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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밝힌 임세원의 희생..."낙인 안된다"는 유가족의 품격

병원 진료실 비극 47세 의사

환자를 대하는 진정성 남달라

조문객 20%가 환자와 그 가족들


유가족은 남 탓 않고 환자들 걱정

“정신적 고통 겪는 사람 낙인 안 돼”


진료 받은 환자, 빈소에서 편지

“시든 내 마음에 희망 주신 분”


진료 끝나면 일어나 90도 인사

자살예방프로그램 만들어 보급

유가족, 조의금 기부하기로

중앙일보

고(故) 임세원 교수 . [그림=의사 문준]

기자는 그를 모른다. 혹시 한두 번 봤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 전화번호부를 검색했지만 ‘임세원’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발인 전날인 3일 저녁 8시30분쯤 빈소를 찾았다. 해맑은 미소가 엷게 번지는 영정이었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데 평소 친분이 있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기자를 유족에게 간단하게 소개했다. 무슨 말을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요…”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두 아들(고2, 초5)이 서 있었으면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의 빈소는 동료들로 꽉 찼다. 자정 무렵 빈소를 나올 때까지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임세원 교수는 1971년생이다. 47년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은 묵직하다. 삶이 묵직했으니까 당연할지 모른다. 유가족도 임 교수 못지않게 묵직한 모습을 보였다. 절제된 슬픔의 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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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동생 임세희씨는 유족을 대표해 “가족의 자랑이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을 보장하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의료진 안전과 환자 치료를 앞세웠다.

기자가 세 시간가량 빈소에 머물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병원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못 살렸을까. 내로라하는 대학병원인데.” 어떤 정신과 의사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말했다. 한국의 후진적 정신건강 진료 시스템이 낱낱이 드러났다는 의미였다. 유족 입장에서 병원과 정부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마디도 그러질 않았다. 환자와 의료진을 걱정했고 제도 보완을 촉구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족은 발인을 하루 앞둔 3일 오전 놀랍게도 조의금 기부를 결정했다. 절반은 병원의 의료진 안전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절반은 임 교수가 평소 매진한 자살예방사업과 우울증 개선 사업에 써 달라고 했다. 그날 밤 빈소에서 기자는 임 교수를 잘 아는 동료에게 물었다. “아이가 어떻게 되나요?” 그는 “고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고 답했다.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백종우 교수는 “유족에게 ‘그렇게 안 해도 된다. 기부금은 우리가 모으겠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


백 교수는 4일 장지에서 마지막 모습을 알려줬다. 고인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 세원이 바르게 살아줘서 고마워.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여동생 임세희씨는 “오빠는 효자였다”며 “바쁜 와중에도 2주마다 꼭 부모님과 식사를 했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곶감과 굴비를 택배로 보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6일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 우리 함께 살아보자던 고인의 뜻이 드러나길 바란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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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교수는 그리 말수가 많거나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를 향한 진정성만은 남달랐다. 오강섭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강북삼성병원 교수)은 “조문객의 5분의 1이 환자와 환자 가족이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일주일 입원 기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지만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기였습니다. 운 좋게 귀중한 조언을 들어 감사했는데, 이렇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보내게 돼 통탄할 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들어 가던 제 마음이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은 ‘진정한 선생님’이었습니다. 말씀 잘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임 교수에게 진료받은 환자가 빈소에서 부인 손에 이런 편지를 쥐여주고 갔다고 한다. 다른 40대 환자는 빈소에서 서성이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믿기지가 않는다”고 울먹였다.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 “저희 엄마 공황장애를 5년간 돌봐주신 분인데, 항상 친절하시고 진료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해서 ‘세상에 저런 의사도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착한 사람은 일찍 하늘나라 가는 것 같다.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는 글이 올랐다.


