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은 롯데월드, 인재상은 귀여운 사람... 스물 한살 기업가가 꼽는 이 시대의 역량 세 가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6살 때부터 피아노만 쳤다. 콩쿠르에서 늘 2등만 해서 깨달았다. 재능이 없구나. 피아노를 접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한국 교육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중국으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결심했다. 공부보다 사업을 해야겠다.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열 일곱에 첫 사업인 온라인 의류 쇼핑몰을 시작했다. 3개월만에 접었다.
기회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재미삼아 운영한 페이스북의 피아노 동호회가 갈수록 커졌다. 피아노 치는 동영상을 가끔 올리자 “나도 피아노를 친다”며 자신의 영상을 보내는 이들이 생겼다. 회원이 30만명을 넘어가며 여러 사업 제안이 들어왔다.
정인서 마피아컴퍼니 대표 [사진 폴인] |
열여덟, 동호회를 통해 만난 대학생 형 둘과 회사를 차렸다. 법인 자본금은 1만원. 미성년자라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렇게 연 회사는 3년 만에 150개국에서 200만 회원을 확보했다.
정인서 마피아(마음만은피아니스트)컴퍼니 대표의 이야기다. 정 대표는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이 31일 개최하는 10월의 폴인스튜디오 〈5년 뒤, 누가 변화를 이끌 것인가〉에 연사로 선다.
마피아컴퍼니의 핵심 사업 모델은 악보 판매다. 피아노 연주자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음악을 연주한 동영상과 함께 악보를 판매할 수 있다. “누가 살까 싶기도 했는데 한달에 악보 판매로만 500만원 이상 벌어들이는 연주자가 꽤 된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마피아는 이미 글로벌 서비스다. 한국 회원보다 글로벌 회원이 더 많다. “웹페이지를 운영하는데 자꾸 해외 접속이 들어오는 거에요. 알고 보니 악보는 언어의 장벽이 없는 콘텐츠였던 거죠.” 마이뮤직시트(mymusicsheet.com)라는 글로벌 서비스를 따로 만들었다. K팝의 인기 덕분에 사용자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회원이 늘면서 피아노 뿐 아니라 기타ㆍ드럼ㆍ바이올린 등 다양한 음악 악보를 다루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처음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A : 부모님께서 좀 자유로운 편이셨어요. 늘 ‘대학을 안 가도 된다’고 하시긴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제가 고등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땐 충격을 받으셨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벌여봤어요. 예를 들면 중국은 스마트폰 방수팩이 하나에 150원 정도거든요. 그걸 들여와서 워터파크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5000원에 팔았어요.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니 결국 허락해주셨어요.
Q : 사업에 대해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데, 회사는 너무 잘 운영하고 있어요.
A : 전 별다른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구요,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아요. 우리 팀은 모두 성격적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할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저런 수익화 제안들이 생기거든요. 대표적인 게 배너 광고죠. 저희도 광고 문의를 많이 받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광고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것 때문에 회원들이 저희를 더 좋아해주신다고 느껴요.
Q : 요즘 기업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을 못 배워서 난리거든요. 이런 시대에 50만 회원을 확보한 걸 보면 확실히 특별한 역량이 있지 않을까요.
A : 덕업일치랄까요. 이게 일이라고 생각하면 의무감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도 피아노를 너무 좋아하고 음악 듣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게임 하는 것보다 음악 듣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하루에 100통씩 피아노 연주 영상이 들어올 때도 싫지가 않았어요. 밤을 새워 보고 좋은 걸 골라서 계정에 올리는 게 즐거웠어요.
Q : 좋아하는 일을 하다 사업까지 성공시켰다는 것, 누구나 부러워할 것 같아요.
A : 저나 주위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건데, 전 진짜 안 어렵다고 말하고 싶어요.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가볍게 시작해서 사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차이는, 처음에 가볍게라도 시작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저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평균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전 누구든지 시도를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 회사 직원이 벌써 20명으로 늘었죠. 대표로서 채용할 때 어떤 사람을 선호하나요.
A : 음… 귀여운 사람? (웃음) 일은 당연히 잘하는 사람이 좋긴 한데요, 저희는 사실 젊은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도 더 젊은 스타트업이거든요. 직원 평균 나이도 24살 밖에 안되고. 늘 붙어서 몰입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끈끈하게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저희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함께 신이 나서 일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는 고객 센터가 따로 없어요. 누구든 전화벨이 울리면 가서 받고 상냥하게 응대하거든요. 회사가 워크숍을 가면 고기집 가거나 칠판에 뭐 써서 회의한다고 하던데, 저희는 롯데월드로 가요.(웃음) 바이킹 타는 거죠. 그냥 재미있게 일하면서 성과만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Q : 새로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A : 네. 악보 거래를 조금 더 투명하고 정직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 해서, 그리고 저희 철학을 음악 산업의 다른 영역으로도 충분히 확장할 수 있어서 뮤지카(Muzika)라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미 저희 사이트들은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계급이 나뉘거든요. 활동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블록체인의 매력인 것 같아요. 1년 넘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마피아컴퍼니 기반을 활용해 더 잘할 수 있어서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인서 대표는 31일 열리는 폴인스튜디오 〈5년 뒤, 누가 변화를 이끌 것인가〉에서 〈마음만은피아니스트, 왕십리에서 150개국으로〉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자세히 들려줄 계획이다.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이 서울 명동 위스테이 모델하우스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장영화 oeclab 대표, 구글코리아의 민혜경 HR 담당 총괄, 라인플러스 주정환 HR 리드, 박세헌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HR 담당수석과 최근 튜터링을 성공적으로 합병시킨 최경희 마켓디자이너스 최고문화책임자, 세개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일구며 직장 생활과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백영선 카카오 기획자가 참석한다. 티켓은 폴인 홈페이지에서 구입할 수 있다.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