도 인기다. 타포차우 산 중턱의 에버그린힐에 오르면 남부 해안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사이판은 제주도의 10분의 1 크기다. 작고 심심할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화끈한 놀 거리도 있었다. 북부 지역에서는 ‘만세 절벽’ ‘자살 절벽’ 같은 이름난 유적지보다는 ‘그로토’라는 이름이 수중 동굴이 흥미로웠다. 깎아지른 석회암 절벽 아래 수심 20m가량의 바닷물이 차 있는데, 이곳에서 대략 50명이 한꺼번에 다이빙하고 스노클링을 즐겼다. 


동굴 천장에 날카로운 종유석이 촘촘히 달린 꼴이 꼭 악마가 입을 쫙 벌리고 형상이었다. ‘전 세계 다이버의 성지’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았다. 사이판 최고봉인 타포차우산(474m)에도 올랐다. 두 발이 아니라, 사륜 오토바이(ATV)를 몰고 굉음을 내며 언덕에 올랐다. 금세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됐지만, 남부 해안을 굽어보며 질주하는 묘미가 굉장했다.

사이판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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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사이판 최상위 호텔로 통하는 켄싱턴호텔, 워터파크를 품은 PIC사이판, 풀파티로 뜨고 있는 코럴 오션 리조트. 사이판 여행자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세 호텔·리조트가 지난해 자유이용권 개념의 '사이판 플렉스' 상품을 내놨다. 전용 패스포트들 들고 여행하듯 세 호텔·리조트의 돌며 자유롭게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사이판 여행은 가족 단위 관광객이 절대다수다. 대부분이 해변을 낀 리조트에서 3일 이상 묵으며, 문자 그대로 ‘편안히 쉬며 몸과 마음을 보양’하는 휴양(休養)에 집중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사이판의 휴양 문화는 사뭇 달라졌다. 요약하자면 더 럭셔리하고 젊어졌다. 코로나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증발한 상황에서, 자연히 한국인 여행자의 높아진 안목과 취향이 기준이 됐다.


이를테면 35년 역사의 골프리조트 ‘코럴 오션리조트’는 코로나 기간 낡은 시설을 허물고, 비치 클럽 콘셉트의 야외 수영장과 인스타그래머블한 조형물을 들였다. 덕분에 최근 한국에는 골프장보다 풀 파티로 입소문이 났단다. 박은평 리조트 총지배인은 “지난해 신규 고객 중 20·30세대가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귀띔했다.


같은 이랜드 자회사인 켄싱턴호텔, PIC사이판과 연계한 일명 ‘사이판 플렉스’도 지난해 9월 선보여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세 호텔·리조트의 부대 시설을 맘껏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자유 이용권인데, 국내 호캉스족의 호응이 크단다. PIC사이판은 대형 워터파크를 품고 있고, 켄싱턴호텔은 최근 국내 특급호텔 출신 셰프를 대거 영입하며 미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로의 특장점이 다르다 보니 취향대로 선택해 즐기는 재미가 크다.


이곳에서 머문 하루의 일과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호텔에서 갖은 회 요리와 애프터눈티를 즐긴 다음, PIC로 넘어와 원주민 공연을 보고, 리조트에 돌아와 풀 파티를 즐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리조트와 호텔에만 머물렀지만, 여느 여행 못지않게 화려하고 역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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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호텔 사이판 뷔페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생선회.

■ 여행정보


사이판은 비행기로 대략 4시간 30분 거리다. 코로나 관련 방역 절차는 현재 대부분 해제된 상태로, 영문 백신증명서만 있으면 별도의 검사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 실내외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섬이 작아 반나절이면 섬 일주 투어도 가능하다. ‘사이판 플렉스’를 이용하려면 켄싱턴호텔, PIC 리조트, 코럴 오션 리조트 중 한 곳에서 3박(하루 3식 포함) 이상 머무르면 된다. 무료 셔틀버스가 수시로 세 호텔‧리조트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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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성지로 통하는 사이판 북부의 그로토 수중 동굴. 햇빛에 따라 물빛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사이판=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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