20년 받은 환자 감사 편지 상자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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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교수는 숨지기 전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정말 너무 어려운,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분이 다른 의사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라고 되뇌면서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고 환자 사랑을 표현했다. 그는 전공의 시절부터 환자의 감사 편지를 많이 받았고 20년 모은 편지가 상자에 가득 찼다고 한다. 자살 유가족 모임 대표도 빈소를 찾아 임 교수 유가족의 손을 잡았다. 그 대표는 “얼마 전 임 교수가 ‘(유가족 모임 활동 하면서) 위축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워줬고, (대표의)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위로했다”고 말했다.

이런 진정성은 본인의 경험에서 유래한다. 그는 2012년 6월 허리디스크로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됐다. 4주간 절대 안정을 요했다. 대소변만 스스로 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마침내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미역국과 불고기 등으로 생일상을 차렸다. 몇 숟가락 뜨다 흘렸고, 허리 보호대에 자국이 생겼다.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 지금 생일상 받을 상황이야”라고 짜증을 냈다. 분위기가 식었다. 당시 유치원생이던 둘째가 촛불을 끄면서 “우리 아빠 빨리 낫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임 교수 우울증 경험, 환자와 공감 커져


임 교수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고, 새벽에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자동차 키를 찾았다. 그러다가 아내와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포기했다. 임 교수는 그 얘기를 2016년 출간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소상하게 묘사했다. 그는 처음에는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라는 환자의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고 한다. 본인이 우울증을 앓고 나서는 “저도 그 병, 잘 알아요”라고 책에 썼다. 그는 "괴로움에 허우적대는 사람이 가느다란 희망의 근거나마 발견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백종우 교수는 “정신과의사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려면 편견에 맞설 용기가 필요한데 괜찮겠니”라고 걱정했지만 임 교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경험을 나누고 싶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임 교수 환자는 잘 낫지 않거나 오래 앓은 우울증 환자가 많았다. 임 교수는 환자들에게 마음으로, 진정으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 날에 “진료시간 지났다”며 환자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의무감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비상벨을 눌러 보안요원을 호출하고, 흉기를 피해 ‘대피 공간’으로 피해 문을 잠갔다. 거기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나온 뒤 그냥 내달렸더라면 변을 당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걱정돼 “피하라”고 외쳤고, 피했는지 확인하다 넘어져 끔찍한 일을 당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을 챙겼다.


그는 외국과 달리 한국 환자는 극단적 선택 전에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2011년 환자를 1시간 보고, 1시간 듣고, 1시간 말하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보듣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영상·역할극이 포함돼 있다. 일반 버전에서 직장인·공군·육군용으로 확대했다. 임 교수는 또 기업 근로자의 정신 건강을 진단해 평가하고 힐링하는 통합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두 개의 특허를 받았다. 신영철 교수는 “고인은 일할 때 자기 모든 걸 내놓고 했다. 이걸 만들어 놓고 그리 좋아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임 교수의 삶과 유족의 품격은 모든 이의 심금을 울렸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했다. 이낙연 총리가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 총리는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고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잘 받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서주석 차관이 빈소를 찾아 보듣말 개발 관련 감사패를 전달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정춘숙·맹성규·윤일규 의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같은 당 하태경 의원, 이준석 최고위원이 빈소를 찾았다.


국방부 장관, 빈소 찾아 감사패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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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교수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인의 정신건강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2017년 기준 국민의 25.4%가 평생 한 번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이 중 5.1%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고 13%가 우울감을 경험했다. 2017년 5월 정신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인권침해를 줄이기 위해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 이 덕분에 강제 입원은 줄었지만 이들이 방치된 경우가 적지 않다. 임 교수에게 흉기를 휘두른 환자도 1년 만에 병원을 찾았고 4년 동안 혼자 살았다고 한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동안 암 치료에 자원을 집중해 성과를 거뒀다. 정신건강은 마음의 암이다. 정신 건강을 어젠다 1위로 앞세워 대응하는 게 임 교수의 유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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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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